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피플] 일상, 여행이 되다··· 어반스케쳐 이병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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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피플] 일상, 여행이 되다··· 어반스케쳐 이병도 작가

    베테랑 건축가이자 도시 드로잉 작가
    마을서 본 모든 것들이 작품 피사체
    자유로운 그림으로 지친 일상 치유
    단절된 현대인에게 기록과 공유 필요

    • 입력 2021.10.16 00:00
    • 수정 2023.09.07 11:51
    • 기자명 조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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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 노을, 겨울 새벽 어스름히 밝아지는 푸른 하늘, 초록 나뭇잎 사이로 새어 나온 눈부신 햇살 조각. 일상에서 만나는 특별한 순간은 소중하게 기억된다.

     

    이병도 작가는 '2월의 화실'이라는 작업실 겸 카페에서 어반스케치를 작업하고 교육한다. (사진=조아서 기자)
    이병도 작가는 '2월의 화실'이라는 작업실 겸 카페에서 어반스케치를 작업하고 교육한다. (사진=조아서 기자)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기억으로 기록하는 이병도(60) 작가는 ‘디자인 플러스원’ 대표 겸 건축가이자 ‘어반스케쳐스 춘천’을 이끄는 운영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어반스케치(Urban Sketch)란 말 그대로 도시를 그리는 작업으로 도시와 더불어 익숙한 마을, 작은 집 등 그리는 대상 범위가 다양하다. 행복했던 시간, 아름다운 장소, 그날의 공기, 습도, 온도. 보고 느낀 모든 순간들이 작품의 피사체가 될 수 있다.

    ▶일상을 여행처럼

    이 작가가 어반스케치를 접하게 된 건 3년 전이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 그는 입시 위주로 가르치는 미술학원 말고 자유롭게 그림을 배우고 싶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몰랐다”며 “백승기 화백의 어반스케치 작품을 접하고 ‘그리고 싶은 그림’을 찾았다고 확신했다”고 회상했다.

     

    건축 현장을 스케치한 습작. (사진=조아서 기자)
    건축 현장을 스케치한 습작. (사진=조아서 기자)

    이 작가는 본업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주말마다 서울과 춘천을 오가며 백승기 화백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그렇게 1년간은 본업인 건축 작업을 하는 중에도 쉬는 시간마다 현장에서 보는 풍경들을 그림으로 옮기며 눈앞의 장면을 기록하는 데 열중했다. 그는 잠도 줄이며 1년에 300여장의 습작을 그렸다.

    그는 “본업을 하며 스트레스로 거칠고 날카로워졌던 마음을 그림에 집중하는 시간만큼은 아무런 고민없이 잊을 수 있었다”며 “좋아하는 일에 빠져 지친 일상을 달랬다”고 추억했다.

    좋아하는 일이란 어쩌면 우리 생각보다 더 대단한 힘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는 매일 보던 동네를 구석구석 새롭게 보게 되고, 평범하던 일상이 머릿속에 각인되는 일을 경험했다. 그는 어반스케치와 함께한 시간들을 통해 삶을 새롭게 가꾸고 다듬는 행위가 좋아하는 일에 열중할 때 가능해진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종이와 펜만 주어진다면 매일 보던 동네가 금세 여행지로 탈바꿈한다”면서 “어반스케치가 여행스케치라 불리는 이유가 있다”며 웃었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록

    어반스케치는 변화하는 우리 주변의 모습들, 사라지는 우리의 추억들을 그때 그 시간의 모습으로 간직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이 작가는 “옛것을 그대로 지키고 보존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지만 시간과 추억을 간직한 곳에 남겨진 흔적들은 한번 파괴되고 나면 다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며 “옛것과 새것의 병존과 균형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이병도 작가는 실레마을 지도를 그리기 위해 6개월간 마을을 돌아다니며 작업했다. (사진= 조아서 기자)
    이병도 작가는 실레마을 지도를 그리기 위해 6개월간 마을을 돌아다니며 작업했다. (사진= 조아서 기자)

    주변을 기록하고 이를 공유하는 활동이 본질인 어반스케치 작업으로 그는 춘천에서 사라지는 것들의 축적된 시간을 소환해왔다.

    지난해 열었던 3번째 개인전에서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골목이라는 장소에 집중해 사라진 이웃들, 쇠락한 마을에 담긴 의미를 그림에 담았다. 최근에는 춘천의 마지막 구도심이었던 기와집골 등을 어반스케치로 기록했다.

    그는 “생멸(生滅)을 거듭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지만 기록으로 기억을 붙드는 작업이 언젠가 추억에 잠길 그날의 그리움을 조금이라도 달래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어반스케치의 주요한 키워드는 기록과 공유”라고 설명했다.

    ▶‘어반스케쳐스 춘천’의 활성화··· 활력 있는 춘천 만들고파

     

    ‘어반스케쳐스 춘천’은 제1회 춘천커피도시페스타 당시 애니메이션박물관 갤러리 툰에서 진행한 '아름다운 카피' 전시에 참여했다. (사진=조아서 기자)
    ‘어반스케쳐스 춘천’은 제1회 춘천커피도시페스타 당시 애니메이션박물관 갤러리 툰에서 진행한 '아름다운 카피' 전시에 참여했다. (사진=조아서 기자)

    어반스케치는 드로잉·채색 도구, 그리는 장소·장면, 그림 실력 등 그림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 

    이 작가는 “그림 실력은 어반스케치를 하는데 중요하지 않다”며 “도구와 방식의 제약 없이 순간 느끼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그림을 그리는 주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유정문학촌, 춘천커피도시페스타, 춘천 한국지역도서전 등에 참여해 어반스케치로 춘천 곳곳을 담았다. 그가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는 이유는 어반스케치를 알리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그는 “다른 지역의 어반스케쳐스 모임은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운영된다”며 “춘천에도 어반스케치가 더 알려져 젊은 층을 중심으로 더욱 활발한 활동이 이어지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이병도 작가가 제작한 ‘어반스케쳐스 춘천’의 로고. (사진=이병도 작가)
    이병도 작가가 제작한 ‘어반스케쳐스 춘천’의 로고. (사진=이병도 작가)

    가까운 외출도 꺼려지는 코로나 시대에 현장 답사나 그림 모임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개별적으로 활동하며 자신을 둘러싼 주변을 그리고 sns로 공유하는 어반스케쳐스의 활동이야말로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온·오프라인 결합형 교감이라 할 수 있다.

    이 작가는 “비대면 시대에 서로 단절되고 소식이나 안부조차 나누지 않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교류의 끈을 놓지 않고 더 많은 춘천시민들이 그림으로 일상을 나누며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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