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뒤적뒤적] ‘무지개 사탕’의 추억, 먹먹하고 아련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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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의 뒤적뒤적] ‘무지개 사탕’의 추억, 먹먹하고 아련하여라

    • 입력 2022.01.24 00:00
    • 수정 2022.01.24 14:43
    • 기자명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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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이 책을, 모처럼 아침부터 눈발이 휘날리는 날 만났습니다.

    『옥춘당』(고정순 글·그림, 길벗어린이).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선정작으로 목탄 혹은 굵은 연필로 그린 듯한 투박한 그림이 대부분인 ‘만화책’입니다. 그림이 예쁘지는 않습니다. 많은 이야기가 담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림 하나에 많아야 서너 줄 붙거나 글이 전혀 없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다 읽어치우는 데 30분도 걸리지 않는 100쪽 남짓한 책입니다.

    그런데 이 책, 마음을 뒤흔듭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난 뒤 먹먹하고 아련해서 글을 쓰기 전에 아파트 창밖에 내리는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마음을 정리한 뒤에야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요.

    처음 책 제목을 보고는 어느 고택의 당호(堂號)인가 아니면 누구의 호인가 싶었습니다. 알고보니 ‘옥춘당’은 한국 전통의 사탕을 가리키는 보통 명사더군요. 사전을 찾아보니 ‘쌀가루에 여러 가지 빛깔로 물들여 여러 모양으로 만든 사탕’이라 풀이해 놓았더라고요. 왜 있잖습니까. 제사상이며 회갑연 상 등에 올리던 알록달록한 단 것, 흔히 ‘무지개 사탕’이라 부르던 것의 이름이 ‘옥춘당’이었습니다.

    이야기는 지은이의 할아버지, 할머니에 관한 딱 세 편입니다. ‘오줌은 두 칸, 똥은 세 칸’ ‘머무를 수 없는’ ‘금산요양원 13번 침대’.

    첫 번째 이야기는 전쟁고아였던 할아버지, 할머니에 얽힌 추억담입니다. 할아버지에게 화장실 휴지를 아껴 쓰라고 이르는 할머니의 잔소리가 제목입니다. 지은이는 늘 다정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신기했답니다. 자기 아버지, 어머니는 늘 다투기 바빴다나요. 낯을 가리는 할머니에게 유일한 친구이자 남편이었던 할아버지가 제사를 지낸 뒤 할머니 입에 넣어 주던, 제사상에서 가장 예뻤던 사탕 옥춘당. 기차역 근처 작은 술집에서 일하던 ‘술집 나가는 여자들’에게 기꺼이 방을 빌려주던 할아버지는 전쟁고아였기에 돌아갈 집이 없는 것이 가장 두려워서 그랬답니다. 이웃들이 항의하자 ‘술집 나가는 여자들’과 함께 ‘밤늦게 돌아다니지 않는다, 일요일마다 골목을 청소한다’ 등을 실천해 인심을 얻었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할아버지가 폐암으로 세상을 뜬 후 할머니가 조용히 스러지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고 싶지 않다며 집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는 변함없는 일상을 보내며 마지막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폐암 선고 후 6개월 뒤 할머니에게 “···형광등은 혼자 갈지 말고, 난방비 아낀다고 춥게 있지 말고, 휴지 아낀다고 궁상떨지 말고···” 등의 당부를 남긴 뒤 어느 날 혼자 조용히 당신의 몸을 닦고는 운명합니다. 혼자된 할머니는 이후 조금씩 말을 잃고 아무 때나 잠드는 조용한 치매 환자가 됩니다. “조용하고 얌전하게-무너지는” 할머니를 지은이는 “할머니는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이곳의 시간에는 관심 없는 사람 같았다”고 기억합니다.

    세 번째는 결국 요양원에 간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셔두고 온 날, 아버지는 자꾸 말을 더듬고 엄마는 아무 말도 않습니다. 어떤 심정이었을지 짐작이 갑니다. 지은이는 “돌봐 주는 사람들을 번거롭게 하지 않으려고” 머리를 짧게 자른 할머니가 추워 보였답니다. 요양원에서 종일 동그라미를 그렸다는 할머니는 가끔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답니다. 그렇게 그림책 읽기 훈련이며 먹고 싶은 음식, 하고 싶은 일을 이야기하는 요양원 사람들 풍경을 담아내던 지은이는 폐렴으로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된 할머니를 보며 “한 사람의 몸에서 시간이 빠져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닫습니다.

    책은, 할머니를 찾아온 할어버지가 “순임아, 아”하며 입에 옥춘당을 넣어 주고는 “가자”하고는 둘이 손을 꼭 잡고 떠나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할머니는 10년간의 요양원 생활을 마치고, 220㎜ 실내화를 남기고 떠나셨다. 할아버지가 떠나신 지 20년이 지난 해였다.”

    아동서 전문 출판사에서 낸 책이지만 어린이용도, ‘만화’도 절대 아닙니다.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것이, 읽고 나면 눈물 한 방울 똑 떨어뜨릴 듯한 혹은 읽는 이의 마음을 착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행여 설 명절에 온 가족이 모일 기회가 있다면 둘러앉아 가만가만 그림을 쓰다듬어 가며 읽어 보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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