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 부정(父情) 그리고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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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 부정(父情) 그리고 올림픽

    ■윤수용 콘텐츠 2국장

    • 입력 2022.02.10 00:01
    • 수정 2022.11.09 14:49
    • 기자명 윤수용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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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회 없는 경기를 펼쳤다는 아들의 전화통화에 ‘고생했다’라는 짧은 말로 위로를 전했습니다. 후회가 남지 않는 경기를 하자는 개인적인 목표를 이뤘다니 다행입니다. 도움을 준 수많은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대한민국 동계올림픽 스키종목 첫 메달리스트 ‘배추 보이’ 이상호(27·정선 출신)의 부친인 이차원 정선군 남면장의 얘기다.
    아버지의 단어는 항상 ‘하드보일드’ 문체다. 묵직함과 책임감, 그리고 화수분 사랑의 결정체를 함의하고 있다.
    필자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이상호 선수 부친과의 인터뷰가 조심스러웠다. 아들이 고독한 올림픽 무대에 선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정중한 변명이 그 이유였다. 실상은 ‘설레발’을 떨면 안 된다는 필자의 자기검열이 우선했기 때문이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무대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강원도의 아들 이상호는 4년 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8강(준준결승전)에서 올림픽 2연속 메달 획득에 분루를 삼켰다. 바로 지난 8일 경기 결과다. 평창동계올림픽 준결승 당시 0.01초의 역전 기적을 쓴 이상호는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0.01초 차이로 고배를 마셨다. 운명의 장난이다.
    대한민국은 올림픽 스키종목에서 메달을 당연시하는 강국의 반열에 올랐다. 이상호와 그의 부친 작품으로 평가하고 싶다.
    경기 직후 이상호는 이번 시즌 월드컵 챔피언인 종합 1위 수성을 다짐할 정도로 강한 정신력을 보여줬다. 고랭지 배추와 닮았다. 아마도 다음 올림픽을 구상 중일지도 모른다. 현재 그는 2021~2022시즌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 스노보드 알파인 종합 1위를 달리고 있다.

    배추보이 이상호 뒤에는 항상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란 무거운 왕관을 온몸으로 지탱한 부정(父情)은 대한민국 스키 역사를 다시 쓰는 마중물이 됐다.
    대한민국은 영원한 스키 변방 국가였다. 한국 스키종목은 1960년 미국 스쿼밸리 겨울 올림픽에 첫 도전장을 던진 후 무려 58년 동안 메달을 목에 건 선수는 없었다. 이상호가 반세기 만에 통한의 벽을 넘은 것이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이야기를 소환해보자.
    대한민국 스키종목 첫 메달 탄생은 그가 유년시절(정확히 초등학교 1학년) 스키어를 꿈꾸며 강원도 정선 고랭지 배추밭 설원을 질주하던 운명의 장소라 더욱 극적이었다. 이상호는 평창에서 경기했지만, 그의 고향인 정선도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도시다.
    당시 이상호는 스노보드 평행대회전 준결승에서 얀 코시르(슬로베니아)와 피말리는 명승부를 펼쳤다. 경기 중반까지 0.16초 차로 뒤지다가 막판 0.01초 차로 결승 티켓을 얻었다.
    대한민국 스키 전설은 찰나의 순간에 탄생했다. 말 그대로 100분의 1초 승부사였다. 그러나 베이징 무대에서는 역설적으로 0.01초에 울었다.
    재차 강조하지만, 이상호는 이번 시즌 월드컵에선 메달 4개로 종합 1위다.

    월드클래스 스포츠 스타의 아버지가 아낌없이 내어준 부정(父情)을 소개할 때 단골손님이 있다.
    춘천 출신 프리미어리그 ‘에이스’ 손흥민(30·토트넘)과 전직 프로축구선수인 부친 손웅정 SON축구아카데미 이사장의 스토리다.
    손흥민에 대한 손웅정 이사장의 부정(父情)은 그가 지난해 10월 자신의 삶과 철학, 그리고 아들을 지도한 과정 등을 담아 펴낸 에세이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의 한 구절로 대신한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아이를 낳았다고 다 아버지는 아닙니다. 아버지 노릇을 해야 아버지입니다. 내가 낳은 아이는 나와 같으면서 나와는 또 다른 존재입니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개똥밭에 구르든 불구덩이에 뛰어들든 자식을 위해 끝없이 책임을 지고 사랑을 쏟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 무거운 무게를 견뎌내야 겨우 아버지가 됩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그렇게 아버지가 됩니다.”
    손흥민도 에세이 표지에 “나의 축구는 온전히 아버지의 작품이다”라고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감사와 존경심을 거듭 각인했다. 오리지널 ‘아빠 찬스’로 명명하고 싶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두 명의 강원도 아버지가 보여준 부정(父情)과 그들이 내디딘 걸음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낸다.

     

    (삽화=박지영 기자)
    (삽화=박지영 기자)

    이상호는 촌스러운 별명 배추보이로 유명하다. 배추보이는 이상호가 최정상 선수로 성장하는 과정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
    지금 강원도 고랭지 배추밭은 사계절 힐링 관광 명소로 포장한 수사가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20여 년 전 폐광지역 배추밭을 개량한 썰매장에 서 있던 부자(父子)를 상상하면, 황량한 광야의 선구자가 느꼈을 외로움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이상호를 탄생시킨 전설의 무대는 정확히 정선 고한읍 소두문동 배추밭이다. 고랭지 배추밭은 스키장과 쌍둥이처럼 묘하게 닮았다.
    강원도의 힘으로 귀결되는 배추는 한국인 밥상의 필수품이다.
    배추는 특별하다. 김치의 주재료인 만큼 특별한 채소다. 채소의 지존으로 불릴 만하다. 또 배추는 힘도 세다. 배춧값은 해마다 널을 뛰며 농업인은 물론 정부, 소비자의 애간장을 태운다.
    아낌없이 주는 부정(父情)에는 코로나19도 끼어들 틈이 없다.
    모든 아버지가 오늘 저녁 식탁에서 자녀와 함께 강원도 고랭지 배추로 담아 알맞게 익은 김장김치의 환상적인 ‘푸드 콜라보레이션’ 레시피가 선사하는 평온한 저녁을 만끽하길 고대한다.
    아들과 함께 고독하지만 따뜻하고 정감넘치는 여정에 나섰던 아버지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탐닉하고 반추해 보는 시간이다. 방역과 거리 두기는 덤이다.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격언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거거거중지 행행행리각’(去去去中知 行行行裏覺). ‘가고, 가고, 가다 보면 알게 되고 행하고, 행하고, 행하다 보면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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