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2021] ‘attacca’ 이종진 지휘자, 맨손으로 완성한 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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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듀 2021] ‘attacca’ 이종진 지휘자, 맨손으로 완성한 앙상블

    16일 고별무대 성황리··· 연내 사임
    2015년 임명, 6년간 춘천시향 주도
    가장 기본적인 교향곡 시리즈 다뤄
    "향후 음악 봉사하며 책임 다할 것"

    • 입력 2021.12.19 00:01
    • 수정 2021.12.20 00:02
    • 기자명 조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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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부터 올해까지 춘천시립교향악단을 이끈 이종진 상임지휘자. (사진=춘천시립예술단)
    2015년부터 올해까지 춘천시립교향악단을 이끈 이종진 상임지휘자. (사진=춘천시립예술단)

    “지휘자에게 지휘봉이 필수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손이 그리는 부드럽고 섬세한 움직임으로 지금의 앙상블을 완성할 수 있었죠.”

    판사에겐 법봉, 경찰관에겐 경찰봉이 있다. 지휘자에게도 ‘열한 번째 손가락’이라고 불리는 지휘봉이 있다.

    초기 지휘의 모습은 지금과 달랐다. 지휘자는 6피트 길이의 지팡이를 땅에 쿵쿵 찍으면서 박자를 세는 메트로놈 역할에 불과했다. 지팡이 형태의 지휘봉에서 바이올린 활, 돌돌 만 종이, 손수건 등의 과도기를 거쳐 19세기쯤에야 지휘봉은 작아지기 시작했다.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지휘봉을 쓴 선구자는 당대를 주름잡았던 작곡가이자 지휘자 펠릭스 멘델스존(1809~1847), 프란츠 리스트(1811~1886),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 등이다.

    그러나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피에르 불레즈, 쿠르트 마주어처럼 맨손 지휘로 이름을 날린 유명 지휘자도 있는 만큼 지휘봉은 필수가 아닌 선택의 영역이기도 하다.

     

    춘천시립교향악단이
    춘천시립교향악단의 연습 모습. (사진=춘천시립예술단)

    10년 전부터 지휘봉을 내려놓고 열 개의 손가락으로 수십명에 달하는 연주자를 이끌어온 춘천시립교향악단의 이종진 지휘자 역시 음악적 뉘앙스를 더 섬세하게 표현하고자 지휘봉을 졸업했다고 한다.

    “지휘봉의 기능은 분명히 있죠. 멀리 있는 단원들에게 잘 보이고 명확하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어요. 춘천시향에서도 서로가 익숙하지 않던 초반에는 지휘봉을 써달라는 요구가 있었어요. ‘이제 지휘봉 들 힘도 없습니다’라고 장난처럼 말했죠. 빠르기, 세기, 연주의 흐름을 손으로 표현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더라고요. 연습하러 가는데 지휘봉을 안 챙겨 다시 돌아간 적도 있었는데 이젠 그럴 일이 없으니 편해졌죠.(웃음)”

    단원들과 합을 맞추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는데, 끊임없이 소통하고 이해와 교감을 바탕으로 6년여간을 함께했음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덕분에 그와 함께한 춘천시향은 완성도 높은 연주와 발전된 기량을 뽐내며 점점 국내 음악계에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휘자가 주도해 색깔을 입히거나, 악단의 색깔에 조화를 이루거나 지휘자마다 성향이 다릅니다. 처음 춘천시향 상임지휘자로 부임했을 때 내가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아닌 춘천시향의 발전을 위한 계획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합주능력, 앙상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가장 기본적이어서 더 어려운 베토벤부터 브람스, 멘델스존, 차이콥스키 교향곡을 시리즈로 다뤘습니다. 클래식의 기본적인 레퍼토리를 섭렵하면서 관객들에게도 한 작곡가가 추구했던 음악 세계를 깊이 있게 소개할 수 있었죠. 6년 동안 춘천시향만큼 발전한 악단은 없다고 자신합니다.”

     

    지난 14일 춘천시립교향악단 사무실에서 만난 이종진 지휘자. (사진=조아서 기자)
    지난 14일 춘천시립교향악단 사무실에서 만난 이종진 지휘자. (사진=조아서 기자)

    흥미롭게도 그가 춘천시향과 함께한 마지막 곡은 19세기 지휘봉을 유행시켰던 멘델스존의 교향곡 제2번(찬미의 노래)이다. 지휘봉을 매개로 ‘음악 해석자로서의 지휘자’라는 변화를 이끈 멘델스존의 곡을 지휘봉 없이 맨손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지난해 서울 롯데아트홀에서 공연하려던 곡인데 코로나19로 무산됐어요. 못 보여드린 게 아쉬워 춘천시민들과 공연을 함께하고자 선택했죠. 사실 춘천의 아마추어 합창단과 합을 맞추고 싶었으나 최근 다시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려 강릉 합창단과 하게 됐습니다. 아쉬운 마음이지만 공연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어요.”

    이종진 지휘자의 임기 말년이었던 지난해와 올해는 코로나19로 특히 공연계의 타격이 컸던 시기다. 일상이 멈추고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는 경험을 했던 이 지휘자와 단원들은 상황이 더 나아진 건 아니지만 적어도 올해는 예정대로 공연할 수 있어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모든 게 “춘천문화재단의 의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이번 달을 끝으로 춘천시향에서 6년 6개월간의 임기를 마친 그지만, 그의 지휘는 ‘fine(악장의 마침)’가 아닌 ‘attacca(쉬지 않고 계속)’로 현재진행형이다.

    “소외계층과 개발 도상국을 찾아가 음악으로 봉사하고 싶어요. 의사들은 의료봉사하며 의술로 남을 도울 수 있잖아요. 옛날부터 참 부러웠습니다. 음악은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픔을 치유하는 힘이 있거든요. 음악 봉사는 앞으로 남은 저의 책임과 의무라고 생각해요.”

    [조아서 기자 chocchoc@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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