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5돌 한글 지킴이] 상. “언어는 인권이다”··· 고 김혜선 문체부 국어정책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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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5돌 한글 지킴이] 상. “언어는 인권이다”··· 고 김혜선 문체부 국어정책과장

    춘천 출신··· 한글박물관 개관 주도
    한글날, 법정 공휴일 재지정 공로
    ‘범국민 언어문화 개선 운동’ 추진
    영화계 만연한 불공정 행위 시정

    • 입력 2021.10.09 00:02
    • 수정 2021.10.25 13:47
    • 기자명 조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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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9일은 훈민정음 반포 575돌이 되는 한글날이다. 한글날을 맞아 한글 수호에 앞장선 춘천 인물을 소개하고 한글의 소중함과 한글날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편집자 주>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로는 서로 잘 통하지 아니한다. 이런 까닭에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것을 가엽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이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훈민정음 머리글-한글학회>

    탄생한 날과 만든 이를 아는 유일한 문자. 굳이 과학적 이유를 들지 않아도, 소리의 아름다움을 설명하지 않아도 한글은 탄생부터가 역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왜 한글을 지켜야 해?’라는 질문에 ‘한글은 소중해, 왜냐하면 소중하니까’와 같은 어쩌면 당연한, 그러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민족주의적으로 느껴지는 대답보다 더 명쾌한 답을 찾아보려 한다.

     

    2013년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에 기여한 고 김혜선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정책과장. 2015년 사망 전까지 암 투병 중에도 영상콘텐츠산업과장과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보호정책과장을 역임했다. (사진=세종국어문화원)
    2013년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에 기여한 고 김혜선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정책과장. 2015년 사망 전까지 암 투병 중에도 영상콘텐츠산업과장과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보호정책과장을 역임했다. (사진=세종국어문화원)

    ▶‘언어는 인권이다’··· 쉬운 언어 환경의 중요성

    사실 그 답은 1443년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제작 배경에 충분히 밝혀져 있다. 예로부터 써온 중국의 한자는 글자 수가 많고 글자만 보고 음을 알 수 없는 뜻글자라 글을 모르는 백성은 중요한 농사법도 기록할 수 없었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관청에 호소조차 하지 못했다.

    소강춘 국립국어원장은 “누구나 서로 어려움 없이 소통할 수 있는 언어 환경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한글 창제 당시 담긴 세종의 애민정신을 이어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정 언어를 모른다는 이유로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아야 하고, 단어만 보고도 직관적으로 그 뜻을 짐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한글의 제 역할이자, 존재 이유라는 것이다.

    단지 조선시대에 배움이 적고 학문에 뜻이 없었던 백성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한글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면 더욱 쉽게 이해된다. 

    글을 쓰고 읽는다는 것은 단지 소통 문제가 아닌 한 사람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와 직결된다. 이에 한글단체는 국민의 일상과 밀접한 정책을 펼치는 정부에서부터 한자, 영어식 표현보다 우리말 사용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여전히 한자와 외래어 오·남용이 만연한 정부 기관에서 ‘언어는 인권이다’라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공직생활 내내 발로 뛴 춘천 출신 공무원이 있다. 주인공은 고 김혜선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정책과장. 그는 한글날 569돌이 얼마 남지 않은 2015년 9월 4일 42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짧은 생··· 길이 남을 발자취

     

    문화체육관광부 동료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만든 고 김혜선 국어정책과장의 추모 동판. (사진=문체부 국어정책과)
    문화체육관광부 동료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만든 고 김혜선 국어정책과장의 추모 동판. (사진=문체부 국어정책과)

    특히 한글날 김 과장이 회자되는 이유는 그가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에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본래 그의 공직생활은 춘천에서 시작됐다. 춘천에서 태어난 그는 유봉여고와 한림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이 대학원 재학시절 지방고등고시에 합격했다. 강원도 밀레니엄 기획단, 국제행사 담당, 기획관실 등에서 근무하다 2004년 문체부(당시 문화관광부)로 파견 나갔다. 이듬해 문체부 관광국 국제관광과 행정사무관으로 발탁됐다. 그는 강원 공직사회의 자랑이었다.

    그가 2012년 문체부 문화정책국 국어정책과장으로 부임할 때 한글날은 법정 공휴일이 아니었다. 1990년부터 2005년까지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한글날은 국경일과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2006년 국경일로 다시 지정됐지만 산업 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경제단체의 문제 제기로 공휴일로는 지정되지 못했다. 그로부터 6년 뒤, 공휴일에서 빠진 지 22년 만인 2012년부터 다시 법정 공휴일로 지정됐다.

    이 같은 성과에는 단연 김 과장의 숨은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생산성이 떨어지고 10월에 공휴일이 몰려 있다고 반대하는 재계와 경제 부처를 찾아가 설득했다. 한글문화연대에서 집계한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공휴일 수가 선진국 수준이라고 주장하는 다른 부처 관계자들을 논리적으로 반박했다.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 못지않게 그가 추진한 ‘범국민 언어문화 개선 운동’도 큰 성과를 거뒀다. 공공 언어·방송 언어·인터넷 언어·청소년 언어 분야에서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비속어와 폭력적 언어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세분화했다. 정부는 이때부터 국민의 알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정부와 국민 간의 소통을 활성화하기 위해 ‘쉬운 언어 쓰기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정부가 각 분야 전문용어의 표준화를 추진하고 어려운 한자어와 무분별한 외국어를 알기 쉬운 언어로 바꾸는 활동도 벌였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MS투데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가 국어정책과에 오고 나서야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 한글박물관 개관, 언어문화 개선 범국민 운동, 국어책임관 제도, 국어문화원 활성화 등 굵직한 정책이 나왔다”고 말했다.

    문체부 동료는 “김 과장이 아니면 사업이 그렇게까지 크고 체계적으로 구성될 수 없었다”면서 “지금도 국어정책과에서 언어문화 개선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현 국어정책의 토대를 마련한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이어 “아직 살아 계셨다면 문체부의 여러 영역에서 큰 족적을 남길 수 있었을 텐데 업무에만 집중하느라 본인 몸을 못 챙긴 게 너무나 안타깝다”고 전했다.

    김 과장은 문체부 영상콘텐츠산업과에 재직할 때 영화 분야 표준계약서 도입 등 영화계에 만연한 불공정 행위를 개선하고 영상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앞장섰다.

    이에 문체부는 2015년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추모식을 갖고 자발적으로 모은 성금으로 추모 동판을 제작했다. 정부는 제2회 대한민국 공무원 수상자로 고인을 선정하며 그의 공로를 높이 샀다. 한글문화연대도 그를 ‘우리말사랑꾼’으로 선정해 그의 한글 사랑에 감사를 표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강원사회 관심 촉구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장,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장, 이안 춘천SF영화제 운영위원장,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가 MS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고 김혜선 과장의 업무 능력과 따뜻한 성품을 이야기했다. (사진=각 기관)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장,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장, 이안 춘천SF영화제 운영위원장,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가 MS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고 김혜선 과장의 업무 능력과 따뜻한 성품을 이야기했다. (사진=각 기관)

    진정한 동료를 잃은 이들은 한글날 575돌을 맞아 그를 기억하고 기리기 위한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장과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장은 여러 한글단체와 의논해 김혜선 과장 추모문집을 제작하고 추모사업을 벌일 예정이다.

    김 원장은 MS투데이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그는 직책을 맡을 때마다 그 분야에 최고 전문가가 됐다”면서 “일의 보람을 아는 공무원이었고 자신의 가족 일처럼 발 벗고 나서 맡은 일을 했다”며 고인을 향한 경의를 표했다.

    이 회장도 “1967년 국어운동대학생회를 만들고 수십년 한글 운동을 하면서 김 과장 같은 공무원을 본 적 없다“며 “보통 지위가 높은 사람을 추모사업 대상자로 선정하지만 김 과장처럼 바르게 살고 나랏일을 열심히 한 사람을 기리고 그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추모사업의 취지를 설명했다.

    김 과장은 2014년 10월 휴직하면서도 암 투병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아 1년 뒤 들려온 갑작스런 부고 소식에 동료들은 물론 한글단체, 예술·문화계 인사들까지 더욱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안 춘천SF영화제 운영위원장은 2014년 4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일 때 김혜선 문체부 영상콘텐츠산업과장을 만났다. 당시 정부청사가 세종으로 이전하면서 김 과장은 중요한 회의는 서울에서, 업무는 세종에서, 영화진흥위원회 관련 미팅은 부산에서 진행해 일주일에도 몇 번이나 전국을 돌아다니는 생활을 했다. 이 위원장은 김 과장의 야윈 모습을 보고 진료 권유와 함께 병원을 소개했다. 

    이 위원장은 MS투데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처음 만난 점심 식사 자리에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죽만 먹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 먼저 가라고 병원을 소개해줬다”며 “이후 짧게 문자만 주고 받으며 건강을 걱정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더라”고 말했다.

    건강을 살피지 못하는 격무 속에서도 그는 소중한 인연을 꾸준히 이어가는 인간적인 면모를 잃지 않았다.

    이건범 대표는 “한글단체 소속도 아니고 그저 정책을 위해 뜻을 같이했던 사이였는데 2013년 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동료들과 함께 조문을 왔었다”며 “바쁜 업무 속에서도 주변 사람 챙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마음 따뜻한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MS투데이와 인터뷰를 통해 김 과장과의 인연을 이야기해준 이들은 “고향인 춘천에서 귀감이 되는 그의 이야기가 많이 알려지지 않아 안타깝다”며 “강원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조아서 기자 chocchoc@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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