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투데이 칼럼] '춘천 출신'이라고 하니 반응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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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투데이 칼럼] '춘천 출신'이라고 하니 반응이 좋지 않았다
  • 한상혁 기자
  • 댓글 0
  • 승인 2022.05.0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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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혁 콘텐츠전략부장
한상혁 콘텐츠전략부장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첫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한동훈(49)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지명했을 때,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료는 그의 출생지를 ‘강원도’로 표시했다. 나중에 한 후보자의 출생지는 서울임이 확인됐다. 오류는 한 후보자의 부모가 춘천 출신인데다 그의 등록기준지(옛 본적지)가 춘천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인수위는 첫 정부 부처 장관 후보자를 발표하며 ‘지역 안배’를 내세우려다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셈이다.

어쨌든 이 과정에서 강원도의 많은 언론사가 ‘한 후보자(부모)가 춘천 출신’이라는 기사를 냈다. 필자가 보기에도 기사로 쓸 만한 내용이다. 함께 일한 검찰 내부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을 정도라 하니 춘천 시민들이 분명 관심 있게 볼 만한 기사였다.

그러나 시민 독자들의 반응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한 후보자가 춘천 출신이라고 쓴 포털 사이트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소개한다. '서울 잠원동 압구정동에서 초·중·고 다닌 사람을 춘천 출신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 않나' '북한에서 내려와 서울에 자리 잡아서 후손들이 살아가면 고향이 북한입니까?'

한 후보자의 출생지를 두고 빚어진 혼선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에 대한 시민 반응을 보면 ‘시대가 변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옛날에는 사람을 파악하기 위해서 출신지를 묻는 게 자연스러웠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젊은이들 대부분이 지방 출신이라는 게 한 이유였을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종전 직후인 1955년만 해도 서울과 경기도(인천 포함) 인구는 합계 400만명으로 전체의 20% 미만이었다. 경북·경남 인구는 합계 710만, 전북·전남 520만, 충북·충남과 강원도 각각 340만, 150만명이었다.

2022년 현재 5200만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산다. 새로 태어나는 아기들도 절반 정도가 수도권 출생이다. 과거만큼 ‘너 어디 출신이야’ 따질 이유가 크게 줄었다. 굳이 나누자면 서울 사람과 지방 사람으로 나눈다. ‘너희 부모가 어디 출신이냐’고 묻는 경우는 더 드물다. 젊은 세대는 아버지 고향을 자신의 출신지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출생과 동시에 호주(戶主)의 본적을 따라 자신의 본적지를 정하던 호주제는 폐지(2007년 말)된 지 15년째다. 지금도 등록기준지가 있기는 하지만 옛 본적과 달리 부모 출생지, 자신의 출생지, 혹은 이도 저도 아닌 다른 지역까지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 등록기준지는 신분증은 물론이고 각종 인사 서류 등에도 기재하지 않으므로 별 의미가 없다.

역대 법무부 장관 후보자 중 가장 젊은 한 후보자(73년생)는 앞으로 정치인이나 장관(후보자)들의 출생지를 따지는 게 무의미해질 것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60~70년대 상경한 지방 출신 부모를 둔 70년대생들이 나라의 요직을 맡기 시작한다. 부모는 지방 출신이지만 자신은 서울 출신이라서 ‘어느 지역 출신인지’ 애매한 경우가 앞으로는 점점 일반적인 경우가 된다.

출신 지역을 따지는 우리 문화 바탕에 자리 잡은 뿌리 깊은 지역주의도 점차 흔들리고 있다. 호남 지역을 대변하는 정당이 집권한 기간이 합계 15년이다. 이 기간 경남 출신의 후보가 2명이 그 당에서 나와 대통령이 됐다. 지난 대선에서는 워낙 박빙 대결이었기에 지역별 득표율 차이가 컸지만, 지역주의 투표 구도가 점차 변화하고 있음은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대통령이 누구냐, 장관이 누구냐가 더는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끼치지도 않는다. 선거에서 누가 이기느냐에 따라 어느 지역에 고속도로가 깔리고 공항이 생기는 일은 고도성장기에는 가능했을지 모르나 이젠 쉽지 않다. 춘천 출신인 경제부총리가 역대 최장 기간 역임했지만, 그가 춘천을 위해 뭔가 대단한 공사를 벌였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특히 춘천 시민을 비롯한 강원도민은 지역주의에서 탈피하는 속도가 빠른 것 같다. 피플네트웍스리서치(PNR)가 뉴데일리 의뢰로 4월 29일~30일 진행한 강원도지사선거 여론조사에서 이런 면이 드러났다. 춘천 출신 김진태 전 국회의원이 춘천에서 43.5%의 지지율을 얻어 47.2%의 지지를 얻은 이광재 전 국회의원에게 오차범위(±6.7%p) 내에서 뒤졌다. 반대로 원주가 지역구였던 이 전 의원은 원주에서 40.4%의 지지율을 얻어 김 전 의원(54.0%)에게 밀렸다.

강원도 인구는 안 그래도 적은 데다 지난 5년간 감소 추세다. 지역주의 구도가 오래 남아 있으면 좋을 것이 없다. 오히려 외지인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 어느 것이 유리하고, 옳은지를 떠나 점점 더 사람의 출신 지역을 따지는 게 무의미한 세상이 되고 있다. 많은 춘천 시민이 ‘한 후보자의 부친이 춘천 출신’이란 기사를 버릇처럼 클릭하면서도 한편으로 부정적으로 반응한 것은 이런 이유였을 것이다.

최근 춘천에서 창업해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2030세대 젊은 자영업 사장들을 만나 취재했다. 춘천에서 3년째 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스스로 '춘천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춘천이 좋고, 앞으로 춘천에 살고 싶으며, 춘천이 잘 됐으면 하니 자기가 춘천 사람인 것 같다고 했다. '어느 지역 사람'이란 말은 앞으로 이렇게 사용되는 게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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