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없는 인생의 낭만··· ‘먼지로 쓴 시_불멸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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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없는 인생의 낭만··· ‘먼지로 쓴 시_불멸낭만’

    춘천 한선주 작가, 서울-춘천 연달아 전시
    낭만의 순간··· 허무하지만 아름다운 유한성
    필멸로 배운 불멸, 사라지는 것 아닌 ‘순환’

    • 입력 2021.12.25 00:01
    • 수정 2021.12.28 09:32
    • 기자명 조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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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선주 작가의 ‘작별을 위한 기도’. (사진=한선주 작가)
    한선주 작가의 ‘작별을 위한 기도’. (사진=한선주 작가)

    한 화자가 등장한다. 빈 땅을 쓸고 또 쓴다. 쓸고 쓸어서 결국 아무것도 없는 땅을 만들어야만 자신이 서 있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생긴다.

    그림에 화자라니 어색할 수 있다. 하지만 한선주(34) 작가의 그림에는 분명 ‘이야기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의 작업 방식은 문학적 성향이 짙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그려진 빈집에 영감을 받은 작가는 이를 종이집으로 각색했다.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빈 종이집으로 한지의 질감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인간 존재의 가벼움과 덧없음을 표현했다.

    “화자의 반복인 행동에서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이 드러나요. 수행 같기도 하죠. 내 안에 무언가를 쓸어내기도 하고, 나를 덜어내는 작업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야만 살 수 있는 겁니다.”

     

    작업실에서 한선주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진=조아서 기자)
    작업실에서 한선주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진=조아서 기자)

    한 작가의 작업은 결핍을 파고드는 과정부터 시작된다. 감정의 본질적인 근원을 끊임없이 탐구하며 심연 깊이 가라앉는 시간을 감당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에서 고독, 불행, 소외를 대면한다. 삶과 죽음, 불멸과 필멸 사이에 자신만의 사색을 채운 서사를 그림으로 풀어낸다.

    그런 그가 ‘낭만’을 이야기한다. 심지어 낭만이 사라지지 않는단다. 전시 ‘먼지로 쓴 시_불멸낭만’은 이달 22일부터 26일까지 서울의 학고재 아트센터에 이어 내년 1월 4일부터 16일까지 춘천의 개나리 미술관에서 열린다.

    “낭만적인 순간이 없어 눈물이 난 적이 있어요. 그래서 낭만은 현실적이지 않은,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낭만이 찰나의 순간이라면 우주적 관점에서 아주 찰나를 살다가는 인간의 모든 시간이, 부단히 살아내는 하루가 낭만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하고 개개인의 인생을 바라보니 그토록 아름답고 낭만적일 수가 없더라고요.”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단어는 ‘멜랑꼴리(melancholy)’다. 우울에 해당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이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우울과 슬픔은 그 모습과 성격이 계속 변한다. 

    “양극단의 감정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알 거예요. 슬픈데 기쁘고, 기쁜데 슬플 수 있더라고요. 상반된 두 감정이 동시에 휘몰아친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하나의 감정이었어요. 슬픔은 저를 움직이게 했던 동력이었어요. 그런데 그 와중에도 빛나고 찬란한 희열의 순간들을 만끽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어요.”

     

    한선주 작가의 ‘끝없는 세계2’. (사진=한선주 작가)
    한선주 작가의 ‘끝없는 세계2’. (사진=한선주 작가)

    필멸, 모든 것은 당연하다는 듯 사라진다. 하지만 사라진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그 모습을 바꾼 채 순환하고 있다. 겨울이 사라지고 봄이 오는 것이 아니라 겨울과 봄이 본래 하나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는 “현재의 한선주와 19살의 한선주가 다르지만 같다”며 “예전에는 정답이 있고 정답이 아닌 것들은 모두 오답이라 생각했는데 절대적인 정답도 절대적인 오답도 없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작업을 통해 이러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예술이라는 건 사실 굉장히 이기적인 작업이에요. 창작의 영역이 지극히 자기만의 세계에서 이뤄지잖아요. 물론 훗날 작품이 사람에게 퍼지고 영향을 주는 그런 시간이 오기도 하죠. 그때서야 ‘당시엔 몰랐지만, 빛나던 순간이었구나’ 깨닫는 거죠. 훗날까지 기다려야 하는 그 시간적 간극이 여전히 괴롭지만 앞으로도 제 작품이 누군가에게 와닿을지 고민하는 시간들을 치열하게 보낼 수밖에 없네요.(웃음)”

    이번 전시는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다. 서사적인 구조로 스토리를 풀어내던 이전 전시들과 달리 단편적인 사색들이 하나의 주제를 반복해서 강조한다.

    “문학으로 따지면 ‘시’를 표현했어요. 글 쓰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가장 적절한 표현으로 문장을 완성하듯 이야기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작가들이 다양한 플롯을 쓰듯 앞으로도 더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그리고 싶어요.”

    한선주 작가는 춘천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프로덕트디자인과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원 동양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2015년 춘천으로 귀향해 작품활동을 벌이고 있다.

    [조아서 기자 chocchoc@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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