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 특별기획] 3. "장애인 외출은 시선과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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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의 날 특별기획] 3. "장애인 외출은 시선과의 전쟁"

    조아서 MS투데이 기자, 하루종일 휠체어 체험
    버스 휠체어 전용석 고장, 승객들 신기한 듯한 눈길
    곳곳에 높은 턱…휠체어 타고 가지 못하는 곳 많아

    • 입력 2021.04.20 00:01
    • 수정 2021.04.21 17:43
    • 기자명 조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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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사람이 어쩌다. 쯧쯧~"

    당신이 거리를 걷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와 이같은 말을 했다면 어땠을까. 할 말을 잃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4월13일 기자의 휠체어 체험은 그렇게 시작됐다. 4월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비장애인의 휠체어 체험을 시민들과 공유하고 싶어 진행한 체험이었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난 후 바로 후회했다. 그리고 곧 이 후회가 누구에게는 고통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 휠체어 타고 시내버스 탑승 체험

     

    휠체어를 타고 저상버스 슬로프로 오르는 모습. 경사가 낮아보이지만 조아서 기자가 휠체어를 타고 오르기엔 역부족이었다. (사진=박지영 기자)
    휠체어를 타고 저상버스 슬로프로 오르는 모습. 경사가 낮아보이지만 조아서 기자가 휠체어를 타고 오르기엔 역부족이었다. (사진=박지영 기자)

    춘천역 앞 버스정류장. 11번 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왔다. 두 손으로 휠체어 바퀴 옆에 달린 손잡이를 힘껏 움켜쥐었다. 버스를 기다리던 많은 이들이 순식간에 앞문을 통해 버스에 올랐다. 덩달아 마음이 급해져 버스 뒷문에서 내려온 슬로프(철제 발판)로 빠르게 올라탔다. 조급한 마음과 달리 낮은 경사에도 휠체어는 움직이지 않았다. 겨우 바퀴만 걸친 채 슬로프에서 옴짝달싹 못 하고 갇혀버렸다. 버스 안 승객들이 기자를 모두 쳐다보고 있었다.

    포기하려는 찰나 버스에 탔던 이들 중 한 명이 내리더니 휠체어를 밀어줬다. 덕분에 버스를 타는 데는 성공했지만 기자 때문에 시간이 지체된 것 같아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말했다. 무의식적으로 입 밖으로 튀어나간 말에 멈칫했다. 전혀 죄송할 일이 아닌데. 언젠가 휠체어를 타고 버스에 오를 누군가에게 더 죄송했다. 오늘 하루, 쉽게 죄송하다고 말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탑승한 춘천 시내버스에는 휠체어 이용자들을 위해 안전벨트가 부착돼 있었지만 작동하지 않은 탓에 조아서 기자가 앞 좌석을 붙잡고 이동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안전을 우려한 한 승객이 뒤에서 휠체어를 잡아주고 있다.  (사진=박지영 기자)
    탑승한 춘천 시내버스에는 휠체어 이용자들을 위해 안전벨트가 부착돼 있었지만 작동하지 않은 탓에 조아서 기자가 앞 좌석을 붙잡고 이동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안전을 우려한 한 승객이 뒤에서 휠체어를 잡아주고 있다.  (사진=박지영 기자)

    버스에 타고서도 계속되는 시선이 불편해 빨리 정면을 보고 앉고 싶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어려웠다. 바퀴를 결박하는 안전벨트가 작동하지 않아 휠체어를 옆으로 틀어 좌석에서 홀로 빼꼼 튀어나와 있어야 했다. 민망했지만 그 기분마저 사치였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휠체어가 뒤로 미끄러졌다. 안전띠라도 매야지 싶어 다급히 뒤로 손을 뻗었다. 벨트가 당겨지지 않아 확인해보니 벨트가 꼬여 사용할 수 없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버스를 타는 내내 두 손으로 앞 좌석을 붙잡고 있었다. 

    위태로워 보였는지 목적지인 명동까지 휠체어를 잡아주던 승객이 말했다. “버스에서 휠체어 탄 사람 처음 봐요.”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춘천시에 저상버스가 도입된 지 15년이 지났다. 2006년 저상버스 2대를 시작으로 현재 시내버스 104대 중 97대가 저상버스다. 하지만 현장에선 이러한 숫자는 의미 없는 듯 했다. 97대의 버스 중 휠체어 전용 좌석이 고장 난 버스를 탄 게 우연이라 할지라도.

     

    내릴 땐 경사가 더욱 가파르게 느껴졌다. 뒤에서 잡아주지 않으면 미끌어질 듯 위험하다. (사진=박지영 기자)
    내릴 땐 경사가 더욱 가파르게 느껴졌다. 뒤에서 잡아주지 않으면 미끌어질 듯 위험하다. (사진=박지영 기자)

    탈 때와 마찬가지로 내릴 때도 버스기사는 운전석을 비워야 했다. 버튼을 눌러도 슬로프가 올라가지 않아 수동으로 힘을 들여 넣어야 했고 휠체어가 내릴 땐 뒤에서 직접 잡아줘야 했다. 한 버스에 휠체어를 탄 사람이 2명, 3명이면 기사 혼자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그런데 쓸데없는 의문이었다. 버스에 휠체어 좌석은 단 한 개뿐이기 때문이다. 

    ⬛ 춘천 명동에서 쇼핑하기

    명동에 도착하니 카페, 식당, 옷 가게 등 가게들이 즐비했다. 이동할 때마다 달달 거리는 보도블록에서 벗어나 카페에서 잠시 쉬고 싶었다. 카페에 가는 내내 보도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휠체어가 도로를 향해 멋대로 움직였다. 또 울퉁불퉁 높낮이가 다른 블록 때문에 바퀴가 헛돌기 일쑤였다. 간혹 보도 중간에 설치된 버스정류장 의자 때문에 양쪽으로 갈린 길은 너무 좁아 난감하기도 했다.

     

    높은 턱 때문에 카페에 들어갈 수 없다. 바로 옆 카페 역시 마찬가지다. (사진=박지영 기자)
    높은 턱 때문에 카페에 들어갈 수 없다. 바로 옆 카페 역시 마찬가지다. (사진=박지영 기자)

    그렇게 커피 한잔이 간절해질 때쯤 카페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문 앞에서야 들어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카페 앞에 턱이 휠체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때까진 주변에 카페가 많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휠체어를 돌려 다른 카페들을 가보고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가고 싶은 곳’보단 ‘갈 수 있는 곳’을 택해야 한다는 걸. 그마저도 ‘갈 수 있는 곳’보다 ‘갈 수 없는 곳’이 더 많다는 걸. 적어도 명동 대로변에 있는 접근성 좋은 프랜차이즈 카페 6곳은 휠체어를 거부하고 있었다.

    한잔의 커피를 즐길 여유마저 포기해야 했다.

    ⬛건널목 이용도 쉽지 않은 구조적 문제 '겹겹'

    보도 진입로 경사가 높아 아무리 힘을 줘도 휠체어가 움직이지 않았다. 차로로 흘러내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 (사진=박지영 기자)
    보도 진입로 경사가 높아 아무리 힘을 줘도 휠체어가 움직이지 않았다. 차로로 흘러내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 (사진=박지영 기자)

    이날 기자는 건널목을 건널 때마다 긴장했다. ‘이번엔 시간 안에 건널 수 있을까?’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자마자 바퀴를 굴려도 건너편에 도착하기 전에 신호가 바뀌었다. 급하게 보도로 진입하려 했지만 경사가 너무 높아 안간힘을 써도 올라가지 못했다. 바로 뒤엔 차가 씽씽 달리니 진땀이 났다. 혼자 씨름하길 몇 분째, 어디선가 설전이 벌어졌다.

    A: “그래도 도와줘야 할 것 같은데…. 혼자 절대 못 올라와”
    B: “아니야, 이렇게 연습을 해야 앞으로 혼자 다니지”

    그러나 둘 중 누구도 휠체어 탄 사람이 혼자 오르기 불가능한 보도 진입 경사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 듯했다.

    보도의 기울기는 18분의 1 이하여야 한다고 법적으로 고시돼 있다(다만 불가피할 경우 12분의 1까지 완화할 수 있다). 잘 지켜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만약 법을 잘 따른 게 이 상태라면 그건 그거대로 큰 문제다.

    ⬛지하상가를 가다

     

    춘천 지하상가 입구를 5번 지나치고서야 승강기를 발견했다. (사진=박지영 기자)
    춘천 지하상가 입구를 5번 지나치고서야 승강기를 발견했다. (사진=박지영 기자)

    춘천 지하상가를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찾는 동안 5개의 입구를 그냥 지나쳐야 했다. 40여 개 입구 중 승강기는 단 한 대였다. 겨우 찾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할머니 한 명이 말했다.

    “젊은 사람이 어쩌다…. 쯧쯧”

    기자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보행 약자였다. 이날 기자는 휠체어가 아닌 시선과 싸워야 했다. 휠체어를 타고 거리를 나서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시선이 따라붙었다. 각기 다른 생각과 행동으로 발현됐지만, 그 시선에 휠체어를 낯설어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장애인 전용 승강기지만 노인, 임산부 등 교통약자들도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다. (사진=박지영 기자)
    장애인 전용 승강기지만 노인, 임산부 등 교통약자들도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다. (사진=박지영 기자)

    흔히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도 눈에 자주 보이지 않으면 애정이 식고, 생각을 미루고, 그렇게 서서히 멀어지고 결국 남이 된다. 그렇게 장애인은 타자화됐다.

    휠체어를 탄다는 건 단순히 휠체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과 남이 되는 일이자, 매 순간 ‘낯설다’ 말하는 시선과 싸우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장애인의 외출은 그 자체로 시선과의 투쟁이다.

    낯설고 불편한 시선을 없애는 건 어렵지 않다. 눈앞에 계속 보이면 된다. 그래서 먼저 높은 턱을 없애고 경사를 낮추고 점자블록을 깔아 장애인이 길 위에 존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애인 보행권·교통권 보장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그들의 걸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의 일상에 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필수 조건이자 첫 시작이기 때문이다. 차이를 이해하고 차별을 깨는 빠르고 쉬운 해답이 바로 길 위에 있다.

     

    [조아서 기자 chocchoc@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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