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가 작품으로··· 추(醜)를 미(美)로 바꾸는 송신규 '컴백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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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레기가 작품으로··· 추(醜)를 미(美)로 바꾸는 송신규 '컴백홈’

    사라진 과거와 버려진 현재를 마주하는 작가
    옛 모습 상실한 고향 돌아와 ‘풍경의 뼈’ 개최
    폐품 수집··· 어제의 쓰레기가 오늘의 예술품

    • 입력 2021.10.13 00:01
    • 수정 2021.10.14 00:03
    • 기자명 조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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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가에 버려진 깨진 바구니가 작품이 된다면 어떨까.
    논에 버려진 포대자루가 예술이 된다면 어떨까.
    뱀이 탈피한 허물이 전시된다면 어떨까.

    쓸모를 다해 버려진 것들에 눈길을 주고, 온몸으로 죽어 있음을 표현하는 것에서 생명을 불어넣는 작가가 있다. 주인공 송신규 작가를 만났다.

     

    송신규 작가는 춘천 서면 덕두원리 출신으로 유년시절을 춘천에서 보냈다. 그는 어린 시절 보았던 춘천의 풍경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왔다. (사진=송신규 작가)
    송신규 작가는 춘천 서면 덕두원리 출신으로 유년시절을 춘천에서 보냈다. 그는 어린 시절 보았던 춘천의 풍경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왔다. (사진=송신규 작가)

    춘천 출신 송신규(32) 작가는 오랜 기간 고향인 춘천을 떠나 양구, 순천, 원주, 대만 등에서 상주 작가로 머물며 각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 공간의 지역성을 살리면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낡고 스러지는 고향의 모습을 작품 속에 끊임없이 담아냈다. 그에게 고향, 춘천이란 영감의 원천임과 동시에 기억 너머에 희미한 잔상과도 같다.

    그는 “나에게 고향은 자연”이라며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는 자연이라는 테마가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이라고 설명했다. 서면 덕두원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송 작가는 최근 전시를 위해 어릴 적 혼란스러움과 스산함, 불안함과 결핍을 느꼈던 고향에 돌아와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성장기에 겪은 아픔과 상실을 마주해야 하는 과정에 큰 용기가 필요했다”며 “진짜 나의 과거를 대면한 춘천에서의 작업이 작품 활동에 큰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2019년 개인전 '분리된 다리'를 준비할 당시 설치 작업을 하는 송신규 작가. (사진=송신규 작가)
    2019년 개인전 '분리된 다리'를 준비할 당시 설치 작업을 하는 송신규 작가. (사진=송신규 작가)

    2019년 ‘분리된 다리’, 2020년 ‘자연으로 돌아가다’와 ‘인간과 자연: 화해’를 거쳐 고향인 춘천에서 처음 선보이는 전시 '풍경의 뼈'는 무자비한 개발과 환경 파괴로 과거의 모습을 잃고 기억 속에만 남은 공간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에게 현대인은 고향이 있지만, 고향이 없는 실향민인 것이다.

    작가는 소양강댐, 시골 마을의 송전탑, 버려진 비닐하우스 등에서 앙상하게 뼈만 남아 버려진 풍경을 맞닥뜨린다. 버려진 그물, 낚싯대, 돌, 지붕의 파편 등 수집한 폐품들을 이용한 설치 작업으로 드로잉을 확장해 과거의 재현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무너진 실존까지 작품에 투영한다.

     

    ’비닐하우스 풍경‘ ’소양1교‘ ’빈터‘ ’끊어진 다리‘(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등 송신규 작가의 춘천 모티브 작품들. (사진=송신규 작가)
    ’비닐하우스 풍경‘ ’소양1교‘ ’빈터‘ ’끊어진 다리‘(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등 송신규 작가의 춘천 모티브 작품들. (사진=송신규 작가)

    주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들어섰던 송전탑이 야기한 문명의 이기와 댐 건설로 보금자리를 떠난 수몰 지역 이주민의 삶을 작품에 녹여내 경제적인 보상과 별개로 고향의 옛 모습을 잃은 그들의 정신적 상실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송 작가는 “자연의 재료가 내 손을 거쳐 가공되는 과정은 마치 산업으로 둘러싸인 현대의 모습과 비슷하다”며 “캔버스 위에 안료를 문지르고 본연의 성질이 드러나도록 덧칠하고 긁은 과정을 통해 물체의 본질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업은 버려진 폐품을 예술적 작품으로 승화시킨다는 점에서 일종의 업사이클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지점에서 변화하는 풍경은 과거의 상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버려진 것들에서 살아있던 순간을 찾아내 그 자리, 그곳에서 풍경의 한자리를 차지하던 모습을 다시금 현재로 불러들인다.

     

    작품에 쓸 폐품을 수집하는 모습. (사진=송신규 작가)
    작품에 쓸 폐품을 수집하는 모습. (사진=송신규 작가)

    그의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저마다 잃어버린 고향을 간직한 채 현대사회에 적응인지, 타협인지 모를 하루하루를 존재하는, 어딘가 모르게 상처받은 듯한 처연한 모습이 우리의 삶과 치환된다.

    이러한 요소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으로 발산하는 새로운 의미 또한 우리 사회와 맞닿아 있다. 그가 작품의 궁극적인 종착점을 행복, 사랑, 치유 등으로 설정한 것이 바로 이러한 교감 때문이다.

    송 작가는 “과거의 기억으로 현재를 바라보는 작업은 나 자신을 끊임없이 갉아먹는 과정처럼 느껴진다”며 “이렇게 세세하게 파헤쳐진 기억 속 찾아낸 본질의 최종 목적지는 행복, 치유 따위이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송 작가는 내년 ‘자연과 인간’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이어간다. 자연에서 인간 본질에 대한 관심으로 주제를 확장해 앞으로의 작업 방향성을 담은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KT&G 상상마당 춘천 아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송신규 작가 개인전 '풍경의 뼈' (사진=송신규 작가)
    KT&G 상상마당 춘천 아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송신규 작가 개인전 '풍경의 뼈' (사진=송신규 작가)

    당신이 어제 본 쓰레기를, 오늘 전시장의 작품으로 만나보고 싶다면 KT&G 상상마당 춘천 아트갤러리에서 오는 17일까지 열리는 ‘풍경의 뼈’를 추천한다. 송 작가의 손을 거쳐 저마다의 사연과 기구한 삶이 담긴 오브제가 전시장의 조명을 받으며 멋진 작품으로 재탄생하는 장면을 만나보길 바란다.

    [조아서 기자 chocchoc@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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