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미술관 큐레이터 “예술가와 향유자의 연결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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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의 미술관 큐레이터 “예술가와 향유자의 연결고리”

    신혜영 이상원미술관 큐레이터와의 만남
    관람객 요구에 발맞춰 다양한 작가 소개
    자연과 더불어 능동적 전시 참여 경험시켜

    • 입력 2021.11.15 00:01
    • 수정 2021.11.16 00:07
    • 기자명 조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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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원미술관 외관. (사진=이상원미술관)
    이상원미술관 외관. (사진=이상원미술관)

    춘천시립미술관 건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눈에 띄는 지역 미술 인프라의 성장이 기대되는 시기다.

    춘천 도심 속 갤러리와 카페형 갤러리는 지나가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춘천의 크고 작은 규모의 미술관도 대문을 활짝 열고 생활 밀착형 예술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먼저 다가가는 미술이 성행하는 춘천에서 산골에 깊이 파묻힌 미술관이 있다.

    지역의 미술 인프라가 활성화되기 이전인 2014년 문을 연 ‘이상원미술관’은 춘천 화악산 깊은 산골에 보름달을 연상케 하는 외관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상원미술관은 산 정상에 38선이 가로지르고 산세가 험해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됐던 화악산 한 자락에 자연을 벗 삼아 자리 잡았다. 굽이굽이 좁을 길을 지나야 닿는 미술관은 찾아가는 것부터 큰맘을 먹어야 한다.

    집 앞을 산책하다가도, 밥 먹고 들린 카페에서도 손쉽게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춘천에서 연간 3만명의 발걸음이 향하는 이상원미술관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는 것일까?

    자연을 주춧돌 삼아 한국 사립미술관의 창조적인 대안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이상원미술관의 큐레이터 신혜영(50)씨를 만났다.

     

    신혜영 큐레이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조아서 기자)
    신혜영 큐레이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조아서 기자)

    ▶무엇을 보여줄까? “휴머니티”

    신혜영 큐레이터는 이상원미술관 개관을 함께 준비한 원년 멤버다. 이상원미술관을 계획한 이승형 관장이 서울에서 갤러리를 운영할 때부터 갤러리 큐레이터로 일하며 이곳까지 인연이 이어졌다.

    “처음부터 다양한 한국 작가의 작품을 골고루 선보이는 전시장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했어요. 예술가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라고 그 사람 작품만 보여줘야 하는 건 요즘 받아들여지지 않거든요. 대중들의 예술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다양해지고 있어요. 미술관의 실내 전시장 평수가 약 300평 정도예요. 당시만 하더라도 지역사회에 이런 대규모 미술관은 물론 예술 인프라가 적었기 때문에 초반에는 춘천시민들이 주로 찾아왔어요. 이후에 강원권을 넘어 전국에서 관람객이 찾아오면서 더 다양한 요구들과 마주하게 됐죠.”

     

    일반인들로부터 기증받은 넥타이로 만든 이정윤 개인전 작품 ‘Silkrode’. (사진=이상원미술관)
    일반인들로부터 기증받은 넥타이로 만든 이정윤 개인전 작품 ‘Silkrode’. (사진=이상원미술관)

    이상원미술관에서는 2000여점이 넘는 회화 작품, 여든을 훌쩍 넘긴 지금도 작품 활동을 하는 이 화백의 최신 그림은 물론 새로운 작가 소개도 놓치지 않고 있다. 외부 작가들의 기획전시는 1년에 두세 번 전시당 3~6개월까지 장기간 진행되며 전시공간의 반 이상을 할애하기도 한다. 

    “미술관에서는 1년 내내 이상원 작가와 외부 작가의 작품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어요. 이건 단순히 이상원 전시를 더 많이 할 것이냐, 다른 작가의 전시를 많이 할 것이냐의 차원을 넘어선 고민이 필요해요. 어떤 작가를, 어떤 느낌의 전시를 할지, 이상원 작가의 작품과 어떻게 균형을 잡을지 이곳을 7년간 운영하며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습니다.”

    큐레이터는 관람객이 주는 피드백을 예민하게 잡아내야 한다. 동시에 낱개의 전시를 뛰어넘는 미술관의 큰 방향성도 놓쳐선 안 된다. 관람객들의 성향에만 맞추기보다 미술관의 지향점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이상원미술관의 지향점은 ‘휴머니티’라고 생각해요. 현대미술은 다양한 주제, 소재 속에서 비판적인 작업이 많아요. 하지만 그 기저에는 삶과 사람에 대한 애정, 따뜻한 시선이 있죠. 따뜻한 시선은 결국 삶과 사람에 대한 시선, 바로 자연에 대한 시선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 우주에 대한 시선이기도 해요. 작품의 첫인상은 직관적이고 감각적이고 순간적인 느낌들의 총체인 만큼 단순한 위로 이상의 더 폭넓고 깊이 있는 작품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공감할 정도로 쉽지만 완성도가 높은,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들이 대상이죠.”

     

    이상원미술관을 찾은 관람객. (사진=조아서 기자)
    이상원미술관을 찾은 관람객. (사진=조아서 기자)

    ▶큐레이터란 무엇인가? “소통의 연결점”

    큐레이터는 작품, 작가, 관람객, 관장, 미술관 특성을 연결하는 다리다. 전체와 부분의 연결성을 이해하게 소통하고 작품의 존재를 인식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예술, 사람들이 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창작의 고통, 경제적 결핍 등 현실적으로 예술을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는 그들을 예술가라 부르죠. 그런데 예술 활동은 예술가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걸 향유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중요하다고 봐요. 큐레이터는 굉장히 어려운 삶을 사는 예술가와 예술에 가치를 부여하는 향유자를 연결하는 고리라고 생각해요.”

    흔히 전시를 기획할 때는 정보를 알리고(inform), 마음을 움직이고(inspire), 보는 사람을 즐겁게(entertain) 해야 한다고 한다. 정보를 전달하거나 이야기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관람객에게 좋은 시간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보는 사람’이 있어야 전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큐레이터가 전시를 만든다는 거는 창작이랑 비슷해요. 짧으면 3~4개월, 길면 2~3년 정도 기획하죠. 한 공간에서 작품이 전시되는 방법과 방향에 따라 결과물이 다르게 드러나요. 이러한 과정에서 큐레이터의 관점이나 해석이 요구됩니다. 하지만 창작과 다른 점은 작품이 가지고 있는 것에 다양한 시각들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없는 것을 만들진 않는다는 거예요. 해석의 오해를 만들지 않으려면 작가와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감상은 관람객의 몫이지만 정보와 의도를 전달하는 건 저의 역할인 거죠.”

     

    ’Green‘을 주제로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표현한 그림과 글을 전시하고 있다. (사진=조아서 기자)
    ’Green‘을 주제로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표현한 그림과 글을 전시하고 있다. (사진=조아서 기자)

    ▶좋은 예술의 힘, 더 나은 사회의 밑거름

    그는 전시의 수동적인 요소로 남아 있던 관람객의 역할을 타자에서 당사자로 전환시키는 시도도 하고 있다. 전시를 기획할 때 참여 프로그램을 함께 구성해 전시를 보며 느끼는 감정들을 관람객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재전시한다. 관람객들에게 전시에 깊이 참여하는 연대의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다.

    “자신의 감상을 담은 이야기나 그림 등을 공간 한쪽에 전시해요. 다른 시간을 공유하는 관람객들이 한 공간에 같이 있진 않아도 소통할 수 있는 거죠.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보면서 그 사람은 없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영향을 받으면서 연결되는 연대의 에너지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는 큐레이터인 그의 고민, 미술관을 설립한 이승형 관장의 성향, 미술관을 둘러싼 환경이 고루 어우러진 결과이며 접근성이 떨어지는 불편을 감수하고도 자연과 어우러진 미술관이 가지는 가치이기도 하다. 관람객에게는 미술관에 오는 시작점부터 미술관을 떠나 일상으로 돌아간 이후까지도 예술과 함께하는 시간인 것이다.

    “괜찮은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삶의 질을 확 올려준다고 확신해요.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사람을 좀 멋있게 만들어 주는 일이거든요. 자존감이 높아지고 나쁜 짓을 머뭇거리게 되는 이런 사고방식과 태도, 정서에 미치는 영향들이죠. 미술관에 원하는 것을 설문조사 한 적이 있어요. 대답은 ‘소통’ ‘행복’ ‘즐거움’이더라고요. 미술관에서 긍정적인 느낌을 원하고 그 느낌이 본인에게 잘 전달되고 이해되길 원하는 거예요. 휴머니티가 있는 작품들에는 보이지 않는 공감과 위로의 힘이 있다고 믿어요.”

    [조아서 기자 chocchoc@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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