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마음풍경] 춘천에서 단오맞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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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원의 마음풍경] 춘천에서 단오맞이하기

    • 입력 2021.06.13 00:00
    • 수정 2021.06.14 06:28
    • 기자명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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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나라마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꽃이 있습니다. 그래서 국화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우리나라 꽃은 무궁화지요. 일본은 흔히들 벚꽃이 국화인 줄 알고 있는데, 따로 국화라고 딱 정한 건 없지만 일본 왕실의 문양이 국화꽃이라 그걸 일본의 국화로 보는 게 맞겠지요. 일본의 벚꽃과 같은 꽃이 우리에게는 진달래와 개나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춘천엔 개나리가 참 흔합니다. 아니, 춘천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방방곡곡이 다 개나리가 흔하지만, 이렇게 개나리가 흔한 데도 개나리의 자연 자생지를 찾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대관령 아래에 살았던 저는 초등학교 시절 개나리를 책에서 말고는 본 적이 없습니다. 어느 시기에 전국으로 확 번진 것이지요.

    제가 촌장으로 일하고 있는 우리 김유정문학촌에 오시면 곳곳에 생강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김유정 선생의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바로 그 노란 동백꽃입니다. 이 생강나무를 같은 강원도에서도 ‘동박나무’라고 부르는 지역이 있고, ‘동백나무’라고 부르는 지역이 있습니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 동박이 다 떨어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잠시 잠깐 님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김유정 선생이 춘천 실레마을이 아니라 정선 아우리지나 구절리, 혹은 평창, 강릉 쪽에서 나셨다면 작품 제목도 <동백꽃>이 아니라 <동박꽃>이 되었겠지요. 김유정 선생 생가와 기념관 부근이 온통 이 동백나무 숲입니다.

    그런데 김유정 선생 생가 우물가에 일부러 그곳이 ‘우물가’이기에 그랬는지 모르지만 한 그루의 잘 자란 앵두나무가 서 있습니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하는 노래를 떠올리고 그곳에는 동백나무가 아닌 앵두나무를 심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과일 중에 새콤달콤하기로 따지면 앵두를 따라갈 과일이 없지요.

    같은 꽃, 같은 과일을 봐도 저마다 떠올리는 게 다를 텐데 저는 앵두를 보면 바로 단오가 떠오릅니다.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일 년 중에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라 하여 예부터 큰 명절로 여겨왔습니다. 마을마다 단오 전에 청년들이 돈에 어귀에 높다란 그네를 매어놓았습니다. 그네를 한자로 추천(鞦韆)이라고 하는데, 그네를 뛸 때 발판을 구르며 ‘추천이여’ 하고 소리를 냈습니다. 뜻을 모르는 우리는 ‘춘천이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네를 높이 뛰면 강릉에서도 춘천이 보일 거라고 생각했던 거지요.

    단오가 되면 창포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습니다. 창포를 물에 삶으면 옅은 먹물 빛이 납니다. 머리에 젤을 떡으로 발라도 창포물로 감으면 머리카락에서 향긋한 냄새가 나며 작은 바람에도 화르르 날립니다. 할머니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이날만은 인진쑥 줄기로 비녀를 대신했습니다.

    단오에는 뭐니뭐니 해도 수리취가 빠지면 안 되지요. 요즘 채소로 쓰는 곰취가 아니라 비슷한 종류의 취나물에도 떡취라는 게 있습니다. 쑥보다는 바로 이 떡취로 수리취떡을 만듭니다. 그리고 앵두화채를 먹기도 하고, 공들여 앵두편을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앵두편은 귀해서 요즘은 구경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단오 전날 앵두를 따서 깨끗이 씻어 꼭지를 떼고 물에 삶습니다. 과육이 무르면 고운 체에 담아 씨앗과 껍질을 발라냅니다. 그러는 동안 물과 녹말을 개어 그걸 바닥이 두툼한 냄비에 앵두즙과 함께 담아 소금을 조금 넣어 끓입니다. 녹말 중에서도 녹두 녹말이 가장 좋다고 해요. 녹말을 갠 것이 덩어리지지 않게 잘 저어 끓이다가 조금 되직해지면 거기에 꿀을 넣어 조금 더 끓입니다. 녹말이 앵두편의 틀을 잡아주는 거지요. 그걸 묵처럼 식힌 다음 모양내어 썰면 앵두편이 됩니다.

    올해도 김유정문학촌의 앵두나무에 앵두가 많이 달렸습니다. 우물가의 앵두를 보며 저는 어린 시절의 단옷날을 생각합니다. 아무도 몰래 몇 개를 따먹었는데 아마 본 사람이 없겠지요. 아니, 그곳에 동상으로 서 계시는 김유정 선생께서 곁눈질로 보셨는지 모르겠어요. 앵두나무와 동상의 각도가 딱 그렇거든요. 선생님도 몰래 미소지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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