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신장 169.6㎝ 춘천여고의 전국 제패··· ‘승리의 주역’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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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균 신장 169.6㎝ 춘천여고의 전국 제패··· ‘승리의 주역’ 만나다

    협회장기, 주말리그 왕중왕전, 전국체전 3관왕
    춘천여고 농구부 76년 역사에서 금자탑 세워
    김연경 배구선수처럼 ‘해보자, 해보자’ 다짐해
    “올해 4명 졸업해 내년 팀 컬러 많이 바뀔 것”

    • 입력 2021.11.28 00:01
    • 수정 2021.11.29 00:13
    • 기자명 조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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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여자고등학교 농구부와 김영민 코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정욱 기자)
    춘천여자고등학교 농구부와 김영민 코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정욱 기자)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지 일주일이 지난 25일. 춘천여자고등학교를 찾았다. 이 시기엔 1, 2학년 학생은 다음 학년 준비로, 3학년 학생은 수능 성적 발표를 기다리며 학교엔 살포시 무거운 긴장감이 감돈다. 

    오후 3시 고요하고 적막한 춘천여고에서 활기찬 구호와 가벼운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체육관에 들어서기 전 복도에서부터 들리는 텅, 통, 쿵 활기찬 울림은 쉴 새 없이 번졌다.

    체육관에서는 8명의 선수가 넓은 코트 위를 활보하며 훈련을 하고 있었다. 지난 10월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에서 여자 고등부 우승을 거머쥐며 올해 3관왕을 석권한 승리의 주역들이다.

     

    지난 10월 경북 김천체육관에서 열린 제102회 전국체육대회 여고부 우승을 차지한 춘천여고 농구부원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김영민 코치)
    지난 10월 경북 김천체육관에서 열린 제102회 전국체육대회 여고부 우승을 차지한 춘천여고 농구부원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김영민 코치)

    김영민 코치는 선수 시절을 보낸 이곳에서 17년째 춘천여고 농부팀 코치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올해 협회장기와 주말리그 왕중왕전에서 지도자상을 타며 잊지 못할 한 해를 보냈다.

    185㎝로 팀내 최장신인 박성진(17) 선수는 센터를 맡고 있다. 올해 큰 활약으로 눈도장을 찍은 박 선수는 지난 5월 양구 문화체육관에서 열린 제46회 협회장기에서 여고부 MVP로 선정됐다.

    양유정(18) 선수도 지난 8월 2021 한국 중고농구 주말리그 왕중왕전에서 여고부 MVP로 뽑혔다. 양 선수는 평소 인정받는 수비 실력과 더불어 결승전 당시 3점슛을 성공시키며 멀티플레이어로 승리를 이끌었다.

    2021년 협회장기, 주말리그 왕중왕전, 전국체전 3관왕,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춘천여고 농구부 76년 역사에서 금자탑을 세운 이들을 만났다.

     

    왼쪽부터 박성진 선수, 양유정 선수, 김영민 코치. (사진=이정욱 기자)
    왼쪽부터 박성진 선수, 양유정 선수, 김영민 코치. (사진=이정욱 기자)

    Q. 올해 3관왕을 기록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늦었지만 소감을 말해 달라.

    박성진 선수 언니들의 마지막 10대를 함께하고 빛낼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고 값진 시간들이었다. 경기마다 연습처럼 한다고 생각하고 뛰었다. 아직까지도 3관왕을 했다는 게 실감 나지 않는다.

    양유정 선수 일단 마지막까지 우승해서 정말 기쁘다. 한 경기, 한 경기 소중히 생각하고 뛰었더니 좋은 성적이 뒤따랐다.

    김영민 코치 올해 전국체전까지 우리 선수들이 마무리를 멋지게 장식했다. 아마 우승해야지 했으면 이렇게 좋은 성적을 못 냈을 것 같다. 매일 훈련시키면서 성실히 발전하는 선수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시간들이었다. 아직도 얼떨떨하다.

    Q. 코트에서 각자 역할이 다르다. 어떤 이미지인가.

    박성진 선수 아빠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존재만으로도 든든하지 않나 싶다.(웃음)

    양유정 선수 다재다능하다고 주변에서 말한다.(웃음) 궂은 일을 맡아서 하는 편이라 팀에서 없어선 안 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김영민 코치 양유정 선수는 한 마디로 ‘에너자이저’다. 경기 초반과 후반에 뛰는 속도가 일정할 정도로 한결같은 스피드로 체력이 굉장히 좋다. 평소에는 장난치는 걸 좋아하는 개구쟁이, 골목대장 느낌이다. 박성진 선수는 저희 팀의 유일무이한 선수다.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건 물론이고 솔선수범하는 자세가 있어 언니들도, 동생들도 모두 믿고 따르는 친구다.

    Q. 협회장기엔 숭의여고, 주말리그 왕중왕전에선 삼천포여고, 전국체전은 수피아여고와 맞붙어 격파했다. 어떤 전략이 주효했다고 생각하는가.

    박성진 선수 상대편의 기세에 눌리지 않고 도망다니지 않으려고 마인드 컨트롤을 열심히 했다. 협회장기 초반 상대편 기세에 눌려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경기가 있었는데 참 아쉬웠다. 그 뒤부터 소위 ‘쫄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더니 결과와 상관없이 경기 후에 마음가짐이 달랐다.

    양유정 선수 전담마크하는 상대팀 선수가 공력적으로 나오거나 파울이 생기면 조금 위축됐었다. 그래도 경기에 집중해서 빨리 회복하려고 정신을 다잡았다. 정신적 회복력을 키우려고 애썼다.

    김영민 코치 우리 선수들이 가장 잘하는 걸 어떻게 최고로 끌어낼지 고민했다. 특히 전국체전 결승전에서 만난 수피아여고 농구부는 우리 팀과 팀 컬러가 비슷했지만 저희 선수들이 3학년이 많다 보니까 조금 더 단단했다. 체력적인 부분도 걱정했는데 선수들 한 명 한 명이 자기 자리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줘서 체력과 의지로 이길 수 있었다.

    Q. 팀의 평균 신장은 169.6㎝로 크지 않다. 그런데도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승리 비법이 무엇인가.

    김영민 코치 개개인의 기술과 활약이 돋보이는 남자 농구와 달리 여자 농구는 팀워크와 응집력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팀의 센터인 박성진 선수가 올해 U19 대표팀에 막내로 뽑혀 주말리그 왕중왕전을 센터 없이 치뤘다. 최장신 센터 선수의 부재에도 춘천여고 농구부의 기량이 꺾이지 않은 것은 응집력과 결속력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당시 선수들에게 ‘신장이 아닌 심장으로 경기하자’고 말했다.(웃음) 여자 농구의 진수인 결속력이 승리의 비법이지 않을까.

    Q. 세 번의 전국 경기에서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면?

    박성진 선수 전국체전 마지막 시합 때 진도윤 선수가 코트에 나가기 전에 김연경 배구선수가 도쿄올림픽에서 했던 ‘해보자, 해보자’를 따라했다.(웃음)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니라서 웃기기도 했지만 힘이 되고 전투력이 상승했다.

    양유정 선수 코로나19 때문에 관중들 없이 경기를 했다. 경기장 안에 들어올 수도 없는데 부모님과 졸업한 선배들까지 경기장 밖에 돗자리를 깔고 응원했다. 그런 응원 덕분에 올해 단 한 선수도 부상 없이 경기에 온전히 임할 수 있었다.

    김영민 코치 올해 첫 우승이었던 협회장기가 끝나고 교장선생님과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환호했다. 춘천여고 농구부 선수로 뛰던 1991년 추계연맹전 우승 이후 30년 만의 우승 트로피였다. 올해 선수가 아닌 코치로서 다시 모교에 우승을 안겨 감회가 새롭고 눈물이 났다.

     

    춘천여고 농구부 선배들은 졸업한 후에도 후배들에게 응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왼쪽은 신한은행 강계리 선수가 제작한 음료수, 오른쪽은 KB은행 김민정 선수가 후배들에게 선물한 운동화다. (사진=김영민 코치)
    춘천여고 농구부 선배들은 졸업한 후에도 후배들에게 응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왼쪽은 신한은행 강계리 선수가 제작한 음료수, 오른쪽은 KB은행 김민정 선수가 후배들에게 선물한 운동화다. (사진=김영민 코치)

    Q. 춘천여고 농구부 출신 선배들이 후배들을 잘 챙긴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응원·지원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박성진 선수 신한은행 강계리 선배가 우승 축하한다며 저희 잘 부탁드린다고 단체 사진을 넣은 음료수를 모든 선생님께 드렸다. 덕분에 기도 살고 정성이 느껴져서 감동 받았다.

    양유정 선수 KB은행 김민정 선배가 춘천에서 농구 하는 초·중·고 학생들에게 운동화를 선물했다. 저희를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감사하고 잊지 못할 선물이었다.

    김영민 코치 야외 훈련을 2년 동안 못했다. 다른 팀과 만나서 연습경기를 할 수 없어 훈련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런데 제자들이 후배들을 위해 퇴근하고, 각자 일과를 마치고, 야간 훈련장에 찾아와 같이 땀을 흘렸다. 정말 고마웠다.

    Q. 선수로서, 코치로서 이끌어갈 농구부의 2022년 모습은?

    박성진 선수 사실 부담감이 크다. 언니들과 헤어지는 것도 많이 아쉽다.(울먹) 특히 올해 정말 좋은 성적을 내서 내년에도 이만큼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이 많다. 작년 동계 훈련 때 김영민 코치님이 ‘농구에 미쳐봐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부담을 내려놓고 내년엔 올해보다 더 농구에 미쳐서 즐기려고 한다.

    양유정 선수 대학 진학을 앞두고 새로운 팀에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고민이 많다. 언제나 함께하고 싶은 우리 농구팀을 떠나 또 새로운 팀 색깔에 잘 스며들 수 있도록 열심히 할 생각이다.

    김영민 코치 올해 고3인 선수가 9명 중 4명이었다. 내년에 예정된 신입 부원은 1명뿐이다. 그만큼 단단하고 당찬 친구들이 많이 졸업하는 만큼 아마 팀 컬러가 내년에는 많이 바뀔 것 같다. 그래도 선배들을 보고 함께한 고2 친구들이 내년부턴 맏언니로서 팀을 잘 결속할 것이라고 믿는다.

    Q. 나에게 농구란?

    박성진 선수 표현법이다. 원래 스스로를 잘 드러내지 못하고 표현에 서툴렀는데 농구를 하면서 자신감도 얻고 적극적으로 ‘나’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양유정 선수 활력소다. 농구를 할수록 힘이 난다.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

    김영민 코치 계륵이다. 너무 힘든데 너무 좋아서 놓을 수가 없는 그런 존재다.

    [조아서 기자 chocchoc@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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