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이라는 터널 안에서] 1.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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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컬이라는 터널 안에서] 1.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

    • 입력 2021.05.04 00:00
    • 수정 2021.05.20 14:07
    • 기자명 김수윤 문화예술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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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로 인해 닫혔던 공공 전시관들이 하나둘씩 문을 연지 꽤 되었다. 강릉시 문화재단 소속의 명주예술마당 또한 오랜 시간 잠겼던 문을 열고 때 맞춰 기획 전시 하나를 시민들에게 선보였다. 마침 문화도시로 선정된 강릉시의 문화재단이 선정 직후 기획한 전시라 기대를 품고 전시관으로 향했다.

    초대 작가는 강릉 출신의 여성 작가로, 특유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강릉의 걸출한 여성 예술인 두명,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의 재현을 전시에 담아냈다. 지역의 문화재단들이 잘 해 왔고, 할 법한 기획전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문제였다. 이 기획전은 표면적으로 보기엔 지역의 문화재단이 자신들에게 맡겨진 과업을 잘 수행한 듯 보였다. 전시장의 문을 열고 들어가 소개 글을 읽기 전까진.

    "강유림 작가는 강릉 출신 여류작가이며 다수의 개인·단체 전시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번 초대 전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강릉 태생 두 여인 사임당과 난설헌을 화폭에 담아 재해석한 강유림 작가의 한국화 작품입니다. 강유림 작가는 그녀들이 살았던 400년의 시간을 넘어 그녀들의 이름이 아닌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현대로 그녀들을 초대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그녀들을 담은 듯 합니다."

    위의 전시 소개문을 보자마자 이 전시가 문화재단의 ‘기획’ 전시 라는 사실을 의심했다. 2021년도 전시에서 여성 예술가를 소개하는 데에 있어 ‘여류’ 라는 단어를 봐야 한다는 사실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상설전시와 다르게 짧은 기간 동안에만 열리는 기획전시라면, 흔히 주최측은 전시로 하여금 사회에 대한 보다 진보적인 시각을 개진해 평소에 경험하지 못했을 신선한 예술적 경험을 관객에게 선사할 수 있어야 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기획’ 전시라면 적어도, 구태의연함과는 거리가 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주최 측은 다름 아닌 문화재단이었다. 지역의 문화 복지를 구현하고 문화 진흥이라는 역할을 맡아 시민들의 문화 함양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하물며 문화 도시 선정 사업의 주체였던, 그 문화재단.

    ‘문화도시’ 선정 지역의 문화재단은 2021년에도 여전히 ‘남성’을 보편으로 두고 ‘여성’을 주변으로 폄하하는 ‘여류’라는 단어를 자신들의 ‘기획’ 전시에서 관객들에게 서문으로 선보인 것이다.

    비수도권 지역에선 늘 청년들의 끊임없는 지역 탈주가 문제라고 말한다. 그것이 곧 지역의 문화적, 경제적 지속 가능성, 그리고 나아가 지역의 존재 자체에 대한 위기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연속되는 청년들의 지역 탈주를 해결해 보고자 정치권에선 지역의 청년들을 붙잡아 둘 강구책 뿐 만이 아니라, 서울이나 그 외 지역으로 나갔던 이들의 유턴 또한 유도할 수 있는 정책도 고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끊임없이 밖으로 나갔던 나 또한 어느덧 그 유턴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기도 한다. 돌아온다면, 그 자리가 이 곳이길 바란다. 하지만, 여성을 보편자로 대하지 않는 공동체 안에서 그 희망은 너무도 미약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과 비슷한 취향과 처지를 공유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타인의 곁에 머물고 싶기 마련이다. 여성 동료들이 보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도시에 내 자리라고 과연 있겠는가?

    유턴을 얘기하며, 정작 유턴해서 돌아갈 자리를 만들어 주지 않는 도시에 돌아갈 수 있는 이들은 없다. 그리고 구시대의 그 구태의연한 태도를 버리지 못하는 한, 청년들은 계속해서 떠나갈 것이다. 물론 지역에 사람이 있는 한, 도시는 어느정도 작동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미래를 간절히 원하고 그래서 성큼성큼 나아 갈 줄 아는 청년들의 연속적인 지역 탈주는 도시를 어느 순간에 멈춰 세워 그저 역사의 뒤켠에만 머물게 할 것이다.

    다양한 가능성을 존중하여 시민들 개개인이 주체가 되어 다채로운 문화를 누렸다는 역사를 가진 도시가 될 것인지, 그저 역사가 되어 버린 도시가 될 것인지 지역은 살아 남기 위해서라도 고민을 보다 깊이 할 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그 고민의 장 안에 미래 주역 당사자들의 자리가 보장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김수윤 문화예술기획자·작가]

    <김수윤 작가는 영국 엑시터 아트위크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 활동했으며 현재 강원여성예술인공동체 '아트낫뮤즈'를 공동 운영하고 있다.>

    ​김수윤 문화예술기획자·작가
    ​김수윤 문화예술기획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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