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머니] 상. 미술품 투자 성황? 춘천은 ‘아트테크’ 불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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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이 머니] 상. 미술품 투자 성황? 춘천은 ‘아트테크’ 불모지

    • 입력 2022.02.26 00:02
    • 수정 2022.02.28 14:39
    • 기자명 조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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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급부상한 신조어 ‘아트테크(Art-Tech)’는 아트와 재테크의 합성어다. 감상만 하던 예술작품이 소장과 투자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예술은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돈이 되는 예술에 눈을 뜬 이들을 위해 춘천 미술시장의 현주소를 진단해 본다. <편집자 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21 한국국제 아트페어(KIAF SEOUL)’ 현장. (사진=한국화랑협회)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21 한국국제 아트페어(KIAF SEOUL)’ 현장. (사진=한국화랑협회)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2020년 1월 이후 각종 전시와 아트페어가 취소되면서 미술시장도 큰 타격을 입었다. 아트페어는 여러 화랑이 같은 곳에 모여 미술작품을 사고파는 시장이다.

    세계 최고의 미술 장터인 아트바젤과 스위스금융그룹 UBS가 발표한 ‘2021 아트 마켓’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세계 미술시장 규모는 약 56조6380억원으로 2019년보다 22% 줄었다. 한국도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한 ‘2021 미술시장조사’에 따르면 2020년 한국 미술시장 주요 유통영역(화랑, 아트페어, 경매사)의 작품 판매금액은 3280억원, 판매 작품 수는 3만7324점이었다. 2019년보다 작품 판매금액은 14%(533억원), 판매 작품 수는 11.3%(4751점) 감소한 기록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은 미술계에 긍정적인 혁신을 일으켰다. 물리적 요소와 디지털 요소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아트페어와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예술품 경매는 더 많은 관람객과 컬렉터가 작품을 공유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2021년 한국 미술시장 규모 예측. (그래픽=박지영 기자)
    2021년 한국 미술시장 규모 예측. (그래픽=박지영 기자)

    예술경영지원센터는 2021년 한국 미술시장 규모를 9223억원으로 예측했다. 이는 지난해 3291억원에서 180% 성장한 수치다. 국내 양대 경매사인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의 지난해 낙찰 규모는 전년보다 각각 241.7%, 142.1% 증가하며 미술시장의 부활을 알렸다. 디지털 플랫폼에 익숙한 MZ세대 컬렉터 층의 증가와 온라인 마켓의 활성화가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다. MZ세대는 198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초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에 태어난 Z세대를 합친 세대다.

    컬렉터 층의 확대는 한국 미술품 경매시장의 비중이 91.1%에 달하는 두 경매사(서울옥션 49.8%, 케이옥션 41.3%)의 분석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서울옥션의 신규 회원 중 20~30대는 전년보다 82%, 40대는 87% 증가했다. 케이옥션은 지난해 1월부터 10월 말까지 미술품을 낙찰받은 고객 중 20~40대가 56%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미술시장의 전반적인 흐름과 달리 활성화된 마켓도 없고, 젊은 층이 유입되지 않는 강원도 미술계에서는 시장을 견인할 자원이 부족하다는 위기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17회를 맞은 ‘강원아트페어’는 강원 작가들을 소개하는 홍보의 장이다. ‘2021 강원아트페어’에는 강원 작가 34명이 참여했다. 행사 기간 동안 작품 168점이 4200만원에 팔렸다. 강원 작가 52명이 참여한 ‘2020 강원아트페어’에서는 155점이 9970여만원에 판매됐다. 지난해 판매금액이 전년보다 57.8% 줄었다.

    매년 춘천·원주·강릉에서 열리던 행사가 춘천·원주로 규모가 축소됐고, 참여 작가가 줄었으며, 다른 지역 관람객의 참여나 주목도가 낮아져 작품 판매금이 크게 감소했다.

    ▶갤러리 자생력 없어

     

    관람객들이 화랑에서 미술품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한국화랑협회)
    관람객들이 화랑에서 미술품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한국화랑협회)

    미술품은 주로 화랑(갤러리), 아트페어, 경매회사 등에서 유통된다. 건축물미술작품, 미술은행, 미술관 등 공공영역에서도 작품 구입이 이뤄진다.

    MS투데이 취재 결과 춘천의 갤러리는 자생적 수익구조를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2021 미술시장조사’에 따르면 국내 화랑의 매출액은 85.6%가 작품 판매 수입이다. 하지만 춘천 갤러리들의 주 수입원은 작품 판매가 아니다. 대부분 지역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전시를 기획하거나 대관료를 받고 전시공간만 제공하고 있다.

    춘천에서 10여년간 갤러리를 운영한 A씨는 “갤러리에서 작품을 사는 소비자가 절대적으로 적은 춘천에서는 작품 수수료로 수익을 확보하는 일반적인 갤러리 수익구조를 적용할 수 없다”며 “안정적인 수익이 없으니 전시를 기획해 좋은 작품을 알리고 판매하기보다는 공간 대관, 문화프로그램 운영 등으로 갤러리를 활용하는 데 그치곤 한다”고 설명했다.

    이종봉 한국미술인협회 강원도지회장은 “지역 화랑의 존속 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라며 “수요 부족뿐만 아니라 전시 중에도 작가를 통한 별도 판매가 이어져 화랑에선 수입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작품 구매자=아는 사람

     

    한우석씨가 소장한 미술품 일부. (사진=조아서 기자)
    한우석씨가 소장한 미술품 일부. (사진=조아서 기자)

     

    지역 미술계에서는 사회적 관계에 의해 대다수의 작품 판매가 이뤄진다.

    5년간 갤러리카페를 운영하는 박미숙 ‘느린시간’ 대표는 “그동안 작가와 구매자를 잇는 역할을 하면서 성사시킨 판매의 95%가 지인 판매였다”며 “작품만 보고 좋아서 사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이광택, 강선주, 김동욱, 길종갑 등 지역 작가 작품을 50점 이상 수집한 한우석(65)씨는 “투자 목적이 아닌 지역 작가와의 인연이 작품 수집의 시작이었다”고 밝혔다. 이광택 작가와의 인연으로 1988년 처음 미술품을 구매한 그는 “미술품은 경험재라 재구매자가 대부분”이라며 “춘천은 여전히 갤러리를 감상하는 곳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 작품을 사는 문화가 퍼지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예술계 전문인력 부족

     

    개나리미술관 외관. (사진=개나리미술관)
    개나리미술관 외관. (사진=개나리미술관)

    강원도는 예술인의 40%가 전업 작가일 정도로 창작자가 많다. 하지만 미술시장은 작가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주체로는 작가를 비롯해 작품을 사는 컬렉터, 작품을 판매하는 딜러, 경매 전문가, 작품의 가치를 풀어내는 평론가, 작품 선정과 설치를 담당하는 아트컨설턴트,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미술관·갤러리 등이 있다.

    많은 이들은 미술품이 그 자체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위작 이슈가 터질 때마다 ‘유명 작가의 작품’이라는 견고한 타이틀이 그 작품의 가치를 대신한다는 사실이 드러나곤 한다.

    경쟁력 있는 지역 작가와 작품을 발굴하고 전시 기획을 통해 그 가치를 알리는 기획자, 큐레이터 한 명을 발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강원 예술인이 문화예술기획 분야의 전문인력 양성과 문화기획자 파견을 꾸준히 요구하는 것도 창작 이외 분야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개나리미술관을 연 정현경 기획자는 “좋은 작가만 많다고 시장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갤러리카페, 소규모 전시장, 복합문화공간 등 다양한 전시공간이 있지만 전문적인 인력을 갖춘 갤러리는 부족하다”고 언급했다.

    이어 “일부만 향유하던 예술 영역을 친근하고 접근하기 쉽게 공간을 구성하고 전시를 제공하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라면서도 “오히려 작품 위주로 깊이 있게 감상하고 작가의 예술관을 탐구하는 전문성 있는 전시가 희소해졌다”고 지적했다.

    [조아서 기자 chocchoc@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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