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창수의 딴생각] 간신도 쓰일 데가 있다
  • 스크롤 이동 상태바

    [하창수의 딴생각] 간신도 쓰일 데가 있다

    • 입력 2021.04.25 00:00
    • 수정 2021.04.26 00:32
    • 기자명 소설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창수 소설가
    하창수 소설가

    옛날 중국의 얘기다. 출처가 분명하지 않아 실재했던 일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는데, 어쩌면 언젠가 한번 써보리라 하고 머릿속에 담아두었던 ‘소설’일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옛 중국 어느 나라에 백성들이 모두 칭송해 마지않는 제후가 있었고, 그의 휘하에 비독(秘毒)이라는 신하가 있었다. 비독이란 자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간신이라 말할 정도로 극악한 자였다. 제후 역시 비독이 그런 자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 일인지 제후는 비독을 곁에 두었다. 열렬한 충신은 물론이고, 제 몸 사리기에 바쁜 신하들조차 기회가 될 때마다 제후에게로 가서 비독의 못된 성정과 독단과 횡포를 고해바쳤다. 하지만 제후는 그 어떤 말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더구나 천하의 간신을 내치지 않고 곁에 두는 이유조차 말해주지 않았다. 다만, “그대들이 덮어두기 바라오,”라고 말할 뿐이었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설법을 하기 위해 제후의 초청을 받고 궁성을 방문했다. 제후는 신하들을 모두 참석하게 한 뒤 설법을 듣게 했다. 설법이 모두 끝난 뒤, 스님은 신하들을 둘러보며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도록 했다. 설법이 아주 훌륭했던 모양인지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았다. 좌중을 가만히 둘러보던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어떤 질문이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소승이 대답할 수 없는 것이라면, 부처님께 물어서라도 알려드릴 테니 기탄없이 질문을 하십시오.” 농담까지 해가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했지만, 제후의 신하들 가운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스님은 이쯤에서 끝내야겠다 싶어 가사장삼의 앞섶을 여미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합장을 했다. 바로 그때 이마가 좁고 하관이 빠른, 인상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은 자신을 비독이라고 소개한 뒤,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하고 말했다. 스님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고, 비독이 “세상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스님은 그런 건 없다고 대답했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모든 것이 쓸모를 가진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비독이 물었다. “사람을 죽이는 독도 쓸모가 있습니까?” 이번에도 스님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비독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용도라고는 오직 사람을 죽이는 것뿐인데도 쓸모가 있다는 얘깁니까?”하고 의아한 듯 물었다. 비독의 질문에 스님은 예의 빙그레 웃는 얼굴로 “그래서 쓸모가 있는 겁니다,”하고 말했다. 승려의 말이 떨어지자, 궁성 안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이 의아함으로 가득 찼다. 표정의 변화가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시종일관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제후뿐이었다.

    비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람을 죽이는 독이 가지고 있는 쓸모는 어떤 것입니까?” 스님은 비독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 독을 맛보지 않기 위해 조심하도록 만드는 것이지요.” 그렇게 말한 뒤, 스님은 좌중을 둘러보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미꾸라지들을 두 개의 항아리에 나누어 담아놓고 한쪽 항아리에 가물치 한 마리를 넣어두면 가물치를 넣지 않은 항아리의 미꾸라지들보다 더 오래 산다는 얘기를 들어보았을 겁니다. 가물치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더욱 부지런히 움직이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거울이 많은 집에 사는 사람의 매무새가 더 단정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독(毒)의 용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독은 미꾸라지들이 가득 찬 항아리 안의 가물치이며, 집안 곳곳에 놓인 거울입니다. 독이 쓸모 있음은 그와 같습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만 존재하지 않는다. 올바른 것만, 착한 것만, 본받고 싶은 것만, 훌륭한 것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것들은 매우 드물는지도 모른다. 잘못을 저지르고, 판단을 그르치고, 실수를 범하는 것은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아름다운 세상은 아름다운 것만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라 아름답지 않은 것이 쓰일 수 있는 용도를 찾아내고 그것을 함부로 추방하지 않는 세상이다. 아름다운 것만 아름답다고 여기고 그것에만 매몰된다면 결국 아름다움의 용도조차 잃게 되며, 그런 사회에 실제로 만연한 것은 비난과 징벌과 저주와 폭로 같은 전혀 아름답지 않은 것들이다. 보이는 곳에 두든 보이지 않는 곳에 두든 독은 언제나 독이다. 독을 보이지 않는 곳에 던져버리고는 “이제 독은 없다”고 떠들어대는 세상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