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마음풍경] 진실을 조작하고 따르는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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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원의 마음풍경] 진실을 조작하고 따르는 심리

    • 입력 2021.11.14 00:00
    • 수정 2021.11.14 00:22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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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먼저 질문 하나 하지요. 우리나라에 구석기시대가 있었을까요. 지금 와서 보면 문제 같지도 않은 문제인데 1964년 충남 공주 석장리에서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 구석기시대가 없었던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유물이 나왔는데도 한반도의 구석기시대 실존 여부는 상당 기간 논란이 되었습니다. 1978년 경기도 연천 전곡리에서 구석기시대의 주먹도끼가 발견되자 세계 고고학회가 놀랐습니다.

    주먹도끼를 발견한 사람은 우리나라 고고학자가 아니라 일요일에 그곳으로 소풍 갔던, 대학에서 고고학을 공부한 미군 병사였습니다. 이후 유물의 연대측정법이 발전하여 전곡리 유물들이 27만년 전의 것으로 밝혀지자 한국학회도 놀랐지만, 일본 역사학계가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까지 일본은 4만년 전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가장 오래된 것이었습니다.

    이럴 때 발현되는 것이 얼치기들의 맹목적 자기 현시욕과 애국심입니다. 일본 동북구석기문화연구소에 후지무라는 고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20만년 전, 40만년 전, 50만년 전, 70만년 전의 구석기 유적을 잇달아 발굴하여 고고학계의 ‘마이다스의 손’이라고 불리며 일본 국민의 자존심을 한껏 세워줬습니다.

    2000년 유적 발굴 현장에서 이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가짜 석기를 파묻는 장면이 신문 카메라에 찍히면서 그동안 그가 발굴한 모든 구석기 유적이 조작되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70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갔던 일본의 구석기 연대가 다시 4만년 전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국제적 망신인데 우리나라에는 이런 사례가 없을까요? 1992년 어느날, 3개의 공중파 방송이 일제히 경남 통영 한산도 바다 밑에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국보급의 총통이 인양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보통 어떤 유물이 발굴되어 국보로 지정되는 데는 3~4년의 연구와 검증 기간이 필요한데 이 총통은 불과 17일 만에 초고속으로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리고 4년 후 발굴단장이었던 해군 대령이 그런 물건을 만들어 바다에 빠뜨려놓았다가 다시 건진 조작물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때 해군 대령은 검찰 조사를 받으며 국가적 이익과 해군의 명예를 생각해 덮어두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지요. 일본의 엉터리 고고학자도 같은 마음이었겠지요.

    어디 역사에서만의 일일까요. 2004년 한 수의대 교수가 <사이언스>지에 인간의 체세포를 이용하여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논문을 발표하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얼마 후 MBC 피디수첩에서 연구에 의혹을 제기합니다. 방송 후 회오리와 같은 파장으로 피디수첩은 한국이 자랑할 세계적 학자의 세계적 연구를 방해했다고 국민적 비난을 받습니다. 이 엄청난 비난 앞에 방송사는 바로 사과하고, 해당 프로그램의 광고까지 모조리 끊깁니다. 그러던 중 줄기세포를 제공한 병원의 이사장이 이 연구가 조작되었음을 폭로합니다.

    그때 국민은 어떤 환상을 가졌던 것일까요. 그것이 조작으로 밝혀져도 많은 국민은 연구의 국가적 선점을 위해 논문을 먼저 발표하고 이제 거의 완성단계에 이른 연구만 채워 놓으면 될 국가적 프로젝트를 방송이 망쳤다고 여전히 MBC를 국가적 이익을 망친 매국 방송으로, 또 해당 피디를 매국노처럼 거칠게 공격해댔지요. 다른 국민이 아닙니다. 일본 고고학자의 조작사건을 비웃고, 우리나라 해군 대령의 유물 조작사건에 씁쓰레했던 국민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조금 나이가 드셨다면 그때 독자님은 어떤 마음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았나요.

    관광지마다, 유적지마다 해설사가 있습니다. 허균의 아버지이자 동인의 영수 유학자로 평생 부엌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을 허엽 선생이 마을 사람들을 위해 바닷물로 두부를 만드는 법을 연구해 가르쳐주었다는 해설도 하고, 허난설헌의 기구한 삶을 강조하다 보니 어느 문헌에도 없는 ‘일설’을 지어내 허난설헌이 자진했다는 해설까지 합니다. 그래야 본인의 해설이 더 의미 있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 어떤 심리가 역사와 진실을 왜곡하고, 또 조작하게 하는 것일까요. 또 어떨 때 한쪽으로만 귀를 열고 그것이 거짓으로 판명되어도 끝까지 진실처럼 믿고 싶어지는 것일까요. 요즘 대통령 후보자에 대한 경마식 보도를 보면서 다른 사람이 아닌 내 마음 안에는 그런 심리가 없는지 스스로 경계하듯 둘러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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