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단 거장들 육필원고 춘천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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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문단 거장들 육필원고 춘천서 만나다

    김유정문학촌 소장 희귀자료 두 번째 특별전시
    오는 10월 31일까지 주제 바꿔가며 전시 예정
    장편 ‘임꺽정’ 홍명희·유재용 단편 ‘환’ 육필 공개

    • 입력 2021.06.24 00:01
    • 수정 2021.06.25 06:37
    • 기자명 신초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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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문단 거장들의 육필원고를 ‘악필’과 ‘달필’로 명명한 특별전시가 춘천 김유정 생가가 위치한 김유정문학촌에서 열려 눈길을 끌고 있다. 

    김유정문학촌은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거장들의 친필 원고와 서한,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사진 등의 희귀자료를 모아 특별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오는 10월까지 열리는 특별전시는 첫 번째 ‘거장들의 귀환’을 시작으로, 지난 주부터는 두 번째 전시 ‘소설가, 악필에서 달필까지’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 특별전시 주인공은 소설가들의 땀과 인내가 스며든 육필원고다.

     

    ‘소설가, 악필에서 달필까지’ 전시가 춘천 김유정문학촌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신초롱 기자)
    ‘소설가, 악필에서 달필까지’ 전시가 춘천 김유정문학촌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신초롱 기자)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자료는 판화가 남궁산(60)의 장서표(藏書票)다. ‘생명 판화가’라 불릴 정도로 ‘생명’을 주제로 한 연작판화를 주로 작업했던 남궁산은 소장자를 나타내기 위한 도서의 표지나 면지에 붙이는 ‘장서표’ 판화를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한 뒤, 지금까지도 독보적인 작업을 펼치고 있다.

    그가 올해 제작한 ‘김유정 장서표’에는 김유정을 상징하는 노란 동백꽃(생강나무)와 단편 ‘솥’, ‘안해’ 등에서 일제강점기의 척박하고 애절한 삶을 드러내는 중요한 소도구인 ‘무쇠솥’과 ‘총각과 맹꽁이’에 등장하는 ‘맹꽁이’가 각인돼 있어 흥미를 자아낸다.

    소설가 이순원(64) 김유정문학촌장의 장서표와 남궁산이 쓴 ‘장서표 이야기 : 인연을 새기다’ 중 ‘사람 냄새 나는 마을 : 소설가 이순원’에 실린 내용 일부도 함께 전시 중이다.

     

    1933년 6월 홍명희가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작품. (사진=신초롱 기자)
    1933년 6월 홍명희가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작품. (사진=신초롱 기자)

    또 조선일보가 1928년부터 13년간 연재한 소설 ‘임꺽정’으로 잘 알려진 벽초 홍명희(1888~1968)가 일본 도쿄에서 유학 중이던 1907년 8월 11일, 그가 만 19세 때 이종사촌 형에게 보낸 편지도 직접 볼 수 있다. 편지글에는 ‘저는 세상의 풍파에 휩쓸리며 외로운 나그네로 멀리 떠나와 하는 일마다 마음을 다치고 있을 뿐입니다’, ‘이 아우는 너저분한 세상살이에 몸은 매이고 마음은 속세의 잡념으로 가득해 형님 만큼의 참된 경지나 취미를 가지지 못하니 한스러움이 또한 어떠하겠습니까’ 등 안정적이지 못했던 그의 심리가 그대로 반영돼 있다.

    작품의 제목에 유난히 ‘어둠’이 많았던 장편소설 ‘마당 깊은 집’의 김원일(79) 작가의 육필 자료도 눈에 띈다. 지난 1967년 월간문예지 ‘현대문학’의 장편 공모에 당선된 ‘어둠의 축제’를 비롯해 단편 ‘어둠의 혼’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길지 않은 이 글에는 유년기에 전쟁을 겪으며 두려움과 죽음, 염세, 불안, 퇴폐를 상징하는 ‘어둠’을 소설로 구체화 해보고 싶었다는 견해가 잘 드러난다.

     

    소설 ‘채식주의자’ 작가 한강의 부친인 소설가 한승원의 육필원고. (사진=신초롱 기자)
    소설 ‘채식주의자’ 작가 한강의 부친인 소설가 한승원의 육필원고. (사진=신초롱 기자)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의 부친인 소설가 한승원(82)의 육필원고도 전시하고 있다. 지난 1960년대 중·후반 신아일보와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지금까지도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한승원이 적은 세로쓰기 방식의 육필원고와 타이프 라이터로 작업한 원고를 동시에 만날 수 있다.

    28살 이른 나이에 단편 ‘모반’으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오상원(1930~1985), 최일남(89) 작가와 분단문학의 두 거목이라 불리는 대하소설 ‘지리산’을 집필한 작가 이병주(1921~1992), 인민군 출신으로 한국전쟁을 겪고 옥고도 치렀던 이호철(1932~2016)의 육필원고도 흥미롭다. 오상원, 최일남은 동아일보 기자 출신이며, 이병주와 이호철은 월간문예지 ‘한국문학’에 같은 기간인 지난 1986년 글을 연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민군 출신 작가 이호철(왼쪽)·대하소설 ‘지리산’ 작가 이병주의 육필원고. (사진=신초롱 기자)
    인민군 출신 작가 이호철(왼쪽)·대하소설 ‘지리산’ 작가 이병주의 육필원고. (사진=신초롱 기자)

    이외에도 ‘원미동 사람들’의 양귀자(66)가 ‘리얼리즘’에 대한 생각을 써 놓은 육필원고와 치열한 구도자의 삶, 인간적 고뇌가 엇갈리며 만나는 철학적 높이를 가진 소설로 많은 독자를 가졌던 김성동(74)의 육필원고도 감상할 수 있다.

    시인에서 소설가로 전향해서인지 시적인 문체가 인상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윤후명(75)와 국문학 박사로 한국일보 기자를 지낸 ‘리빠똥 장군’의 저자 김용성(1940~2011)의 육필원고와 에세이는 문학·철학·역사적 지향을 짐작하게 한다.

    ‘어두운 기억의 저편’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지만 40대의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비운의 작가 이균영(1951~1996), 단편소설에 주어지는 대부분의 상을 거의 다 받았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을 썼던 유재용(1936~2009)의 작품 ‘환’의 육필원고도 시선을 멈추게 한다.

     

    소설 창작에 삶을 걸었던 작가 유재용의 단편 ‘환’ 육필원고. (사진=신초롱 기자)
    소설 창작에 삶을 걸었던 작가 유재용의 단편 ‘환’ 육필원고. (사진=신초롱 기자)

    소설의 지평을 넓힌 평론가로 명성을 얻은 김윤식(1936~2018)이 ‘이광수와 그의 시대’를 집필한 후 감회를 적은 원고와 지난 1980년대의 역사적 아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편 ‘불임기’에 대한 조남현(73)의 평론이 담긴 육필원고도 흥미를 자아낸다.

    한편 김유정문학촌은 오는 10월 31일까지 ‘시인의 고뇌, 시의 향기’, ‘셀럽, 편지를 쓰다’ 등의 주제로 전시를 이어간다.

    [신초롱 기자 rong@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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