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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마음풍경] 김유정과 홍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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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마음풍경] 김유정과 홍명희
  •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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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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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지난 봄 제가 일하는 김유정문학촌에 동백꽃(생강나무꽃)이 노랗게 필 때 김유정 선생의 추모제가 열렸습니다. 이날 김유정 선생과 같은 가문인 청풍김씨 문중 한 분이 <임꺽정전> 소설을 쓴 벽초 홍명희 선생의 친필 편지 한 점을 기증했습니다. 홍명희가 열아홉 살 때 일본에 유학을 가 있는 동안 이종사촌 형에게 붓으로 써서 보낸 서간문입니다. 날로 국력이 약해져 가는 나라의 젊은 유학생의 고뇌가 그대로 담긴 편지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열아홉 살이면 한창 공부할 나이가 분명하지요. 지금으로 보면 고등학교 3학년이거나 대학 1학년쯤 되었겠지만, 그때 홍명희는 열세 살에 결혼하여 열여섯 살에 아들을 낳습니다. 열아홉 살 때 이미 네 살 된 아이가 있는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막 태어난 아기의 시선으로 본다면 할아버지는 서른세 살이고, 아버지는 열여섯 살입니다.

불과 100년 전의 이야기인데, 그때와 비교하면 요즘 젊은이들의 결혼 나이는 참 많이 늦어진 감이 있지요. 세상의 모습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하고 좋아졌지만, 젊은이들이 한 가정을 꾸미고 살아가는데 그만큼 많은 짐이 얹어져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어른이 되어가는 절차가 그만큼 힘들어졌다고 할까요.

홍명희의 아버지 홍범식도 대단합니다. 그때 우리나라는 을사늑약으로 이미 외교권을 박탈당해 일제 침략에 항거하는 의병 활동이 전국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홍범식은 전라도 태인 군수로 부임하여 의병 보호에 적극적으로 힘을 씁니다. 그리고 1910년 기어이 나라의 주권이 강탈되자 너무도 분해 목을 매어 자결합니다.

아버지는 죽으면서 아들에게 ‘절대 친일을 하지 말고 훗날에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는 유서를 남깁니다. 홍명희는 이 말을 방에 걸어놓고 아버지의 유훈을 지킵니다. 홍명희와 같은 시기에 일본으로 유학을 간 사람이 춘원 이광수와 육당 최남선입니다. 이들 세 명을 가리켜 흔히 ‘동경삼재’라고 부르는데, 후일 이광수와 최남선이 친일로 돌아섰을 때에도 홍명희는 갖은 협박과 투옥 속에서도 아버지의 유훈을 지켜냅니다.

그러나 참으로 마음 아프게도 홍명희의 할아버지 홍승목은 아들과 또 손자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친일의 길을 걸어갑니다. 이런 거야말로 한 집안의 비극이자 역사의 비극인 거지요. 그런 할아버지를 바라보아야 하는 홍명희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홍명희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괴산으로 가서 스스로 독립선언서를 짓고 의병대장을 도와 독립운동을 주도합니다. 

다시 편지 얘기로 돌아가 일본에 유학을 가 있던 홍명희가 이종사촌 형에게 편지를 보낸 날짜는 융희 원년 8월 11일입니다. 1907년의 일로 나라는 날로 힘을 잃어 가는데 국호만 거창하기 그지없던 시절입니다. 김유정 선생은 그 다음해인 1908년에 춘천 실레마을에서 태어납니다. 

그렇지만 이 두 사람의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김유정 선생은 금병산 자락 아래 실레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할아버지 밑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서울로 가서 열두 살에 재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합니다. 월반하여 3년 만에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열다섯 살에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합니다.
 
이때 홍명희는 독립운동으로 청주형무소에 투옥되어 감옥생활을 마친 다음 벗과 함께 세상을 떠돌다가 서울로 올라와 교편생활을 하며 후세를 가르칩니다. 이때 홍명희가 몸담았던 학교가 휘문, 경신, 오산고등보통학교였습니다. 어쩌면 이때 홍명희가 김유정이 공부하는 교실에 들어와 문학수업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한 학교 울타리 안에서 한 사람은 가르치고 한 사람은 배움을 닦았던 시절, 홍명희는 누구보다 일찍이 김유정의 문학적 재능을 알아보았을지도 모릅니다.
 
문학은, 특히나 소설은 상상을 바탕으로 그 시대의 모습과 정신을 그립니다. 홍명희가 매일매일 신문에 연재하는 《임꺽정전》을 읽으면서 그때 한창 문학공부를 하던 김유정과 이상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을까요? 김유정문학촌 전시실에 걸려있는 홍명희의 서간문을 보노라면 이곳의 문학촌장인 저도 그 시대 작가들의 모습에 대해, 또 그 시절과 오늘날 작가의 역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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