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뒤적뒤적] 사전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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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의 뒤적뒤적] 사전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 입력 2021.11.15 00:00
    • 수정 2021.11.15 11:15
    • 기자명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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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사전(事典)은 말할 것도 없고 사전(辭典) 또한 ‘사전(死典)’이 되다시피 한 지 오래입니다. 예전에는 갖춘 이의 지적 품위를 돋보이게 하는 백과사전 같은 지식과 정보의 모음이 집안에 떡하니 자리 잡고는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학생이 있는 집이라면 으레 영어사전이나 옥편이 한두 권쯤 있기 마련이었지요. 모두 옛날 이야기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온갖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되자 구닥다리 종이 사전들은 어느새 집에서 찾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어느 유명 작가는 유일하게 곁에 두고 아껴 읽는 책이 국어사전이라 했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이 중에서 가장 ‘천대’받는 것이 국어사전인가 합니다. 늘 쓰는 말이고, 익히 아는 말만 써도 보통사람들의 일상생활에는 전혀 지장을 받지 않으니까요. 그러다보니 “00팀 올해로 9연패(連霸)”하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 인터넷에는 ‘우승했는데 연패(連敗)라니 무슨 말이냐’는 질문들이 쏟아진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나옵니다.

    국어사전에 대한 수요가 이처럼 시들하니 우리말을 다룬 책들은 그나마 ‘고유어’니 ‘사자성어’니 하는 특정한 컨셉을 가지고 엮어낸 책들이 주류를 이룹니다. 오늘 소개하려는 『우리말 절대지식』(김승용 엮고 씀, 동아시아) 역시 크게 보면 이런 책에 속하는 속담사전입니다. 제목은 다소 딱딱하지만 말입니다.

    책은 여러 매체에 속담 관련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던, 이 사전의 가장 큰 미덕은 ‘재미’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모았을까 싶은(15년간 품을 들였다네요) 3500여개의 속담에 300개가 넘는 이미지도 대단해 보이지만 무엇보다 사전답지(?) 않은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눈치코치가 없다’는 표제어를 볼까요. ‘뭐 이런 말까지···’ 싶은 의아심이 살짝 들지만 속담을 포함한 관용표현 사전이려니 하고 우선 넘어갑니다. 이어 “매우 미련하고 눈치가 없다는 말”이라고, 여느 사전 수준의 기계적 뜻풀이가 먼저 나오는데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반대]라 해서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서도 새우젓 얻어먹는다’가 나오고 [현대]라 해서 ‘센스가 형광등이다’란 풀이가 이어집니다. 여기에 구형 형광등은 점등관이 깜박깜박한 뒤에 뒤늦게 형광등에 불이 들어오던 것에 빗대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고 몇 차례 눈치를 줘야 알아채는 사람에게 이 말을 썼다고 유래를 설명해줍니다.

    이뿐인가요? 산부인과 의사가 넌지시 ‘아기옷을 분홍색(또는 하늘색)으로 준비하는 게 좋겠다’는 식으로 태아 성별을 알려줘도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있다고 사례를 들어줍니다. 덧붙여 ‘눈치를 사 먹고 다닌다’ ‘눈치가 발바닥’이라는 관련 표현까지 소개합니다. 이러니 표제어 하나를 보다가 책을 놓기 힘들게 만들 정도로 흥미롭습니다.

    재미뿐 아니라 무릎을 칠 이야기도 그득합니다. 예를 들어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정작 해야 할 것은 건성으로 하는 행태를 두고 흔히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콩밭이랑 무슨 상관이람 하는 생각해본 적 없나요? 지은이에 따르면 이는 ‘비둘기 마음은 콩밭에 있다’가 원형이라네요. 이를 보니 ‘아하’ 소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여야의 대통령 후보가 정해지면서 갈수록 뜨거워지는 정치판, 고민하는 유권자들이 눈여겨보아야 할 속담도 실렸습니다. ‘눈먼 머리가 몸통을 벼랑으로 이끈다’는 말입니다. 지은이는 이를 “우두머리나 길잡이가 못나고 어리석으면 모두에게 해가 된다는 말”이라 풀어 놓았습니다. 그러고는 [현대]에 ‘못난 제왕은 재앙’ ‘리더란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길을 잘 아는 사람’이란 현대식 표현을 덧붙였습니다. 이 정도면 ‘속담의 지혜’ 혹은 ‘살아있는 속담’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나요?

    당연히 ‘시렁 눈 부채 손’ ‘가난한 상주 방갓 대가리 같다’ ‘향청에서 개폐문하겠다’ ‘황아장수 망신은 고불통이 시킨다’ 등 요즘 잘 쓰이지 않거나 뜻을 모르는 옛 속담들도 놓치지 않은 점이야 더 말할 것도 없죠.

    사족을 더하자면 이 책은 2016년 출간되자 여러 출판상을 받았던 것을 고치고 더해 낸 개정증보판입니다. 그만큼 인정받고 사랑받은 책이란 뜻인 만큼 가까이 두고 아껴가며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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