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주년특집] 상. 도시계획으로 본 ‘춘천 아파트 반세기 변천사’
  • 스크롤 이동 상태바

    [창간2주년특집] 상. 도시계획으로 본 ‘춘천 아파트 반세기 변천사’

    도시 계획에 따른 주거 생활 변천사에 주목
    1971년 춘천지역 최초 '공무원 아파트' 준공
    80년대 택지 개발됐던 후평동은 재건축 바람
    도농 통합, 퇴계·석사지구 개발로 구조 확립

    • 입력 2022.01.10 00:02
    • 수정 2022.01.19 10:52
    • 기자명 권소담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동산 불패 신화. 춘천도 예외는 아니다. 3년 뒤 입주할 민간 임대 아파트 선착순 현장계약을 위해서라면 영하 14도 한파쯤은 문제없다. ‘아파트는 지금이 가장 싸다’라는 믿음에는 근거가 있는 걸까. MS투데이는 창간 2주년을 맞아 도시 계획에 따른 ‘춘천 아파트 반세기 변천사’에 집중했다. 부동산에 대한 욕망이 지역 주택 시장에 어떻게 투영됐는지 살펴봤다. <편집자주>

    소설가 박완서가 1976년 발표한 ‘포말의 집’은 당시 사람들의 아파트 주거 욕망에 스포트라이트를 집중한다. 아파트는 곧 성공과 새 시대의 상징이었고, 어려웠던 과거와의 작별이기도 했다.

    “이 아파트 단지의 주민들은 거의 개인 주택을 원하지 않는다. 개인 주택에 살던 시절을 지긋지긋해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좀 더 나은 생활에 대한 꿈은 더 큰 아파트 아니면 더 호화로운 아파트지 개인 주택하곤 상관이 없다. 아파트라는 첨단의 주택의 주민들은 이 첨단의 주택에 지극히 만족하고 이 첨단의 주택을 사랑한다.”

    현행 법령에서는 아파트를 ‘주택으로 쓰는 층수가 5개 층 이상인 주택’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현대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 한 채’는 사전적 의미의 주택이나 자산, 그 이상이다. 안정적인 주거와 ‘내 집 마련’이라는 사회적 성취를 위해 서민들은 앞으로의 30년을 기꺼이 저당 잡힌다.

     

    현재 춘천 후평사거리 부근에서 팔호광장 방면으로 촬영된 1970년대(추정) 항공사진. 사진 왼쪽 하단에 1971년 세워진 공무원 아파트 B동이 보인다. (사진=춘천문화원 발간 '춘천의 어제와 오늘' 수록 자료)
    현재 춘천 후평사거리 부근에서 팔호광장 방면으로 촬영된 1970년대(추정) 항공사진. 사진 왼쪽 하단에 1971년 세워진 공무원 아파트 B동이 보인다. (사진=춘천문화원 발간 '춘천의 어제와 오늘' 수록 자료)

    ▶‘아파트’라는 욕망의 시작
    일제강점기 경성(현재의 서울)은 극심한 주택난을 겪었다. 1930년대 7만 세대 중 2만 세대가 셋방살이했고, 집 없는 주민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주택난이 심각한 도시문제로 부상했다.

    이때 등장한 ‘아파트’라는 신식 주거문화는 임대 사업적 측면이 강했다. 한 건물에 방을 여러 개 만들어 두고 좀 더 나은 주거 환경을 찾는 독신 직장인에게 세를 놓아 부수입을 얻는 수단이었다.

    현대적 관점의 국내 최초 아파트는 1930년 4층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지어진 서울 충정로의 ‘유림 아파트’ 또는 회현동 ‘미쿠니 아파트’다. 해방 이후 최초 아파트로는 1956년 세워진 주교동 중앙아파트, 1958년 건설된 종암1동 종암아파트 등이 꼽힌다.

    1970년대 서울 강남지역 도시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아파트는 전형적인 주거방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당시 사금융 시장이 팽창하고 중산층이 생겨나면서 아파트 수요가 급증했다. 또 건설업이 성장하며 대형 개발 업체가 등장한 영향도 컸다.

    지금은 ‘단군 이래 최대의 재건축 사업’으로 불리는 반포주공아파트(당시 남서울아파트)가 1973년, ‘아파트 공화국’의 상징과 같은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1976년,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1979년 각각 준공됐다.

     

    남부시장 근처에 자리잡은 춘천 공무원 아파트 A동의 과거 전경. 1971년 준공된 이 아파트는 춘천지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파트다. (사진=춘천시청, 춘천문화원)
    남부시장 근처에 자리잡은 춘천 공무원 아파트 A동의 과거 전경. 1971년 준공된 이 아파트는 춘천지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파트다. (사진=춘천시청, 춘천문화원)

    ▶도시 계획에 따른 주거지 조성
    비슷한 시기 춘천에도 처음 아파트가 등장했다.

    1960년대 현재의 중앙로 부근에 업무 시설이 들어서면서 도심이 번성하기 시작했고, 춘천댐과 의암댐 건설로 수몰민이 팔호광장 일대로 집단 이주하는 등 지역 내 주거 지형도가 바뀌기 시작한 영향이 컸다.

    현존하는 춘천지역의 가장 오래된 아파트는 효자동의 공무원아파트 A동이다.

    이 아파트는 1971년 준공된 1개 동 30세대 규모의 5층짜리 건물로 외지에서 온 공무원들에게 주거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지어졌다.

     

    춘천 공무원 아파트 A동의 현재 모습. (사진=이정욱 기자)

    같은 해 4층 32세대 규모로 건립된 후평동 공무원 아파트 B동은 지난 2008년, 38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철거됐다.

    이어 1976년 후평동에 봉의 아파트(6개동·200세대)가 지어졌고, 지금은 춘천 더샵이 들어선 당시 후평 주공 1단지(30개동·1200세대)도 역시 같은 해 입주했다.

    이석권 강원대 건축학과 교수의 박사 논문 ‘춘천시 도시공간구조의 변화와 예측에 관한 연구’와 춘천문화원 춘천학연구소가 발간한 '지식 in 춘천' 등에 따르면 1970년대 춘천 시가지는 동남 방향을 기준으로 발달했다.

    1968년 교동·효자동 토지구획 정리 사업과 1969년 후평동 공업단지 조성 등으로 도심지와 연결되는 간선 도로가 개발되면서 후평동이 주거 지역으로 부상했다. 또 효자2동과 석사동 주거 지역 개발은 강원대와 춘천교대가 중심이 됐다.

    당시 1980년 전국소년체전, 1985년 전국체전 유치로 시내 내부 토지구획 정리 사업과 도로망 정비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된 결과다.

     

    1980년대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옛 후평주공1단지 전경. 이 아파트는 지난 2008년 '춘천 더샵'으로 재건축됐다. (사진=춘천시청, 춘천문화원)
    1980년대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옛 후평주공1단지 전경. 이 아파트는 지난 2008년 '춘천 더샵'으로 재건축됐다. (사진=춘천시청, 춘천문화원)

    1980년대 들어서는 업무, 상업, 유흥 시설이 혼재돼 복잡한 원도심에서 우수한 주거 환경과 개발 가능 용지가 많은 동북쪽(후평동·효자3동)과 남동쪽(효자2동·퇴계동·석사동)으로 시가지 확장이 이뤄졌다.

    특히 후평동 지역에서 대규모 택지 조성 사업이 이뤄지며, ‘주공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춘천 일성 트루엘 더퍼스트와 후평 우미린 뉴시티로 재건축된 후평주공 2단지(20개동·650세대), 3단지(28개동·820세대) 외에도 후평주공 4~7단지가 각각 건설됐다.

    앞선 재건축 성공 사례를 지켜보며 비슷한 시기 입주한 후평 주공 다른 단지들도 함께 들썩이는 이유다.

    초기에 세워진 소망아파트(1980년)와 에리트아파트(1981년), 세경 1차(1984년) 등도 모두 후평동에 자리하고 있다.

     

    1984년 입주한 후평동 세경 1차 아파트. 단지 너머 재건축으로 들어선 후평 우미린 뉴시티가 보인다. (사진=이정욱 기자)
    1984년 입주한 후평동 세경 1차 아파트. 단지 너머 재건축으로 들어선 후평 우미린 뉴시티가 보인다. (사진=이정욱 기자)

    아파트보다 층수가 작은 4층 이하 공동주택인 연립주택의 경우 1980년대 초반 집중적으로 춘천에 공급됐다.

    삼정주택(1981년·48세대)과 소양연립(1981년·63세대) 등을 비롯해 효자동, 후평동을 중심으로 연립주택이 다수 들어섰다. 최근 효자2동 재건축정비사업 조합설립 추진준비위원회(가칭)가 결성되는 등 이 지역에서도 재건축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춘천 효자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강원대 인근 효자동의 오래된 일부 연립주택을 중심으로 재건축 소문이 돌면서 일부 매물의 경우 시세보다 아주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춘천 효자동 연립주택 밀집 구역. (사진=이정욱 기자)
    춘천 효자동 연립주택 밀집 구역. (사진=이정욱 기자)

    ▶1990년대 도시구조의 확립
    1990년대에는 본격적인 택지개발이 시작돼 도시 공간이 외연적으로 확장됐다.

    1995년 춘천시와 춘성군의 통합으로 면적이 크게 확대됐으며, 현재와 같은 구조의 춘천지역 주거 생활권이 틀을 잡기 시작한 때다.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자료를 살펴보면, 1979년 이전 춘천지역 아파트 건축은 230세대에 불과했다. 이어 1980년대(3449세대)를 거쳐 1990년대 2만7611세대의 아파트가 새로 들어섰다.

    특히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퇴계지구는 1987~1999년까지 4회에 걸쳐, 석사지구는 1988~1994년 택지 개발사업에 의해 신시가지로 조성되며 빠른 속도로 인구가 유입됐다.

    석사·퇴계지구 인구는 △1965년 6760명 △1979년 1만3429명 △1987년 1만2806명 △1999년 5만8106명 △2006년 8만1996명 등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90년대 후반 퇴계주공 4단지 건설 현장. 택지 개발 이후 퇴계지구는 춘천의 대표적인 주거 구역으로 부상했다. (사진=춘천시청, 춘천문화원)
    1990년대 후반 퇴계주공 4단지 건설 현장. 택지 개발 이후 퇴계지구는 춘천의 대표적인 주거 구역으로 부상했다. (사진=춘천시청, 춘천문화원)

    2000년대 이후에는 동내면 거두리, 동면 만천리와 장학리, 우두동 등 기존 도심과 떨어진 외곽지역에서의 택지개발도 본격화됐다. 2000~2004년 7641세대, 2005~2009년 1만5231세대의 아파트가 춘천에 건축됐다.

    최근에는 삼천동과 온의동에 대규모 브랜드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며 신흥 주거 타운으로 부상했다.

    ▶장기적인 도시 계획, 주거안정의 출발
    ‘2030 춘천도시기본계획’을 살펴보면, 춘천시는 오는 2030년 계획인구를 42만명으로 설정하고 있다.

    춘천지역 주택 수요량은 오는 2025년 15만8268세대, 2030년 18만4800세대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2019년 기준 춘천지역 주택 수는 13만2812세대, 이중 아파트는 6만5921세대(49.6%) 수준이다.

    인구 정책이 계획대로 흘러간다면, 향후 10년간 5만여 세대의 주택이 더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석권 강원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주거 환경에 있어 경관, 용적률, 면적, 단가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입주민의 성향이나 도시 활성화 정도에서 차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다각도에서 종합적인 분석을 한 후 공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며 “20~30년 후 주민들의 생활 양식이나 도시구조 등을 고려한 장기적인 도시 계획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권소담 기자 ksodamk@mstoday.co.kr]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