[최광익의 교육만평] 당연한 것 의심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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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익의 교육만평] 당연한 것 의심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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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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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익 책읽는춘천 대표
최광익 책읽는춘천 대표

번역에 관심을 가지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말들이 원래의 뜻과는 다르게 사용되는 사례를 자주 본다. 이는 대개 번역자 미숙, 번역어 부재, 맥락을 무시한 단어 중심의 번역 탓이다. 몇몇 말들은 이미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처음 사용되었을 때 의미 확인을 소홀히 한 결과이기도 하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이 표현은 보통 “사람 삶의 기간은 짧지만, 인간이 만든 예술(음악, 미술 등)은 이보다 오래 간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과연 그럴까? 이 말은 원래 고대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의 잠언집 첫 문장이다.

고대 그리스어로 작성된 원문의 영어 번역 문장은 이렇다: “The art is long, life is short, opportunity is fleeting, experiment is uncertain, and judgement is difficult.”

위 문장에서 보듯이 원래 문장이 길어 우리가 쓰고 있는 것처럼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줄여서 사용하는 것은 올바른 사용법이 아니다. 번역 또한 모호하다.

히포크라테스는 의사였고, 그의 잠언집이 인생 후반 후세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짧은 생각의 모음이라면 이는 다음과 같이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의술의 길은 먼데, 인생은 짧아 기회는 별로 없고, 실험들은 불확실해 진단하기는 어렵도다.”(‘art’는 히포크라테스가 의사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예술’이 아닌 ‘의술’로, long이라는 단어도 ‘길다’보다는 ‘멀다’로 번역돼야 할 것이다.)

교회를 다니면서 궁금했던 것도 있다. 매주 교회에서 암송했던 사도신경의 내용 중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는 부분이 있다. 성경에는 빌라도가 어떻게든 예수를 살리려고 노력하는 부분이 여러 군데 나온다. 기독교 야사에는 빌라도가 예수를 살리지 못해 말년 알프스에 초막을 짓고 속죄하며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우리가 암송하는 사도신경은 예수에게 ‘호의적’이었던 빌라도에게 ‘악의적’이다. 문제가 되는 사도신경의 영어 문장은 이렇다 “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성경에서 보듯 예수를 박해한 사람들은 빌라도가 아닌 유대교 성직자들이다. 당시 유대가 로마의 속국이었으며 다만 빌라도는 총독으로 통치자였고, 유대인 성직자들의 제소에 따라 예수 심문을 맡았다. 심문을 최대한 이성적으로 하려 했지만, 이런저런 정치적 이유로 예수를 살리는 데 실패했다.

언젠가 한 친구에게 이 문제를 말했더니 한국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사도신경 번역문을 소개해줬다. 놀랍게도 한편으로는 너무 당연하게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본디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아주 정확한 번역이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뤄진다(Genius is one percent inspiration and ninety-nine percent persperation)”라는 에디슨의 말은 번역이 잘못됐다기보다 의미가 잘못 사용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보통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 말은 에디슨이 영감을 강조하는 말로 사용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즉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도달할 수 있으나, 완벽한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나머지 1%는 타고나야 한다는 것이다.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A sound mind in a sound body)”라는 격언은 고대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의 말이다. 일상어법에서 건강한 육체를 강조하는 말로 쓰인다. 일화에 따르면 당시는 검투사가 인기를 끌고, 젊은이들은 너나없이 몸을 가꾸는데 열을 올렸다고 한다. 이를 보고 시인은 “저렇게 몸을 가꾸는데 정성을 들이는 만큼 내면을 채우는 데도 관심을 갖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탄했다고 한다.

이상의 몇 가지 사례에서 보듯 우리가 알고 있는 말들이 원래의 의미와는 다르게 사용된 예는 적지 않다. 이는 이미 널리 알려진 지식에 의문을 품는 태도를 경시한 탓이기도 하다.

이러한 분위기는 작게는 올바른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것이기도 하고, 크게는 진리를 탐구하는 지적 호기심을 꺾는다. 의심하고 토론하는 일이 학교 교육의 중심을 이루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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