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마음풍경] 이외수 선생과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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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원의 마음풍경] 이외수 선생과의 인연

    • 입력 2022.05.01 00:01
    • 수정 2022.05.01 10:10
    • 기자명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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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선생님. 그곳은 편안하신가요? 선생님이 좋아하시고, 선생님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그곳에도 많은가요? 돌아가시기 며칠 전 선생님 지인으로부터 ‘이제 못 일어나실 것 같다. 2~3일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듣고도 ‘아니야, 곧 일어나실 거야’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의 삶은 그래야 하고, 그게 또 우리가 아는 선생님다운 삶일 거라고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돌아보면 선생님과 저는 춘천에서든 다른 곳에서든 만났던 인연이 거의 없습니다. 제가 20대의 문학청년 시절을 선생님께서 활동하시던 춘천에서 보내면서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작가와 독자로서의 인연은 그때 춘천에서 선생님을 흠모하며 따르던 다른 문학청년들보다 먼저였는지 모릅니다. 같은 강원도의 대관령 아래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간벽지 마을에 살면서도 집안에 《世代》지를 정기구독하는 어른이 계셔서 우리나라 나이로 열아홉 살에 그 잡지에 실린 선생님의 소설 ‘훈장’을 읽었습니다. 당시 저는 고등학교 학생이었고, 아무도 들어주지도 인정해주지도 않는 문학도였지만, 이다음 꼭 소설가가 되겠다고 혼자 다짐하던 청춘이었습니다.

    이외수라는 이름을 춘천에서 다시 접하게 된 것은 제가 대학 2학년이던 1978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꼭 44년 전 선생님께서 ‘꿈꾸는 식물’이라는 첫 장편소설을 발표했을 때입니다. 소설 속의 무대가 누가 보든 춘천이라는 걸, 당시 ‘장미촌’이라고 부르던 미군부대 앞 동네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제게는 그것이 제 미래의 희망과도 같았습니다. 저는 그때 22살의 나이로 이다음 내 고향 강릉을 무대로, 또 ‘강릉’이라는 지명을 내 소설 속에 수도 없이 쓰고 싶은 그런 문학청년이었습니다.

    이쯤의 흠모와 인연이면 좀 더 일찍 찾아뵐 법도 한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지금 춘천에서 활동하는 문인들, 또 춘천의 문학청년들까지도 선생님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데, 이상하게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특히나 제가 군에서 제대해 복학했을 때 선생님은 당대 최고의 유명작가였습니다. 40세가량의 대한민국 최고의 유명작가를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20세의 문학청년들이 통상 호칭으로 ‘외수 형, 외수 형’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자기 나이의 두 배가 되는 문단의 유명작가를 ‘형’이라고 부르는 춘천의 문학청년들이 한편으로는 부러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것이 두렵게 느껴졌습니다. 격의 없는 호칭의 친선이 선생님께는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을 실천하는 방식이겠지만, 선생님을 그렇게 부르며 선생님의 작가적 행동을 먼저 닮으려 하는 저 문학청년들에게는 무엇일까. 저 호칭 사용이 주는 유대와 기꺼움이 저들이 바라는 문학 앞날에 자양이 될까 독이 될까 진기하게 바라보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자양이 되더라도 왠지 저에게는 독이 될까 두려워 더구나 다가가지 못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후 작가가 되고, 저도 쉼 없이 작품을 쓰는 동안 참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예순 살이 넘은 다음 그동안 거의 참석하지 않던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상식과 강원문인 교례회에 참석했다가 처음으로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그해 선생님도 아주 여러 해 만에 교례회에 참석하셨다고 했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는 많은 사람 숲에서 하창수 선생 안내로 “소설 쓰는 이순원입니다.” “아이구, 우리는 왜 이렇게 늦게 보지요.” “앞으로는 자주 뵙겠습니다.” “그래요. 좀 자주 봐요.” 하고 10초가량 지나가 듯이 인사를 나누었던 것이 그 옛날 춘천의 ‘외수 형’이 아닌 이외수 선생님과 저 사이 인간적 마주침의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이제 자주 보자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다시 2년의 시간이 흐르고 제가 춘천 김유정문학촌 촌장으로 일하기 시작한 다음 선생님께서 갑자기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후 틈틈이 ‘의식이 돌아온 것 같다, 사람을 알아본다’는 회복 근황을 듣다가 갑자기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던 날 밤, 선생님의 인생과 문학에 대해, 그리고 아직 현역 작가로 써야 할 게 많이 남은 저의 인생과 문학에 대해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생에서는 제가 두려워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는데 돌아보면 그게 또 많이 아쉽습니다. 부디 영면하시길 바랍니다.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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