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뒤적뒤적] 여유를 가지고 서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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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뒤적뒤적] 여유를 가지고 서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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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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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북칼럼니스트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코로나19 사태가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에 따라 ‘집콕’이 늘어나면서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이 화제입니다. 학생들간의 학력 격차가 심해졌다든가 평균 체중이 증가했다든가 하는 뉴스가 언론을 장식합니다.

하지만 세상사 거의 모두가 좋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한 것은 드물다고 하죠. 자기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현명한 태도를 갖춘다면 ‘집콕’도 못 견딜 일만은 아닐 겁니다. 이번엔 이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골랐습니다. 독일 출신의 문화사학자가 쓴 『세상의 모든 시간』(토마스 기르스트 지음, 을유문화사)입니다.

부제가 ‘느리게 사는 지혜에 관하여’인 이 책은 오래 이어질 만한 가치는 반드시 ‘시간의 빚’을 진다는 생생한 사례를 보여주는 에세이집입니다. 독일의 한 수도원에서 639년 동안 공연되는 존 케이지의 오르간 연주, 화가 마르셀 뒤샹이 20년에 걸쳐 만든 생애 마지막 작품, 수천 페이지에 이르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걸작 『잃어버린 시간에 대하여』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한데 눈에 들어온 구절은 지은이가 어릴 적 이모에게서 들었다는 평범한 말이었습니다.

“초콜릿을 먹을 때 절대로 조각내지 말고 씹어 먹지도 마. 좋은 초콜릿은 천천히 빨아 먹어야 제맛이란다. 그래야 맛이 입안에 한가득 퍼질 수 있거든. 최대한 길게, 매 순간을 즐기라고.” 정녕 피부에 와닿는 조언 아닌가요?

책에는 오랜 시간 공들인, 다양한 예술품 이야기가 나오는데 첫머리는 프랑스의 평범한 우편배달부가 지은 ‘꿈의 궁전’이 장식합니다.

프랑스 동남부 갈로흐 강변에 위치한 오트리브란 마을에 살았던 슈발은 외딴 촌락과 작은 마을을 도느라 매일 30킬로미터 이상을 걸어야 했습니다. 43세 때 길가의 돌멩이에서 ‘우주’를 찾아내고는 ‘나도 석공이자 건축가가 될 수 있다’고 깨닫습니다. 

이후 32년간 우편배달을 하며 주워 온 자갈, 조개로 한때 밭으로 쓰던 땅에 거대하고 유려한 건물을 세웠습니다. 가로 30미터, 세로 15미터 크기이며 높이는 13미터에 이르는 건축물에는 수백 개의 동물과 화초의 조각, 역사적 인물, 꿈에서 본 거인 등은 물론 힌두 사원, 중세의 성, 이집트의 무덤 등 다양한 형상을 오로지 슈발 자신의 손으로 지어 올렸답니다.

1904년 젊은 시인이 우연히 보인 관심을 계기로 슈발의 ‘작품’은 피카소 등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탐험하고자 했던 화가와 작가들의 순례지가 되었고 오늘날 주민이 2000명도 채 안 되는 오트리브 마을에 매년 10만 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찾아드는 명소가 되었답니다.

이 갤러리 입구에는 “나의 육신은 꿈을 위해 궂은 기후와 비웃음, 시간을 헤치고 살아남았다. 인생은 그저 덧없는 시간일 뿐이지만 나의 생각은 이 돌 속에서 계속 살아갈 것이다”란 슈발의 경구가 서 있다고 합니다.

책은 언뜻 게으름에 관한 찬양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문장이 아름답거나 심오한 통찰이 담긴 것은 아닙니다. 읽기에 썩 쉬운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다양한 예술품을 둘러싼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을 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그중에는 16세기 이탈리아 작가 겸 외교관이었던 발다사레 카스티글리오네가 소개한 ‘스프레자투라’란 개념이 있습니다. 노력하고 신경 쓴 사실을 드러내지 않는 일종의 가장된 무심한 태도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를테면 몇 주에 걸쳐 밤마다 고치고 또 고친 세심한 창작의 산물인 사랑의 편지를 마치 자연스럽게 쓴 듯하는 태도가 스프레자투라랍니다. 지은이는 욕심내고 서두르다 오히려 일을 망치느니 ‘여유를 갖고 서둘러라’라고 조언합니다.

이 밖에도 1930년부터 약 8년에서 12년마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역청을 관찰하는 ‘가장 오래된 실험’, 내부에 서식하는 박테리아의 활동으로 수년 동안 1센티미터씩 자란다는, 3000년 이상 된 희귀한 암석 스트로마톨라이트란 석회암 등 미처 몰랐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팝 가수 밥 딜런은 “모든 가치 있는 일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죠. 그런가 하면 “땀 흘리지 않고 얻어지는 것 중에 가치 있는 것은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흔히 인생은 마라톤이라고들 하는데 조금 늦는다고 조바심낼 건 아니라고 일러주는 책입니다. 예술의 향기를 더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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