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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뒤적뒤적] 태초에 남녀 간의 오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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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뒤적뒤적] 태초에 남녀 간의 오해가 있었다
  •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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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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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북칼럼니스트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새로운 피조물은 내가 이의를 제기하기도 전에, 보이는 모든 것에 이름을 붙여버린다.…말을 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그것은 쉴 새 없이 말을 한다.”

“지난 하루이틀 동안 내가 그를 대신해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일을 전부 떠맡았더니, 그 분야에 재능이 없는 그가 크게 안도했으며 무척 고마워하는 눈치다.…나는 그의 결함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

앞의 문장은 아담의 속내이고 뒤 문장은 이브의 짐작입니다. 아니, 무슨 아담과 이브가 기록을 남겼냐고요? 맞습니다, 이건 순전히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산물입니다. 그 주인공은 마크 트웨인. 우리에게는 아동용 소설 『톰 소여의 모험』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동화작가가 아닙니다. 마크 트웨인은 ‘미국 문학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영미 문학사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대가입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당연히 ‘톰 소여~’를 포함한 ‘미시시피 3부작’이 꼽히지만 실은 유머 감각이 대단히 뛰어난 풍자작가란 사실은 국내 독자들에겐 그리 알려지지 않은 듯합니다.

구어체로 천연덕스럽게 풀어내는 그의 솜씨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것이 이번에 소개하려는 『아담과 이브의 일기』(문학동네)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각각 일기를 썼으리라는 상상에 바탕을 둔 이 소설은 지구 최초의 남녀가 서로에 대한 첫인상이 어땠는지, 어떻게 투닥거리면서 서서히 가까워졌는지-뭐, 지상에 딱 둘뿐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긴 했지만- 내밀한 고백을 통해 보여주는데 작가의 상상력에 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이 긴 머리의 새로운 피조물이 아주 거치적댄다. 항상 얼쩡거리며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이게 이브에 대한 아담의 첫인상입니다. 폭포를 건너다니지 말라고 간섭하는 이브에게 몸서리가 난다고도 합니다. 

연못에서 노니는 작은 물고기들을 잡으려 하는 아담을 보고, 이브는 작은 피조물에 대한 연민이 없다며 “취향이 저속하고 인정이 없다”고 여깁니다. 선악과를 먹은 사실을 고자질한 아담을 두고 자기 같으면 고자질하느니 차라리 죽어버렸을 거라고 못마땅해하죠.

키가 6미터에 몸 길이가 26미터인 공룡 브론토사우루스를 보고는 이브는 낙농장을 만들 계획을 세우며 아담이 젖 짜기를 도와줬으면 하지만 아담은 사다리가 없다는 이유로 반대합니다. 아들 카인의 등장은 어떻고요. 아담은 카인이 동족이라 인식하지 못해 아담과 이브 사이는 더욱 벌어집니다.

“어쩌면 물고기일 수도 있는데, 내가 알아보려고 물속에 집어넣으니 그것이 가라앉았고” 이브는 “그것이 무엇인지 개의치 않으며 내가 그것을 가지고 시험을 하게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런 둘은 점차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집니다. 처음에 아담이 비를 피하려고 지은 거처에 이브가 들이닥치자 아담이 내쫓으려 하는데 “그것은 사물을 보는 구멍에서 물을 쏟더니, 손등으로 그 물을 훔쳐내며 다른 몇몇 동물이 괴로울 때 내는 그런 소리를 냈다”던 상황과는 영 딴판이 되죠.

결국 아담은 “이 모든 세월이 지나고 보니, 내가 초반에 이브를 잘못 판단했음을 알겠으며 그녀 없이 에덴 동산에 사느니 그녀와 함께 동산 밖에서 사는 편이 낫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이브 또한 “이 사랑은 그냥 다가오며, 어디에서 오는지 아무도 모르고 설명도 되지 않는다”고 여기며 마침내 두 사람은 진정한 ‘우리’가 됩니다.

책은 기독교 창세기 신화에 기반을 두고 인류의 탄생,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 부부 관계 등을 특유의 유머러스한 문체로 풀어갑니다. 자연히 읽는 동안 슬그머니 웃음이 나오지만 사랑의 본질을 비롯해 제법 생각거리도 던집니다. 

“알아낼 게 하나도 없다면 따분하리라. 답을 얻으려고 노력해서 답을 얻지 못하는 것조차 답을 얻으려고 노력해서 답을 얻는 것 못지않게 흥미로우며, 어쩌면 그 이상일지 모른다.” 이성적인 이브의 생각입니다. 여성은 감정적이란 통념과 달리 꽤나 진지하지 않나요?

사실 이 책은 20년도 더 전에 문장이란 출판사에서 나온 적이 있습니다. 새로 나온 책은 오랜만에 다시 보는 데다가 스페인 일러스트레이터의 삽화를 넣어 한결 아름답게 만들어진 덕분에 무척 반가웠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우울한 요즘이어서 더욱 그런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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