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사용설명서] 강력한 비만치료제 등장⋯ '질병지도’ 바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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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몸 사용설명서] 강력한 비만치료제 등장⋯ '질병지도’ 바뀌나

    • 입력 2022.05.28 00:01
    • 수정 2022.05.29 11:50
    • 기자명 고종관 보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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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관 보건학박사·전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
    고종관 보건학박사·전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

    식사 조절이나 운동이 아닌 약만으로 비만을 치료하는 시대가 올까요.

    이달 13일 미국 FDA(식품의약국)로부터 날아온 뉴스가 의약계에 조용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일라이 릴리(Eli Lilly)라는 다국적제약사가 신청한 새로운 당뇨치료제 시판을 승인했다는 내용입니다. FDA는 지난해만 해도 50건의 신약을 허가했으니 이 뉴스는 어찌 보면 일상적인 평범한 사건(?)인 듯 여겨집니다.

    하지만 뉴스의 이면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비만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 신약의 등장은 크리스마스 선물과도 같은 것일 수 있으니까요.

    약의 이름은 ‘마운자로’(Mounjaro, 성분명:Tirzepatide). 2형당뇨와 비만을 동시에 잡는 지금까지의 약물기전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약입니다. 릴리는 이번엔 당뇨병치료제로 허가받았습니다만, 몇 개월 안에 비만치료제로도 승인을 요청할 계획이랍니다.

    임상자료를 검토한 FDA도 마운자로가 기존 비만치료제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12월 신청한 마운자로를 5개월 만에 승인한 전례에 비춰볼 때 올해 안에는 ‘비만을 약으로 치료하는 원년’이 되지 않을까 섣부른 관망도 해봅니다.

    우선 임상 결과가 이를 말해줍니다. 릴리는 체질량지수(BMI) 32~35의 비만인 2539명(당뇨병에 걸리지 않은 건강인)을 대상으로 72주 동안 주 1회 약(주사제)을 투입한 결과, 평균 20.9%의 체중을 줄일 수 있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용량별(5㎎, 10㎎, 15㎎) 효과분석을 보면 15㎎ 투입군에서 전체 참가자의 63%가 20% 이상의 체중 감량에 성공했습니다. 예컨대 100㎏의 경우, 적어도 80㎏ 이하로 체중을 낮출 수 있으니 그동안의 비만치료제를 대체할 게임 체인저로 손색이 없습니다. 반면 위약 그룹은 단지 3.1%만 줄었습니다.

    2형당뇨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결과도 훌륭했습니다. 임상은 2018년부터 5회에 걸쳐 진행됐습니다. 이중 당화혈색소 8.3%(정상범위 4~6%, 6.5% 이상이면 당뇨 진단)인 환자를 대상으로 40주간 진행한 5차 임상 결과를 볼까요. 약의 용량별 당화혈색소 수치가 각각 2.1%(5㎎), 2.4%(10㎎), 2.3%(15㎎)나 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용량과 상관없이 대부분의 당뇨 환자가 정상적인 혈당을 되찾은 거죠.

    비만은 인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공공의 적’이 됐습니다. 미국인의 75%가 과체중이나 비만이고, 50% 이상이 당뇨병과 함께 사는 상황이니까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비만 인구가 매년 늘어 2020년 기준 38.3%(남성 48%, 여성 27.7%)에 이르고, 어린이 비만율도 14~18% 수준입니다. 치료를 받는 당뇨 환자는 500만명, 여기에 당뇨 전 단계 900만명을 포함하면 1400만명이 고혈당의 노예가 되고 있습니다.

    사실 비만은 외상이나 감염병을 제외한 모든 질환의 뿌리라고 보면 됩니다.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심뇌혈관질환, 당뇨병이나 고지혈증 같은 대사증후군, 심지어 암이나 위식도역류, 수면무호흡증, 불임, 담석증에 근골격계질환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질환이 비만의 직·간접적인 영향권 안에 있습니다.

    문제는 비만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입니다. 특히 아이들까지 비만의 포로가 돼 ‘비만 팬데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미국립보건원이 ‘비만은 질병’이라고 규정한 해는 1998년입니다. 이때만 해도 대부분 의사는 비만을 생활습관이라는 개인 문제로 치부했습니다. 그러나 비만이 가져오는 건강 폐해가 확산되면서 2008년 미국비만학회가 비만질병론에 동조했고, 급기야 2013년 미국의사협회가 ‘비만은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는 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지난해 미국당뇨병학회는 당뇨병 선별검사 시기를 기존 45세에서 35세로 크게 낮췄습니다. 젊은 비만 인구가 늘어나면서 2형당뇨병 호발 연령대가 앞당겨지고 있기 때문이죠. 심지어 성인당뇨라고 일컬어지던 2형당뇨병을 앓는 어린이도 늘고 있습니다. 비만으로 인해 질병지도가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티르제파타이드(마운자로의 성분명)는 췌장에서 분비되는 GLP-1(Glucagon-Like Peptide-1)과 GIP(Gastric Inhibitory Polypeptide)를 모방해 설계한 약물입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췌장에선 인슐린이 분비됩니다. 이때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기 위해 GLP-1과 GIP라는 두 호르몬도 증가합니다. 하지만 이들 호르몬은 각각의 수용체와 결합했을 때 효과를 발휘합니다. 따라서 마운자로는 수용체와 결합할 수 있는 분자구조로 설계됐다고 해요.

    흥미로운 것은 GLP-1의 기능 중 하나가 음식의 소화기관 이동 속도를 늦추고, 식사 후 포만감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배고픔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 그렐린의 작용을 억제하기도 합니다.

    GLP-1 관련 의약품은 몇 년 전부터 미 FDA 승인을 받아 시장에 나오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비만치료제로 시판되고 있는 삭센다, 지난 4월 당뇨약으로 국내 시판허가를 받은 오젬픽, 그리고 올 하반기에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는 위고비 등입니다.

    마운자로는 GLP-1에 GIP를 결합한 제품입니다. GIP 역시 GLP-1처럼 광범위한 생리작용을 하는 호르몬입니다. 인슐린 분비를 자극하고, 지방대사에 관여하며, 혈당이 떨어지면 글루카곤 분비를 촉진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GIP-1과 함께 사용했을 때 시너지효과를 낸다는 사실입니다. 두 호르몬 수용체에 작용한다고 해서 최초의 이중작용 약물이라는 명칭도 얻었습니다.

    마운자로는 실제 임상시험에서 경쟁제품인 위고비나 삭센다보다 두세 배 가까운 체중감소와 혈당강하 효과를 나타냈습니다. 한 시장평가기관은 마운자로가 2026년까지 49억 달러(약 6조2279억원)의 매출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죠. 당뇨와 비만치료제 시장에 새로운 블록버스터가 탄생되는 것이지요.

    이제 비만 정복의 꿈도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개인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질병지도의 새로운 판이 짜이면서 국가 의료비가 크게 절감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씁쓸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잉여시대의 산물인 비만을 치료하기 위해 고혈압약이나 당뇨약, 고지혈증약처럼 또 다른 약을 처방받아야 하는 시대가 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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