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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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집

    • 입력 2021.04.28 00:00
    • 수정 2021.04.29 06:43
    • 기자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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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이 형 우

    짐과 짓 사이에  
    있다.
    싸도 싸도 끝이 없고 
    풀어도 풀어도 한이 없는 
    너와 나의  
    짐. 
    가도 가도 대책 없고 
    와도 와도 도리 없는 
    나와 너의  
    짓.  
    그 틈새 어디쯤 
    수치로 표시할 수 없고
    무게로 잴 수도 없는 
    요상한 지점에  
    있다 

    *이형우:1991년월간『현대시』등단*시론「체질과 욕망」.시집「착각」외 다수. 한양대 출강 및 한국시인협회사무총장역임.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맞습니다. 어쩌다가 ‘집’이 “짐과 짓 사이”에서 몸살을 앓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집’의 고유한 영역은 우리들 생활주거, 그 ‘안식처’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어쩌다 그 ‘안식처’의 자리에서 밀려나 일종의 ‘짐’이 되고 ‘짓’이 되고 말았습니다. ‘집’이 없어 전.〮월세 방을 전전하는 이들에겐 항상 ‘집’은 마음의 큰 ‘짐’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집’이 있는 자들에게도 폭탄 세금 때문에 마음의 ‘짐’이 커졌다고 합니다. 이래저래 ‘집’은 안식처가 아니라, ‘집’이 원수가 되고 ‘짐’이 된 세상입니다. 그래서 ‘집’은 슬픕니다. ‘집’이 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인 세상에서 ‘집’은 사람들과 딴 세상에서 붕붕 떠 살고 있는 듯합니다. 

    ‘짓’하는 사람들이 자꾸 ‘집’을 움켜쥐고 주물러서 ‘집’은 점점 더 붕붕 뜨고 커져서 아픈 몸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시의 화자(話者)가 말하는 것처럼 “싸도 싸도 끝이 없고/풀어도 풀어도 한이 없는/너와 나의/ 짐”이 된 것입니다. 또한 “가도 가도 대책 없고/와도 와도 도리 없는/나와 너의/짓”이 
    더 큰 ‘짐’을 백성들에게 아니, 민초들에게 지게 한 것 같습니다. ‘짐’을 덜어주려면 ‘집’은 시장경제가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칼보다 더 무서운 ‘짓’을 들이대다가 이렇게 어진 백성들에게 더 큰 ‘짐’이 되게 한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집’이 없어 떠도는 젊은 세대들의 근심걱정이 더 커진 ‘짐’! 또한 퇴직 후 겨우 집 한 채 
    달랑 장만했던 것이 이 또한 커다란 ‘짐’이 되었다고들 합니다.

    아무튼 우리들의 ‘안식처’라고 일컫던 ‘집’은 이젠 더 이상 ‘집’이 아니라 ‘짐과 짓’의 “그 틈새 어디쯤/수치로 표시할 수 없고/무게로 잴 수도 없는/요상한 지점”인 그 어디쯤에 엉거주춤 서 있는 같습니다. 엉거주춤 서서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하는 ‘짐’이 되었습니다.

    둥우리에서 쫓겨난 들새들처럼 그냥 입만 벌리고 붕붕 날아다니는 ‘집’과 함께 멍하니 서서 지붕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나와 너의/짓”이 하루 빨리 해결되어 ‘짐’을 덜어주는 ‘집’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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