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춘천 독립영화계, 희망을 엿보다··· 차세대 주역 ‘D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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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뷰] 춘천 독립영화계, 희망을 엿보다··· 차세대 주역 ‘DOF’

    춘천SF영화제, 지역 청년 영화인 작품 1일 상영
    강원 신진 영화인 교류 커뮤니티 ‘DOF’에 주목
    운영위원장 “독립영화 발굴·지원·교육 역할 확대”

    • 입력 2021.09.30 15:01
    • 수정 2021.10.02 06:10
    • 기자명 조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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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지용, 이유진, 유형민, 정승이 감독(왼쪽 위부터 시계 반대 방향 순) (사진=각 감독)
    형지용, 이유진, 유형민, 정승이 감독(왼쪽 위부터 시계 반대 방향 순) (사진=각 감독)

    춘천 독립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신예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독립영화는 ‘자본으로부터의 독립’과 ‘상업영화의 지배적인 내러티브에서의 독립’을 지향한다. 스테디한 셀링 포인트를 벗어나 평범하지만 중요한, 낯설지만 창의적인 이야기를 다양하게 다루는 만큼 수익이 보장된 큰 규모의 영화들과 달리 관객들에게 선보일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다. 

    특히 지방 독립영화인들은 독립·예술영화관 같은 인프라가 있는 수도권과의 차이에서 또다시 좌절한다. 예술영화전용관이 따로 없는 춘천에서 유일하게 영화의 다양성을 지켜온 ‘일시정지 시네마’가 개관 3년여 만에 2019년 문을 닫으면서 춘천시민이 상영관에서 독립영화를 볼 기회는 더욱 적어졌다.

    이러한 문화적 갈증이 고조되던 찰나 춘천 예술영화의 산물인 춘천SF영화제가 올해 새롭게 기획한 ‘Rebooting 춘천독립: DOF’ 부문에서 신예 독립영화 감독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를 마련했다. 춘천SF영화제는 30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5일간 열린다.

    DOF(Depth of Film)는 2016년 강원대학교 영상문화학과 영화제작단체로 시작해 2019년 강원청년영상단체로 확장했다. 현재는 도내 청년 영화인들의 교류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 단체에 소속된 예비 영화인들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춘천SF영화제에 초대받은 유형민, 이유진, 정승이, 형지용, 조서영, 홍성욱, 손선희, 이승현, 정수인, 윤성준, 최상길, 전석규, 이재혁, 최서연 감독은 모두 DOF 출신으로 춘천 독립영화계를 이끌 감독군으로 평가된다. 이들의 출품작 중 8작품은 오프라인으로, 11작품은 온라인으로 공개된다.

     

    독립영화 ’헌혈왕 음메씨‘ 스틸컷. (사진=형지용 감독)
    독립영화 ’헌혈왕 음메씨‘ 스틸컷. (사진=형지용 감독)

    오프라인 상영작 중 첫 스타트를 끊는 단편 애니메이션 <달을 넘어서>를 연출한 형지용(28) 감독은 강원대 영상문화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춘천에서 영상제작업체 ‘스튜디오 13’을 만들어 꾸준히 단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다.

    지난해 DOF 워크숍을 통해 완성한 <고양이(耳) 발사>와 <헌혈왕 음메씨>도 이번 영화제에서 소개된다. <고양이(耳) 발사>는 주인공 고양이가 중성화 수술을 받기 전에 스스로 귀를 자르고 병원을 빠져나오는 이야기로, 고양이의 시선에서 고통과 공포를 표현했다. 살아 있는 소에 튜브를 꽂아 신선한 선지를 파는 카페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만든 <헌혈왕 음메씨>는 이러한 방법이 오히려 위생적이고 친환경적인 방법이 아닐까 하는 물음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특히 이 작품은 ‘경쟁: 한국독립SF’ 부문 본심에 올라 수상 경쟁을 펼치고 있다.

    형 감독은 “수상 기대는 내려놓았지만 DOF 활동을 통해 영화제 본심에 오르는 뜻깊은 결과를 얻어 감사하다”며 “DOF는 지역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청년예술인으로서, 지역 영화인으로서 느끼는 이중고를 해소하고 지역민에게 영화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기능을 하는 만큼 지역 사회에서 역할이 더욱 확대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독립영화 ‘내 생애 첫’ 스틸컷. (사진=이유진 감독)
    독립영화 ‘내 생애 첫’ 스틸컷. (사진=이유진 감독)

    지난해 DOF를 이끌었던 강원대 4학년 이유진(22) 감독의 <내 생애 첫>은 아버지의 죽음, 가족 갈등, 상복을 입는 것조차 처음인 주인공 민서가 고통에서 파생된 삶의 변곡점을 스스로 헤쳐나가는 성장 스토리다.

    이 감독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라며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오빠의 부담감과 동생인 나에게 오는 압박과 엄격함이 실제 오빠와의 갈등 기저에 깔려 있었다”고 영화 제작 계기를 설명했다. 이어 “개인적인 경험을 주인공 민서에게 투영해 영화에서는 2차 성징의 상징인 초경이라는 표면적인 연출로 민서의 내·외면적 성장을 표현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춘천영상산업센터에서 지원을 받아 <긍정왕 이동교>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가족과의 인터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된 다큐멘터리 역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카메라의 눈으로 제3자 시선에서 공감의 확장을 꾀하는 이 감독만의 연출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독립영화 ’기억해‘ 스틸컷. (사진=유형민 감독)
    독립영화 ’기억해‘ 스틸컷. (사진=유형민 감독)

    오프라인 상영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기억해>는 유형민(26) 감독이 우연히 발견한 할머니의 노트에서 시나리오 아이디어를 얻었다.

    유 감독이 담은 20여분의 필름 안에는 치매가 의심되는 할머니를 소중히 아끼고 걱정하는 손자의 애정이 가득 담겨 있다. 눈여겨볼 점은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감정의 순간을 포착한 연기 연출이다. 실제로 태어나서부터 할머니와 같이 살아온 유 감독은 10년간 살았던 곳을 떠나 이사하면서 할머니가 집주소를 외우기 위해 새 주소를 빼곡히 적은 공책을 보고 영화를 기획했다.

    유 감독은 “단편, 독립 등 주류가 아닌 영화는 제작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영화제에 출품하더라도 선택되는 작품은 극히 소수”라며 “지역에서 열리는 영화제는 지역 청년 예술인에게 작품 상영 기회를 넘어 꾸준히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원동력과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며 이번 영화제의 의미를 되짚었다.

     

    독립영화 ’서울로‘ 스틸컷. (사진=정승이 감독)
    독립영화 ’서울로‘ 스틸컷. (사진=정승이 감독)

    일찍이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두각을 나타낸 정승이(21) 감독의 <서울로>는 춘천SF영화제 이전 스페인 우에스카영화제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됐다. 제21회 인디포럼 영화제, 제19회 광화문국제단편영화제, 원주여성영화제에서도 상영될 예정이다.

    <서울로>는 세 자매 중 막내인 미소의 시선으로 자매 간의 갈등과 협동, 막내로서의 설움 등을 담았다. 실제 정 감독은 세 자매 중 막내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플롯의 강점으로 세 자매라는 조건을 십분 활용했다.

    그는 “강원영상위에서 주최한 ‘햇시네마 페스티벌’에서 대상 격인 황금감자상을 타며 배급사와 인연이 닿았다”며 “묻힐 수 있는 작품이 지역 영화제를 통해 해외 영화제에 출품되는 건 영화제가 갖는 큰 힘”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코로나19로 많은 예술 활동이 취소·연기됐는데 이렇게 영화의 장이 마련되고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춘천 영화계 관계자들이 있어 더욱 동기 부여가 된다”며 “훗날 춘천지역에서 영화인을 꿈꾸는 이들이 희망차게 도전할 수 있도록 독립영화 저변 확대에 일조하고 싶다”고 희망했다.

    고등학생 때 만든 첫 단편 영화 <PEN>으로 청소년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일찍이 영화감독을 꿈꾼 그는 DOF 활동과 영화학교 워크샵 등 지역에서 펼치는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실무와 현장을 경험하며 평소 한계를 느끼던 연출 분야에서 꾸준히 실력을 쌓았다. 

    이안 춘천SF영화제 운영위원장은 “2019년까지 예술영화를 접할 수 없는 시민들에게 상영회 중심의 영화제를 펼치며 지역 창작자 작품 발굴에는 부족함이 있었다”며 “지난해부터 춘천에서 꼭 선보여야 하는 작품을 골라 소개하는 섹션을 새롭게 구성하고 올해 춘천 영화인에게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춘천SF영화제가 나아갈 발전방향에 대해 “영화제에서 강원도 청년 신진영화인의 작품을 노출해 독립영화 제작을 지원받는 구조를 만들어나갈 계획”이라며 “영화 제작 교육 시스템을 갖춰 부산국제영화제의 아시아 영화학교, 제천음악영화제의 영화음악 아카데미처럼 중장기적으로 독립영화 청년들에게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기본적인 여건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Rebooting 춘천독립: DOF’ 부문 오프라인 상영은 영화제 둘째날인 10월 1일 롯데시네마에서 오전 11시와 오후 2시 두 타임으로 나눠 4편씩 상영된다. 오프라인 상영작은 춘천SF영화제 홈페이지나 당일 현장에서 무료로 예매할 수 있다. 온라인 상영작은 1일 낮 12시부터 8일까지 춘천SF영화제 홈페이지 온라인 상영관에서 1500원을 결제한 뒤 볼 수 있다.

    [조아서 기자 chocchoc@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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