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엄마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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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엄마 걱정

    • 입력 2021.07.21 00:00
    • 수정 2021.07.21 18:58
    • 기자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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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걸음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1960-1989) *1985년「동아일보」신춘문예당선 *1984년「중앙일보」입사. 정치부,문화부,편집부 기자 역임 *유고시집「입속의 검은 잎」이 있음.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기형도 시인은 불행하게도 스물아홉에 요절한 시인이다. 만 29세 생일을 엿새 앞둔 1989년 3월 7일 새벽이었단다. 그는 시집 출간을 준비하던 중, 서울 종로의 한 심야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1999.3.기형도 전집: 문학과지성사」간행). 마지막 길을 예언이라도 한 듯 기형도 시인은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중략)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빈 집」中)라고 마치 유언 같은 시를 남기고 우리들 곁을 홀연히 떠났다. 짧은 인생으로 긴 예술의 혼(魂)을 남긴 시인, 그래서 그의 시편들은 더욱 안타깝고 아프게 우리들 가슴을 파고든다.

    위의 시 「엄마 걱정」의 화자는 초등학교 1-2학년쯤 되었을 아이다. 아이는 물론 작자 자신이다. 이 어린 아이가 텅 빈 집, 텅 빈 방에서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가신 엄마”를 애타게 기다린다. 어린 날의 정서적 체험을 담담하게 그려낸 듯하지만 엄마를 기다리는 애절한 심상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해는 시든 지 오래”라는 묘사와 “배추 잎 같은 발걸음 타박타박/안 들리네” 라는 기다림의 심상을 ‘시든 열무’에 매치(match)시킨 비유는 시적 승화의 절정이다.

    엄마를 기다리는 화자는 동심의 묘사에 극치를 이룬다.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라는 긴 기다림의 
    여운을 감각적 이미지로 승화시킨다. 덩그마니 혼자 찬밥덩이처럼 방에 엎드려
    숙제를 하고 있을 아이의 영상이 한 폭의 필름으로 가슴 서늘하게 다가온다. 

    “어둡고 무서워/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그 아이, 지금은 그 멀고 아득한 어둠속에서 홀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주 먼 옛날/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같이 천진하고도 애달팠던 그 빈 방에서, 간절하게 기다리던 엄마를 만나 행복하게 시(詩)를 쓰고 있지는 않을까?! 빈 들판에 까치 울음소리 하늘을 긋고 가듯 아득하고 먼 그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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