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행복청’을 ‘강원도교육청’으로 제자리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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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행복청’을 ‘강원도교육청’으로 제자리 찾아야

    • 입력 2021.04.29 00:00
    • 수정 2021.05.01 06:43
    • 기자명 유대균 강원초등교장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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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균 강원초등교장회장
    유대균 강원초등교장회장

    강원도교육청은 2017년 7월 3일 ‘행복한 교육이 행복한 사람을 만든다’는 믿음으로 ‘강원도행복청’ 선포식을 열었다.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사랑할 줄 안다는 인식으로 강원교육의 지향점을 행복으로 규정하고, 강원도행복청이 키운 인재, 행복한 강원도선생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학교현장은 이기적인 행복으로 넘쳤다. 학생들은 교육활동이 조금만 귀찮아도 하지 않았고, 조금만 어려워도 짜증냈다. 힘든 것은 아예 손도 대려고 하지 않았다. 행복교육은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육에 열정적인 선생님의 가르침은 학생들의 행복권 침해행위가 됐고, 행복을 가로막는 갑질 행위로 치부됐다.

    선생님들도 행복해야 했다. 학생들이 싫어하면 강요하지 않았고, 학생들이 귀찮게 여기면 내버려 두게 됐다. 열심히 학생을 지도하면 학생들과 갈등을 유발하게 돼 서로 불편했기 때문이다. 교육청에서 생각했던 행복청의 인재와 행복한 선생님들의 모습은 자기 위주의 이기적인 마음으로 변모해 학교현장은 무사안일과 편의주의로 색깔이 칠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정책이 또 있다. ‘놀이밥 100분’ 정책이다. 강원도교육청은 과도한 학업에 시달리는 학생들의 놀 권리 회복을 위해 2015년 5월 ‘놀이헌장 선포식’을 가졌다. 손가락 끝에 가시가 찔리면 온몸의 신경세포가 손끝에 쏠리듯 교육청에서 의지를 갖고 추진하는 정책은 학교현장을 집중하게 만든다. 놀이 정책은 결국 학교가 놀이에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교실은 점차 놀이하는 곳으로 바뀌었고 학생들이 간섭받지 않고 잠자는 곳으로 변모했다. 모두의 행복을 위해 싫은 소리를 꺼리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참 어려운 질문이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커피를 마시면서도 어떤 이는 행복을 느끼고, 어떤 이는 불행하다고 느낀다. 행복이란 감정이고, 느낌이며, 개인차가 있다. 강원도교육청에서는 학생들이 행복할 수 없는 이유를 5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강요받는다. 둘째, 제대로 놀지 못한다. 셋째, 남과 비교 당한다. 넷째, 실패가 두렵다. 다섯째, 정답만 찾아야 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학교를 놀이터로 만들고, 실패가 행복을 막는다고 실패 기회나 평가를 없애고, 정답만 찾는다고 오답 없는 교육 활동을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한 교육정책이 아니다.

    교육은 살아갈 힘을 키워 주는 것이다. 현재 불행한 처지에 놓여 있을지라도 미래의 행복을 위해 고진감래하는 역량을 키워주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을 희망의 사다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현재의 행복이 미래의 행복을 담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결코 현재의 행복이 미래의 행복을 담보할 수 없다. 교육의 목적 중에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포함되지만 교육이 곧 행복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을 통해 소질을 찾아주고 꿈을 키워주며, 살아갈 힘을 실어주어야 참된 교육인 것이다. 행복이란 이름으로 조금 힘들고 귀찮고 싫어한다고 내버려 두는 것은 교육의 직무유기다. 그러므로 ‘강원도행복청’ 이름부터 ‘강원도교육청’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교육의 결과지표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 기초학력이다. 기초학력이란 한국말을 읽고, 쓰고, 이해할 줄 아는 능력인데 강원도가 전국 최하위다. 기초학력 확보는 민주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인권이고, 학교의 존재 이유며, 국가의 책무다. 강원도행복청의 교실 모습은 필연적으로 기초학력 확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기초가 다져지지 않은 교육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며, 그 어떤 교육적 성취도 공염불에 불과하다.

    교육과 관련한 당면과제들이 국내외적으로 산적해 있다. 코로나로 원격수업이 보편화하고 교육격차와 학력 격차가 심각하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사물인터넷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은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인재를 요구한다. 저출산 고령화는 강원교육의 재구조화를 요구하고 있다. 2015년 다보스 포럼에서는 현재 직업의 65%는 없어지고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직업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엄중한 시기에 강원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펜실베니아 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엔젤라 더크어스가 실마리를 제공한다. 미국육군사관학교 학생들이 비스트라고 하는 약 2달간의 훈련 기간 낙오되는 이유를 찾던 중 끝까지 남아 성공하는 학생들을 조사해 본 결과 포기하지 않는 열정과 악착같은 끈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교육도 학생들이 성취감을 맛보게 해야 한다. 자기 존중감을 느끼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남과의 비교보다 자신과의 비교를 통해 경쟁력 있는 주도성을 길러 줘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 활동이 전개돼야 한다. 대한민국이 지속발전 가능성을 유지하고 국제경쟁력을 갖춘 나라가 되려면 강원교육이 먼저 변모해야 한다.

    인재양성은 구호에 있지 않다. 교육은 위대한 평등장치지만 그렇다고 평등교육이 평등사회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강원교육이 일어서야 한다. 상처투성이인 강원교육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참된 교육적 비전과 역량 있는 교육전문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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