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마음풍경] 어린 날에 모았던 동전
  • 스크롤 이동 상태바

    [이순원의 마음풍경] 어린 날에 모았던 동전

    • 입력 2021.04.18 00:00
    • 수정 2021.04.19 06:51
    • 기자명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늙은 거지가 은전 한 닢을 손에 들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그것을 공중에 던졌다가 받기를 반복한다. 혹시 이것이 못 쓰는 돈은 아닌지 두 군데 전장(은행)에 들러 정말 쓸 수 있는지, 은으로 만든 돈이 맞는지 묻는다. 사람들은 어디서 훔쳤느냐고 호통친다. 거지는 아니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훔친 것도 길에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저 같은 놈에게 은화를 줍니까. 동전 한 닢 주시는 분도 백에 한 분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한 푼 한 푼 얻은 돈으로 몇 닢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은 돈 마흔여덟 닢을 각전 닢과 바꾸었습니다. 이러기를 여섯 번 하여 겨우 이 은화 한 푼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가진다 해도 쓰지도 못할 거,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모았느냐고 묻자 늙은 거지는 뺨에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대답한다. “이 돈, 한 개가 가지고 싶었습니다.”

    피천득 선생의 수필 ‘은전 한 닢’ 속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무얼 가지고 싶다는 것은 욕심이다. 그러나 욕심에도 이토록 슬프도록 아름다운 순수가 있다. 이 이야기를 읽은 건 어른이 되어서이지만, 나도 한때 단지 갖고만 싶어서 저렇게 동전 몇 닢을 모은 적이 있었다.

    그 일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피천득 선생의 ‘은전 한 닢’을 다시 읽어서가 아니라 그날 김유정문학촌에서 생가 마당에 떨어져 있는 10원짜리 동전을 주워 들고서였다. 오래 땅 위에 떨어져 있는 동안 검게 때가 타서 10원짜리 동전임을 알리는 10이라는 숫자조차 읽을 수가 없었다. 오물을 닦아내자 10이라는 숫자도 보이고, 다보탑도 보이고, 아주 작은 글씨로 그것을 발행한 연도를 적은 1997이라는 숫자도 보였다.

    지금 이 동전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어쩌다 마트 같은 곳에서 거스름돈으로 받기는 해도 그걸로 무얼 살 수 있는 물건이 없다. 일상생활에 도무지 쓰임새가 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돈을 주운 다음에도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하고 오히려 난감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어릴 때는 우리에게 10원이면 참 큰돈이었다. 10원짜리 종이돈도 있었다. 10원짜리 종이돈엔 첨성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거 하나면 공책과 연필도 사고 그래도 돈이 남아 눈깔사탕도 한 주먹 살 수 있었다. 그런 종이돈 대신 10원짜리 동전이 처음 나온 것이 1966년,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었다.

    다음해 5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10원짜리 동전 다섯 개를 모을 수 있었다. 지난해 운동회와 가을소풍, 그리고 설날에 받은 세뱃돈을 쓰지 않고 모은 것이었다. 1원 2원 모아서 10원짜리로 바꾼 게 아니라 그냥 10원씩 받아서 모았다. 새해가 되어 학기초와 봄소풍 때 두 개 더 모아 일곱 개를 만들었다. 그 돈을 내가 직접 빚어 만든 찰흙 저금통에 넣었다.

    저금통을 흔들어 보면 늘 뿌듯한 마음이었다. 그걸 모아 무얼 하겠다는 생각도 없이 저금통 안에서 흔들리는 동전 소리가 좋았다. 서툰 재주로 저금통을 만든 것도 그걸 넣어두기 위해서였다. 동전과 마른 찰흙이 부딪쳐 그냥 투덕투덕 소리가 났지만 어쩌다 동전끼리 부딪쳐 쨍그랑 하는 쇳소리가 들릴 때가 있었다. 그러면 동전 두 닢이 내 눈앞에서 부딪친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그걸 형제들에게도 흔들어 보이고, 동네 친구들에게도 흔들어보였다. 그냥 그뿐이었다. 동네에 가게도 없는 산골 마을이어서 그걸로 무얼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책상 서랍에 넣어둔 것이면 한 닢 집어갈 수 있지만 저금통 안에 든 것이라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통째로 들고 가거나 깨뜨려야 하는데 시내 중학교에 다니는 형도 저금통을 깨뜨려 꺼낼 만큼 욕심을 내지 않았다. 나중에 그걸로 무얼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없다. 어린 시절 나는 그냥 그것이 내 것이어서 좋았다. 

    그러다 어른이 되어 피천득 선생의 ‘은전 한 닢’을 읽었을 때 그 동전을 떠올리고, 이번엔 다시 반대로 주운 10원짜리 동전으로 엣기억과 함께 피천득 선생의 수필을 떠올린 것이다. 주운 10원짜리 동전은 문학촌 촌장실 책상 서랍에 가만히 넣어두었다.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