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규 작가의 ‘자식들’이 서울로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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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진규 작가의 ‘자식들’이 서울로 간 까닭은?

    • 입력 2021.07.28 00:01
    • 수정 2021.07.29 00:03
    • 기자명 신초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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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권진규 작가(왼쪽)와 대표작인 ‘기사’(1953, 석조(안산암), 65x64x31㎝,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자소상’(1968, 테라코타, 20x14x19㎝,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고 권진규 작가(왼쪽)와 대표작인 ‘기사’(1953, 석조(안산암), 65x64x31㎝,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자소상’(1968, 테라코타, 20x14x19㎝,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대한민국 근대조각의 거장이라 불리는 고 권진규 작가의 작품 141점이 표류 끝에 서울시립미술관에 안착했다.

    독립 미술관 건립을 오랫동안 고대하던 유족 측의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권진규기념사업회(대표 허경회)와 유족 측은 최근 서울시립미술관(관장 백지숙)과 기증협약을 체결하고, 고 권진규(1922~1973) 작가의 작품 141점을 기증했다.

    기증된 작품은 조각 96점과 회화 10점, 드로잉 작품집 29점, 드로잉 6점 등 총 141점이다. ‘자소상’(1968)과 ‘도모’(1951), ‘기사’(1953) 등 작품 136점을 비롯해 작가의 일본인 부인이었던 가사이 도모의 작품도 포함됐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작품 중에는 마케트(Maquette·조각 원형을 축소한 모형)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 마케트의 상당수는 인체나 동물형상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마케트란 원 크기의 작품을 만들기 전 작게 만든 조각을 의미한다. 회화로 본다면 드로잉에 해당한다. 드로잉을 작품과 자료 등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듯 마케트도 연구 결과에 따라 새롭게 분류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충분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립미술관은 기증받은 작품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오는 2022년 작가 탄생 100주년에 맞춰 기념전을 연다는 계획이다. 오는 2023년에는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 상설 전시 공간도 마련한다.

    박지수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는 “권진규 작가의 작품 기증을 통해 미진했던 국내 조각 분야의 연구가 심화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권진규 작가가 대중적으로도 인지도가 높고, 구상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미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관람객들도 충분히 감상하고 향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립된 전시 공간 마련은 기념사업회와 유족 측의 오랜 염원이 담긴 프로젝트인 만큼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유족 측은 권진규 작가의 뛰어난 업적과 위상에 맞는 독립된 권진규 미술관 건립을 위해 힘써왔다.

    지난 2004년에는 미술관 건립을 위해 하이트맥주에 작품 일체를 양도했지만 하이트맥주의 경영난으로 건립 계약 합의가 무산됐다. 이후 대일광업 측과 독립된 미술관 건립을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지만, 대부업체에 작품 일체가 담보로 잡혀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술품 인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8월 치열한 법정 공방 끝에 재판부로부터 소송 승소 판결을 받은 기념사업회는 양도대금 40억원을 대일광업 측에 돌려주고 작품 700여점을 돌려 받았다.

    이후 기념사업회 측은 반환된 작품을 국가 공공기관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공적 자산화를 위해 노력했다.

    지난 1월에는 춘천시에 오리지널 작품 30점을 구매와 전시공간을 마련하는 조건으로 사후 제작 에디션 22점, 드로잉 21점, 포스터 및 디지털 자료 등 2000여점을 기증하겠다고 제안했다. 제안을 받은 춘천시는 논의 끝에 작품 매입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기념사업회 측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권진규기념사업회 명예회장이자 권진규 작가의 여동생 권경숙(94) 유족 대표는 “살아생전 작품을 ‘내 자식들’이라고 불렀던 오빠의 자식들이 있을 거처가 마련됐다”며 “비로소 인생 숙제를 마쳤다”고 밝혔다. 허경회 권진규기념사업회 대표 역시 “할 일을 한 셈이다”고 후련한 심경을 전해왔다.

    [신초롱 기자 rong@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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