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마음풍경] 백일장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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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원의 마음풍경] 백일장의 추억

    • 입력 2021.10.17 00:00
    • 수정 2021.10.18 00:05
    • 기자명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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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글을 잘 쓰는 사람이든 못 쓰는 사람이든 누구나 백일장에 대한 추억이 있다. 자신이 백일장에 나가지 못했어도 가족 중에 누군가 나간 사람도 있고, 같은 교실의 글 잘 쓰는 친구가 나가서 상을 받아온 것을 부럽게 바라본 추억이라도 있을 것이다. 지난 10월 15일 김유정문학촌에서 전국중고등학생이 참여하는 백일장이 있었다. 그 횟수가 벌써 29년째이다. 이 백일장은 김유정문학촌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인 1993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어 왔다. 코로나19가 범람하기 시작한 지난해에도 다른 행사는 못 열어도 ‘김유정 백일장’만은 문학도시 춘천의 중요 행사로 치렀고, 올해도 어김없이 치렀다. “아니, 코로나19 때문에 모두 조심하고 있는데, 사람 많이 모이는 백일장을 열다니?” 하고 말하지 마시라. 예전 같으면 백일장 행사에 전국에서 학생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겠으나 지금은 그렇게 모일 수가 없다. 

    그러면 사람도 모일 수 없는데 어떻게 백일장을 열까? 회사마다 재택근무를 하고, 또 화상으로 비대면 회의를 열듯 백일장 역시 그렇게 치르면 된다. 백일장 참가 학생들이 학교 교실에서 백일장의 시제가 발표되기를 기다린다. 시제를 발표하는 시간은 오전 9시 30분. 이걸 인터넷 실황 중계로 전국에 생중계를 하는 것이다. 올해는 어떤 제목으로 글을 쓰라고 할까. 시제 발표 시간이 되면 저절로 긴장이 된다.

    이런 백일장 행사를 주최하는 김유정문학촌장으로 올해도 시제를 발표하는 역할을 맡았다. 문학촌 강당에 두루마리 걸개에 시제를 적어 둘둘 말아 천장에 묶어 걸어놓은 다음 끈을 잡아당기면 두루마리가 아래로 펼쳐지면서 시제가 공개된다.  올해의 시제는 ‘신용’, ‘심부름’, ‘기술’, 이 세 가지였다. ‘심부름’은 백일장의 시제로 생소하지 않지만 ‘신용’과 ‘기술’은 학생들 입장에서는 조금 생소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결과를 보면 뜻밖에도 이런 생소한 소재에서 좋은 글들이 나온다.

    사람들은 내가 어른이 되어 소설가가 되고, 책도 많이 쓰고, 이런저런 문학상도 여러 개 받고, 지금도 여전히 글을 쓰며 문학계의 일에 종사하니 어려서 백일장에도 많이 나가고 상도 많이 받은 줄 안다. 그러나 상을 받기는커녕 초등학교 때 딱 한 번 대회에 나가본 것 말고는 중고등학교 때는 대회조차 나가보지 못했다. 지금은 대회에 나가길 원하는 사람 모두 나갈 수 있지만, 그때는 교실 별로 시 부문 한 사람, 산문 부분 한 사람 대표를 뽑았는데 그 대표에조차 들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 대회에 나가 상을 받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 운동장 한구석에 힘없이 앉아 있었다. 선생님이 다가와 “얘야, 선생님이 보니까 어느 나무든 그 나무에 일찍 핀 꽃은 사람들 눈에 반갑고 보기는 좋은데 꽃도 금방 지고 열매를 맺지 못하더라. 선생님은 네가 나중에 아주 적당한 때에 큰 꽃을 피워 큰 열매를 맺을 걸로 믿는다.” 하고 위로해주셨다. 어린 내게는 정말 큰 격려가 되는 말씀이었다. 강릉에 계시는 선생님을 지금도 찾아뵙는다.

    중고등학교 때는 창작과는 거리가 먼 학교생활을 했다. 국어시간에 숙제로 내주는 시 쓰기조차 한 번 하지 않고 6년을 보냈다. 그래서 지금도 중고등학교 동창들은 내가 작가가 된 것을 의아하게 여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국어 선생님이셨는데, 지금도 일 년에 몇 번 뵙는 이 선생님은 한동안 외국생활을 하다가 돌아왔다. 귀국한 다음 누군가 제자들의 안부를 전하며 ‘이순원은 지금 작가가 되어 베스트셀러도 내고 왕성하게 글을 쓴다’고 하니 선생님께서 “그럴 리가 있나.” 라고 말씀하셨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냐고 사람들은 묻는다. 그러면 농담으로 그런 사람도 있어야 백일장에 떨어진 학생들도 위로받고 내년에 다시 참가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작가된 것을 이해 못해도 한집에서 자란 형제들은 내가 작가가 된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긴다. 그냥 형제여서 이해하는 게 아니라 그 형제들이야말로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촌에서 아버지가 만든 가정 독서학교의 열성 독서 동지들이었기 때문이다. 책이 책을 만들고, 독서가 글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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