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노포에 묻는다] 1. 미용실, 수왕헤어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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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 노포에 묻는다] 1. 미용실, 수왕헤어샵

    춘천에서 가장 오래된 미용실 '수왕헤어샵'
    '명동의 상징'이던 잘 나가던 시절도
    성성희 원장, 여든 넘어서도 매일 미용 가위 들어
    '가족'이 된 고객들과의 소통, 성실함이 장수 비결

    • 입력 2021.05.21 00:02
    • 수정 2021.05.23 00:32
    • 기자명 권소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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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자에게는 정년이 없다. 국가기술자격 중 최상위 등급인 ‘기능장’ 자격증은 ‘기능계의 끝판왕’으로 불린다. 이용장, 미용장, 제과기능장, 자동차정비기능장 등은 이미 한 분야에서 업을 이뤄낸 ‘달인’들이다. 이런 장인정신을 우리 골목상권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바로 60년 된 미용실, 30년이 넘은 세탁소 등이다. 고객에게 제공하는 전문 기술과 서비스, 그리고 꾸준한 노력이 곧 장수의 비결이다. 코로나19 펜데믹이 지역 경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요즘, 춘천 자영업의 역사를 돌아보고 골목상권의 미래를 엿보기 위해 소상공 업종별 노포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MS투데이가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인허가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1992년 이전 개업해 업력 30년을 넘은 미용실은 춘천에만 86곳이다.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기 이후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 금융 사태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겪으며 업력을 쌓아온 ‘노포’들이다. 1966년 개업한 소양로1가 중앙미용실이 영업 중이며, 1970년대부터 운영을 시작한 업체도 17곳이다. 1980년대 개업한 미용실은 56곳에 달한다.

    그 중에서도 현존하는 춘천에서 가장 오래된 미용실은 효자동에 위치한 ‘수왕헤어샵’(대표 성성희) 이다. 영업 신고일이 1960년 12월 16일로 운영 기간만 61년이 됐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매일 미용 가위를 들고 손님들의 머리를 매만지는 성성희(81) 원장은 ”코로나19가 생기고 망한 미용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우“라며 입을 열었다.

     

    단골손님의 머리를 손질 중인 성성희(81) 수왕헤어샵 원장. (사진=권소담 기자)
    단골손님의 머리를 손질 중인 성성희(81) 수왕헤어샵 원장. (사진=권소담 기자)

    성 원장은 6·25 전쟁이 끝난 후 19살이 되어서야 중학교 교육과정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공부에는 흥미를 못 느끼던 차에 강릉에서 이사 온 친구가 “6개월만 배우면 돈을 벌 수 있다”고 권유해 함께 중앙시장에 위치한 미용학원을 찾았다. 문을 열자마자 미용학원 선생님이 ‘고생 문이 훤하다’고 했다. 그때 그 말의 뜻을 모를 정도로 성 원장은 숙맥이었다.

    ‘수왕미장원’ 초창기 실소유주는 성 원장이 아니었다. 1960년 당시 한 교도관이 재소자들이 만든 미용실 기구를 이용해 미용실을 창업하려 했다. 자본금을 댄 교도관이 미용 기술과 자격증이 없으니 월급을 올려주는 조건으로 성성희 원장 명의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다 몇 년 후 성 원장이 가게를 직접 인수했다. 시집을 가야한다며 창업 자본금을 대주지 않았던 아버지 대신 친척 한 분이 선뜻 돈을 빌려줬다. 성 원장이 20대 중반에 접어들었을 무렵의 이야기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수왕헤어샵 가격표. (사진=권소담 기자)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수왕헤어샵 가격표. (사진=권소담 기자)

    명동의 터줏대감이었던 수왕미용실은 한때 직원이 9명에 달할 정도로 큰 미용실이었다. 성성희 원장은 한달에 한 번 쉬는 날에도 자녀를 데리고 서울의 버금미장원, 종로미장원 등으로 견학을 다니며 유행하는 기술과 서비스를 배워왔다.

    미용업 직능단체인 대한미용사회 도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당시 일본으로 수차례 교육을 다녀오며 신기술을 익혔고 1988년 호주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 당시 한국이 대회 7연패를 차지할 때 미용분야 기술지도위원으로 참가했다. 미용실 곳곳에 걸린 사진 액자에서 심사위원으로 활약했던 1986년 뉴욕 IBS 파견 한국선수선발대회, 1988년 한국미용경연대회, 1993년 강원도미용기술경연대회 당시 성성희 원장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미용 관련 국제대회 심사위원, 기술지도위원 등으로 활약하던 시절의 성성희 원장. (사진=수왕헤어샵) 
    미용 관련 국제대회 심사위원, 기술지도위원 등으로 활약하던 시절의 성성희 원장. (사진=수왕헤어샵) 

    인터뷰가 있던 날, 그의 동창 김신강(81) 씨가 수왕헤어샵을 찾았다. 오랜 친구에게 머리를 맡기기 위해 신북읍에서부터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며 효자동까지 온 단골손님이다. 김씨처럼 수왕미용실의 손님들은 대부분 40~50년씩 성 원장에게 머리를 맡겨온 단골들이다. 80~90대 손님들이 수두룩이다.

    수왕헤어샵 손님들은 성 원장에게 “형님이 미장원을 그만두면 난 파마 안 할란다. 아프지도 말고 늙지도 말고 오래오래 해달라”고 말한다. 이미 미용사와 손님의 사이를 넘어 수 십년을 함께 한 신뢰 관계가 쌓였다. 성 원장은 "나는 바보다. 미용 일 말고는 모른다. 그저 배운 게 이것밖에 없어 하루하루 하다 보니 벌써 60년이 됐다”며 “일이 없으면 죽을 때가 됐나 싶다. 혹시 멀리서 왔다가 돌아가는 손님 없게 항상 문을 열고 성실히 하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60년 장수의 비결은 다른데 있지 않았다.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성 원장에게는 꾸준함과 겸손함, 성실함이 있었다.

    [권소담 기자 ksodamk@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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