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사용설명서] 유상철 감독을 쓰러뜨린 췌장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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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몸 사용설명서] 유상철 감독을 쓰러뜨린 췌장암

    • 입력 2021.06.25 00:00
    • 수정 2021.06.27 05:13
    • 기자명 고종관 보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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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관 전 중앙일보의학전문기자·보건학박사
    고종관 전 중앙일보의학전문기자·보건학박사

    얼마 전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신화의 주역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나이 50세라고 하지요. 그러니 ‘췌장암=노인암’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 듯도 합니다. 사실 2011년 췌장암으로 사망한 스티브 잡스 역시 당시 나이가 56세에 불과했습니다.

    췌장암은 악당이 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췄죠. 첫째는 초기증상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80%의 환자가 3~4기에 이르러서야 확진을 받는 이유입니다. 다른 검사를 받다 우연히 발견되는 사례가 환자의 절반에 이른다고 해요. 유 감독도 황달로 병원을 찾았을 때 이미 4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둘째는 진단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크기가 15㎝(무게 100g) 정도로 손가락만한데다 위의 뒤쪽에 숨어있어 초음파와 같은 간단한 검사장비로는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진단을 위해 값비싼 MRI(자기공명영상장치)나 CT(컴퓨터단층촬영)가 동원돼야 합니다. 

    셋째는 다른 장기로 전이가 빠르게 진행됩니다. 이는 췌장 주위로 주요 혈관들이 지나가기 때문이지요. 월드컵의 영웅인 유 감독 역시 전이된 암과 싸우다 마지막에는 뇌를 공격한 암세포에 의해 쓰러졌습니다.

    이런 이유로 췌장암은 다른 암에 비해 생존율이 극히 낮습니다. 예컨대 예후가 안 좋은 폐암의 경우에도 5년 생존율이 30% 이상이고, 5대 암에 들어가는 대장암이나 간암 등은 평균 70%대의 생존율을 보입니다. 하지만 췌장암은 이보다 훨씬 낮은 11% 수준에 머무르니까요. 

    국내에선 매년 7600여 명의 췌장암 환자가 발생합니다. 전체 암환자 중 약 3%를 차지합니다. 암종별 발생 순위로는 8위에 랭크되지만 사망 순위로 보면 5위로 껑충 뜁니다. 그만큼 악성도가 높다는 뜻이지요. 나이별로는 50대부터 늘어나기 시작해 환자의 80%가 60대 이상에서 발생합니다.

    췌장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소화효소를 분비하는 일입니다. 탄수화물을 분해하는 아밀라아제, 단백질 분해효소인 트립신 등을 하루 1.5리터나 생산해 소화를 돕지요. 췌장암 환자의 증상 중 소화가 안 된다는 건 이런 효소가 잘 분비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당뇨병 환자들이 꼭 알아야 할 인슐린과 글루카곤 호르몬도 이곳에서 만들어집니다. 인슐린은 혈당을 낮추고, 글루카곤은 반대로 높이는 기능을 해서 우리 몸의 적절한 혈당치를 조절합니다. 잘 조절되던 혈당치가 갑자기 난조를 보인다면 췌장을 점검해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이겠죠. 

    실제 당뇨병 환자가 췌장암에 걸릴 확률이 8배나 높다는 논문이 있을 정도로 당뇨와 췌장암은 깊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췌장은 가운데가 불룩한 배(ship)모양으로 생겨, 위쪽은 담즙 배출통로인 담관에, 또 아래쪽은 비장과 연결돼 있습니다. 따라서 암 덩어리가 머리 쪽에 있는 담관을 막으면 담즙이 관을 통해 배출되지 않고 혈액 속으로 녹아들게 됩니다. 담즙에는 빌리루빈이라는 색소가 있어 피부나 눈동자를 노랗게 물들이는 황달증상이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고약한 췌장암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불행하게도 확실한 발생 원인을 알지 못하니 예방 또한 일반적인 내용이 전부입니다.

    미국암협회 역시 췌장암을 예방하는 확실한 방법은 없다며 흡연, 기름진 식단, 비만 등을 경계하라는 안내를 합니다. 담배를 끊고, 가공된 붉은 육류, 설탕을 줄이면 발생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군요.

    과도한 음주는 확실하게 췌장암 발생에 영향을 미칩니다. 만성췌장염이 암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입니다. 또 작업장 내에서의 화학물질 역시 췌장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분진이나 특정 화학물질에 가능하면 노출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겠죠.

    췌장암은 전이가 빠르다는 것은 앞에서 설명 드렸습니다. 그러니 하루라도 더 빨리 진단을 받기 위해선 고위험군은 정기적인 진단을 받아야 하고, 작은 증상이라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위험군에는 당뇨병 환자와 가족력이 포함됩니다. 당뇨병이 있거나, 없는데 갑자기 혈당이 높아진 사람이 요주의 대상입니다. 또 가까운 혈육 중에 췌장암이나 소화기암으로 돌아가신 분이 있다면 정기적인 점검이 필요합니다.  

    췌장암으로 흔히 나타나는 증상은 복통과 소화불량입니다. 배가 아플 때 등쪽으로 방사통이 있다면 ‘혐의’는 더욱 짙어집니다. 이때 식욕 감퇴와 체중 감소가 동반된다면 반드시 췌장암 검사를 권합니다. 실제로 소화가 안 된다고 위내시경을 받는다거나 소화제만 먹다가 한두 달 진단 시기를 놓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담관이 막히면 담즙의 빌리루빈에 의해 황달은 물론, 약간 회백색을 띤 변, 또는 기름진 변, 어두운 색깔의 소변을 볼 수 있습니다.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고 절망하기엔 이릅니다. 그만큼 새로운 약물이 계속 개발되고 있고, 또 다양한 약제를 활용한 병용요법 등 암치료술이 좋아지고 있어서입니다. 따라서 과거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3~4기 환자에게도 적극적으로 치료를 권합니다. 항암제와 방사선요법으로 암조직을 축소시킨 뒤 수술로 췌장의 암조직을 들어내는 방식이 그것입니다. 

    수술 후 투여하는 보조항암제도 개선돼 훨씬 좋은 예후를 보이고 있습니다. 생존기간이 길어진다거나 완치 판정을 받는 환자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췌장암의 5년 생존율이 다른 암과 비슷한 수준으로 하루빨리 올라가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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