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애를 극복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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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장애를 극복하지 않았습니다

    강원대 졸업생 김남영 에세이집
    “장애는 극복 아닌 인정의 대상”
    도전의 연속··· 변화 위해 행동

    • 입력 2022.03.03 00:01
    • 수정 2022.03.03 10:22
    • 기자명 조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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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영 작가의 에세이집 ‘나는 장애를 극복하지 않았습니다’ 표지. (사진=김남영 작가)
    김남영 작가의 에세이집 ‘나는 장애를 극복하지 않았습니다’ 표지. (사진=김남영 작가)

    “나는 장애를 극복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25년 차 장애인의 당당한 고백이다. 흔히 듣는 희망과 용기가 가득한 응원과 다르다. 고백의 주인공은 중증 뇌병변장애인 김남영(25) 작가다.

    에세이집 ‘나는 장애를 극복하지 않았습니다’는 25년째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한 청년의 삶을 솔직하게 표현한 고백서다.

    그의 당당한 고백에는 장애에 대한 인식이 담겨 있다.

    “극복한다는 건 부정적인 환경이나 나쁜 조건을 이겨내는 거잖아요. 장애는 부정적이지도 나쁘지도 않아요. 저는 그냥 장애를 인정했습니다.”

    ▶18살 첫걸음마··· 좌절에서 희망으로

     

    김남영 작가가 환하게 웃고 있다. 그의 책 마지막 장을 장식한 이 사진 아래에는 “당신과 함께 걷고, 웃으면서 휴식을 취하고, 사랑을 통해 같이 성장하고 싶은 나의 모습을 잘 표현한 사진”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사진= 김남영 작가)
    김남영 작가가 환하게 웃고 있다. 그의 책 마지막 장을 장식한 이 사진 아래에는 “당신과 함께 걷고, 웃으면서 휴식을 취하고, 사랑을 통해 같이 성장하고 싶은 나의 모습을 잘 표현한 사진”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사진= 김남영 작가)

    그가 처음부터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인 건 아니다. ‘장애를 너무 아파’했던 시절도 있다. 처음 친구들과 영화관에 갔던 날, 축구하며 뛰놀던 친구들을 그저 바라봐야만 했던 날.

    무엇보다 16살, 걸을 수 있다는 큰 기대로 받은 뇌심부 자극수술에 실패했던 날. 머리에 철심을 박고 가슴을 여는 대수술을 마치고 15시간 만에 눈을 뜬 그는 97% 성공률을 뒤로한 채 3%에 속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한동안은 ‘나는 97%가 아니었다’는 좌절감에 자포자기했다.

    “‘왜 나만 다르지, 왜 나는 할 수 없지’라는 생각에 불만으로 가득했던 때도 있었어요.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이 한번 꺾이고 절망하기도 했죠. 하지만 수술로 못한다면 운동으로 걸어보자는 오기가 생겼어요.”

    그렇게 재활치료을 시작한 지 3년째, 18살 그는 처음 ‘두 발의 감각’을 처음 느꼈다. ‘이번에는 다를까’라는 생각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결국 두 다리로 일어섰다.

    “다리에 어떻게 힘을 줘야 하는지 몰랐어요. 제 손을 잡고 있던 교수님이 손을 놓으려고 할 때까지도 무서웠죠. 혼자 선 순간 병실 안에 모두가 짧은 감탄사를 터트렸어요. 그렇게 18년 만에 걷게 됐습니다.” 

    처음엔 1000~2000보 걷기도 힘들었지만 현재는 하루 1만보를 걸을 수 있다. 물론 근육 경련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약은 꾸준히 먹고 있다.

    ▶나를 마주하고, 남들 앞에 서다

     

    김남영 작가가 강원대학교 장애학생 인권증진 동아리 ‘인·지·해’를 홍보하는 배너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남영 작가)
    김남영 작가가 강원대학교 장애학생 인권증진 동아리 ‘인·지·해’를 홍보하는 배너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남영 작가)

    ‘성인이 된’ 그에게 ‘20대는 첫 도전’의 연속이다. 

    대학생이 된 그는 변화를 위해 행동하기 시작했다. 2017년 강원대학교 장애학생 인권증진 동아리 ‘인·지·해(人之諧,사람 사이의 어울림)’를 만들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장애인식 개선 캠페인을 벌이며 학교 안에서 장애 학생들의 이동권을 외쳤다.

    그 덕분에 강원대 백록관, 천지관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

    “어느 날 휠체어를 타는 친구가 ‘남영아, 나 저기 2층에서 친구들이랑 햄버거 먹고 싶어’라고 말하더라고요. 엘리베이터가 없어 불편했던 건물 2곳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는 데 딱 4년 걸렸네요. 70년 동안 없었는데 이제는 생겼어요. 장애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편해진 거죠.”

    2018년 선교 활동하러 간 아프리카 케냐의 한 학교 전교생 앞에서 강연하는 모습. (사진=김남영 작가)
    2018년 선교 활동하러 간 아프리카 케냐의 한 학교 전교생 앞에서 강연하는 모습. (사진=김남영 작가)

    그는 도전을 멈추지 않고 ‘더 큰 세상으로’ 나섰다. 2018년 해외 선교 활동으로 날아간 아프리카 케냐에서 큰 전환점을 맞았다. 케냐의 한 학교 전교생 앞에서 강연하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서기 전에 제 스스로 저를 마주해야 하더라고요. 애써 피해왔던 저의 과거를 돌아보고 진솔한 저의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서야 저는 저를 처음으로 인정한 것 같아요.”

    춘천에 돌아와 ‘자신을 인정하다’라는 제목으로 자선 강연을 열었다. 강원대 역사상 재학생이 개최하는 첫 강연이었다. 이후 학교 측의 요청으로 신입생 입학식에서 강연을 맡아 ‘3000명 앞’에 서기도 했다. 서울, 춘천을 오가며 타 대학, 봉사단체 등에서 ‘외부특강’을 했다.

    “강연할 때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권에 관심이 있구나’ 느끼고 장애인식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 기뻐요. 올해 전문강사 자격증을 따는 게 목표예요. 앞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장애 인권을 알리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또 다른 책으로도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나는 장애를 극복하지 않았습니다’는 자가출판플랫폼 ‘부크크’와 예스24, 알라딘에서 만날 수 있다.

    [조아서 chocchoc@mstoday.co.kr]

    ▶기사에 나오는 고딕체는 에세이집 제목과 목차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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