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성덕 칼럼] 五賊 자처한 국회의원들, 때려잡는 방법 여럿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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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성덕 칼럼] 五賊 자처한 국회의원들, 때려잡는 방법 여럿 있다

    • 입력 2022.05.26 00:01
    • 수정 2022.05.27 06:09
    • 기자명 염성덕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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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성덕 논설주간
    염성덕 논설주간

    얼마 전 타계한 시인 김지하는 1970년 5월 ‘사상계’에 담시 ‘오적(五賊)’을 발표했다. 장안을 발칵 뒤집어 놓은 작품이었다. 사상계는 폐간되고, 작가와 편집인이 구속되는 고초를 겪었다.

    김지하는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오적으로 불렀다. 을사늑약으로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에 비유했다. 오적의 부정부패와 가렴주구를 신랄하게 비판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오적을 일망타진하기는커녕 앞잡이 노릇만 하는 포도대장도 격렬한 어조로 비난했다.

    작품 오적을 1980년 대학 1학년 때 처음 접했다. 선배가 건네준 복사본을 가방 깊숙이 넣어 친구네 자취방으로 갔다. 신군부가 ‘서울의봄’을 무참히 짓밟은 상황에서 오적을 소지한 것만으로도 수사기관에 불려가 치도곤을 당하던 시절이었다. 단숨에 작품을 읽었다. 속이 후련하면서도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동방(我東方)이 바야흐로 단군 아래 으뜸/으뜸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도둑이 있겠느냐/(중략)/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것다./(중략)/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 치는 소리 쿵떡/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간뗑이 부어 남산만 하고 목 질기기가 동탁 배꼽 같은/천하흉포 오적(五賊)의 소굴이럇다./(중략)/또 한 놈 나온다./국회의원 나온다./곱사같이 굽은 허리, 조조같이 가는 실눈,/(중략)/털투성이 몽둥이에 혁명공약 휘휘감고 혁명공약 모자쓰고 혁명공약 배지차고”

    세상에 나온 지 반세기를 넘긴 오적을 소환한 이유가 있다. 군사정권을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내고 민주화 세력의 거두인 김영삼의 문민정부와 김대중의 국민의정부를 거치면서 권력은 국민 손으로 넘어왔다. 진보와 보수가 대립하기는 했어도 군사정권 시절하고는 영 딴판인 세상이 펼쳐졌다.

    그런데 21세기 대명천지에 온 국민은 의회민주주의가 뿌리째 뽑히는 꼴불견을 목격했다. 진보를 자임하는 더불어민주당이 의회 폭거를 자행했다. 민주당은 각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검수완박 법안’(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군사작전 하듯이 밀어붙였다.

    민주당은 다수당의 입법 독주를 막기 위한 국회선진화법을 한낱 종잇조각으로 전락시켰다. 여야 3대 3으로 구성해야 하는 안건조정위를 위장 탈당으로 무력화했다. 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은 국회 개회 시간과 국무회의 시간을 일방적으로 변경하면서 검수완박 법안을 처리했다. 오로지 문 정권에서 법안을 공포하려고 혈안이 된 것이다. 온갖 꼼수와 편법이 난무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강경파 초선 의원 모임인 ‘처럼회’는 문민정부가 해체한 군부 사조직 ‘하나회’를 연상시킬 정도로 비이성적으로 행동했다. 법안 처리에 앞장선 ‘처럼회’ 소속 일부 의원은 재판이나 수사를 받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김남국 민주당 의원이 이모(某) 교수를 이모(姨母)로 착각하고, 최강욱 민주당 의원은 한국쓰리엠을 한 후보자의 딸로 오인하며 촌극을 연출했다. 이런 인사들이 완장을 찬 국회가 눈꼴사납다.

    원안과 별로 달라지지도 않은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덥석 수용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속내도 알 길이 없다. 나중에 반대로 돌아섰지만 검찰 수사 대상에서 공직자·선거 범죄를 뺀 내용에 구미가 당겼던 모양이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속으로는 환호했을지 모른다. 그의 어설픈 행동은 민주당이 여야 합의라는 궤변을 늘어놓는데 빌미를 제공했다.

    일부 수정된 검수완박 법안이 공포되면서 오적 가운데 국회의원, 고위 공무원, 장차관이 만세를 부르게 됐다. 일정한 기한만 지나면 범죄를 저질러도 검찰 수사를 받지 않게 된 탓이다. 검찰 살생부에서 벗어난 장차관과 고위 공무원은 손도 안 대고 코 푼 셈이 됐다. 그렇다고 국회의원과 정치인, 공직자의 비리나 범죄를 묵인·방조하면 안 된다.

    공정과 상식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는 거악(巨惡) 척결에 나서야 한다. 부패와 비리를 막고 단죄할 조직을 재건해야 한다. 입만 열면 정의를 외친 문 정권은 대통령의 가족과 측근들의 비위를 감찰하는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지 않고 버텼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윤 대통령은 문 정권이 외면한 특별감찰관제를 시급히 재가동해야 한다. 내부의 적을 소탕해야 외부의 적을 소탕할 명분과 힘이 생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문 정권이 없앤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서울남부지검에 설치했다. 잘한 일이다. 자본시장을 교란하고 선의의 투자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는 금융·증권범죄자는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마땅하다. 검·경협의체도 긴밀히 가동해 수사 역량을 끌어올리고,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

    오는 9월 시행될 예정인 검수완박 법안의 내용과 처리 과정은 진정한 의회민주주의와 헌법에 배치된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와 검찰은 치밀한 법리 검토를 거쳐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과 위헌법률심판을 통해 의미 있는 결정을 이끌어 내야 한다.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를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 개방직인 본부장에 전직 특수부 검사를 임명하고 능력 있는 검사들을 파견해 경찰 수사를 지휘하면 된다. 강력한 무기인 특별검사 카드를 쓸 필요도 있다. 민주당과 문 정권은 ‘방탄 입법’을 서두르다가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특검법)을 까먹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특검법에 따르면 법무부 장관은 이해관계 충돌이나 공정성 등을 이유로 특검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사건을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수사 대상으로 정할 수 있다. 특검 수사가 결정되면 법적 절차에 따라 임명된 특검이 최대 90일간 수사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특검을 남발할 수는 없겠지만 거악 척결을 위한 특검이라면 국민 지지를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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