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마음풍경] 속담으로 보는 장마 이야기
  • 스크롤 이동 상태바

    [이순원의 마음풍경] 속담으로 보는 장마 이야기

    • 입력 2021.07.11 00:00
    • 수정 2021.07.12 00:08
    • 기자명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요즘 비가 자주 내린다. 시기로 음력 유월이고 말 그대로 장마철이다. 장마에 대한 옛말들이 재미있다. 오뉴월 장마를 개똥장마라고 불렀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다가 ‘개똥이다’라고 하면 그것은 흔하고 하찮다는 뜻이다. 그러면 오뉴월 장마를 개똥장마라고 부르는 것은 어떤 뜻일까. 오뉴월에 장마가 드는 것이야말로 당연하고 흔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 장마가 개똥처럼 하찮은 것이 아니다. 이 비로 논의 벼가 자란다. 개똥처럼 흔하기도 하지만, 개똥처럼 거름이 되는 장마다. ‘오뉴월 장마엔 돌도 자란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밭농사도 오뉴월이 가물면 작물이 자라지 못한다. 오뉴월 장마가 밭작물에도 개똥처럼 거름이 된다. 그런데 이 장마가 너무 일찍 시작되고 길어지면 보리 수확과 밀 수확에 영향을 준다. 보리와 밀을 수확할 때는 며칠 날이 바짝 가물어야 좋은데 비가 질금질금 오면 보리와 밀이 밭에 선 채로 싹이 나버린다. 그러면 곡식으로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다. 

    오뉴월 장마에 대한 속담도 많다. 어릴 때 들은 말로 ‘오뉴월 장마에 호박꽃 떨어지듯 한다’는 말이 있다. 무엇이 맥없이 떨어지고 기운을 못 쓰는 걸 그렇게 말한다. 봄에 피는 매화꽃과 벚꽃은 꽃잎이 작으니 비를 맞으면 바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호박꽃은 꽃 중에서도 큰 꽃인데 비 몇 방울 맞는다고 그냥 떨어질 리가 없다. 호박 줄기에서 호박꽃이 떨어지는 것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할 때이다. 장마엔 벌들이 날기 힘들다. 그러면 수꽃과 암꽃의 수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열매를 맺지 못한 꽃이 맥없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수분이 잘 된 암꽃은 호박 열매가 핫도그만하게 자랄 때까지도 그대로 붙어 있다.

    장마 때 호박순은 하루 한 발 길이로 자라는데 열매는 많지 않다. 그래서 나온 속담이 ‘장마 무서워 호박 못 심겠냐’는 말이다. 이 말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는 말과 같은 뜻이다. 호박은 호박 열매만 먹는 것이 아니라 호박순도 예전에는 양식 대용이었다. 장국에 호박순을 넣어 끓이면 그게 양식 귀할 때 한 끼 식사가 되었다. 비 몇 번 와서 호박순이 우거지면 양식이 귀해 내쫓은 며느리도 부른다고 했다. 장마엔 호박순도 잘 자라고, 오이도 잘 자란다. 무엇이 부쩍부쩍 잘 자라면 ‘장마 끝에 오이 자라듯 한다’고 말한다.
     
    여름 장마야말로 당연한 일이어서 ‘칠월 장마는 꾸어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 이때쯤이면 으레 장마가 진다는 뜻이다. ‘중복물이 안 내리면 말복물이 진다’는 말도 중복까지도 장마가 안들면 말복에 가서라도 기어이 장마가 진다는 뜻이다. 옛날 어른들은 천기를 시절과 함께 보았다. ‘하지 지나 열흘이면 흘러가는 구름장마다 비가 한 동이’라고 했다. 바로 지금이 그렇다. 아침에 맑아도 한낮에 구름이 좀 끼나 싶으면 이내 비가 내린다.

    ‘오뉴월 장마는 개똥장마’라는 말처럼 장마가 거름이 되고 유용하다는 뜻도 있지만 반대되는 말도 많다. 가장 대표되는 속담이 ‘칠 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 달 장마에는 못 산다’는 말이다. 가뭄 피해보다는 장마 피해가 더 크고 무섭다는 뜻이다. 비슷한 말로 ‘가물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는 말이 있다. 가뭄은 아무리 심해도 그 속에 살아남는 작물이 있어 그래도 거둘 것이 있지만, 장마가 길게 들면 밭에서 모두 썩어 거둘 것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불보다 물이 무섭다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불은 재라도 남기지만 물은 모든 걸 흔적 없이 쓸고 간다. ‘장마에 홍수 밀려들 듯한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때를 잘못 만나 자신의 실력 발휘를 못하고 운이 없는 사람을 가리켜 ‘장마 만난 미장쟁이’라고 한다. 벽에 흙을 바르든 회를 바르든 부뚜막을 고치든 미장 일은 맑을 때 해야 하는데 장마 때는 일거리가 없고, 해도 모양도 안 난다. 비 오는 날 꽃신 장수와 같은 꼴이 되는 것이다. 비오는 날에는 진흙길에 걷기 좋은 나막신을 팔거나 우산을 팔아야 한다. 사람들은 어떤 일에도 자기 본위로만 생각하는지라 나막신 장수나 우산 장수처럼 ‘백일 장마에도 하루만 더 비가 왔으면’ 바라기도 하고, 꽃신 장수처럼 ‘석 달 장마 끝에 햇빛’ 기다리듯 날이 맑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속담이 그냥 나온 말들이 아니다.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오랜 삶에서 얻은 경험과 교훈이다.

    이 여름 비는 구질구질 내리고 질금질금 내리더라도 마음만은 모두 뽀송뽀송하기를!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