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의 연예쉼터] 사극 ‘조선구마사’의 폐지가 남긴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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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기의 연예쉼터] 사극 ‘조선구마사’의 폐지가 남긴 교훈

    • 입력 2021.04.07 08:27
    • 수정 2021.04.08 11:23
    • 기자명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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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SBS 월화드라마인 ‘조선구마사’가 지난 3월초 1회가 방송되자 마자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으며 ‘심각한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그러다 불과 2회가 방송된 시점에 취소가 되어버린 사태가 발생했다. 방송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조선구마사’는 인간의 욕망을 이용해 조선을 집어삼키려는 악령과 백성을 지키기 위해 맞서는 인간들의 혈투를 그린 ‘엑소시즘 판타지 사극’이다.

    폐지 발표와 동시에 출연배우들과 PD, 작가는 잇따라 SNS에 사과문을 올렸다. 왜 이런 사태까지 가게됐는지를 돌아보고,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사극은 크게 정통(대하)사극과 퓨전사극으로 나누어진다. 정통사극은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사실 그대로를 재현하면서 긴 흐름으로 풀어가는 사극이다. 퓨전사극은 역사에 허구를 가미하는 사극이다. 판타지 사극인 ‘조선구마사’는 후자에 속한다.

    아무리 판타지 사극이라 해도 실존 인물들을 내세워 그려가는 만큼 세심하게 제작해야 한다. 판타지 사극이 작가의 상상력을 허용하지만, 그 상상력은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실존인물로 이야기를 꾸려가는 것이어서 실제 역사는 물론이고 개연성과 국민정서에도 바탕을 둬야 한다. 

    여기서 작가의 상상력은 몽상이라기보다는 유추나, 추리에 가깝다. ‘조선구마사’에 생시(일종의 좀비)가 등장한다 해도 태종(이방원) 시절을 다루고 있는 만큼 실제 역사의 인과관계나 고증에서 오류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조선구마사’는 상상력을 발휘한다는 미명 아래 결과적으로 많은 오류가 드러났다.

    악귀를 쫓기 위해 부른 교황청 구마사제와 통역관에게 충녕대군(장동윤)이 음식을 대접하면서 옆에 서있는 모습이나 월병, 오리알, 중국식 만두 등 중국음식과 중국풍 미술이 소품으로 등장한 것 모두 생활사의 고증이 잘못된 사례다. 

     

    무녀들이 입은 의상도 중국풍이며, 드라마 OST는 중국 전통 현악기인 고쟁으로 연주하는 음악이었다. 이쯤 되면 ‘조선구마사’인지, ‘중국구마사’인지 헷갈린다.

    제작진은 ‘의주 근방(명나라 국경)’으로 장소를 설정하고 그렇게 했다고 해명했지만, 아무 생각 없이 상상력을 발휘한 결과가 혹독한 댓가를 치르게 했다. 협찬사나 광고주들이 줄줄이 빠져나가버려 제작을 이어나갈 수 없게 됐다.

    태종(감우성)이 아버지 이성계의 환영을 본 후 광기에 빠져 잔인하게 백성들을 학살한다는 것도 거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전주 이씨 종친회는 ‘조선구마사’의 역사 왜곡에 대해 공식 반발하기도 했다.

    물론 ‘형제의 난’을 일으킨 태종이 이성계를 밀어냈던 죄책감과 공포까지 섞여 환영을 보면서 생시를 죽이게 되는 흐름으로 이어지게 한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외국 시청자중에는 “조선을 개국한, 초기 왕이란 자가 이렇게 포악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실존 인물이 나오는 사극을 더욱 세심하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조선구마사’의 박계옥 작가는 전작인 ‘철인왕후’에서도 철종과 조대비(신정왕후), 순원왕후를 희화화하고 “조선왕조실록은 한낱 지라시”라는 대사로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여기서 주연을 맡았던 신혜선에게도 그 불똥이 떨어졌다. 그런데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더 큰 논란을 야기했다. 시청률이 잘 나오니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게 가혹한 결과를 초래하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태종의 장남인 양녕을 연기한 박성훈은 제작발표회에서 “실존인물을 다루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을 기반으로 한 판타지 액션물이기 때문에 부담감은 잠시 내려놓고 자유로운 상상의 범위 안에서 그리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 애매모호한 말은 배우들의 심정을 잘 대변해준다. 적어도 ‘자유로운 상상의 범위’라는 점에 대해 배우들과 제작진이 역사학자의 강의 한번쯤은 듣고 시작한 건지 묻고싶다. 혹시 320억이라는 제작비만 마련되면 기획과 구성, 내용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중국의 동북, 서북, 서남공정의 골자는 현재 중국 국경내에 있는 것은 모두 자국의 역사와 문화로 편입시키는 것이다. 미국 하와이에 본부를 둔 ‘미군 인도태평양 사령부’는 지난 3월 25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후 “북한이 동해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한 사실을 알고 있다”고 발표했지만, 일본 관방부장관의 항의로 미군은 동해 표기를 일본해로 고쳤다.

    제작진도 말했듯이 지금은 매우 예민한 시기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펼치면서, 한복·김치·판소리도 자신의 문화라고 우기고 있다. 

    한국드라마가 지상파, 케이블, OTT로 방송되면 수많은 세계인이 시청한다. 넷플릭스로 방송되면 무려 190개국에 나간다. 중국 상품이 PPL로 들어온다는 자체가 한국드라마의 영향력을 방증한다. 중국의 일부 시청자는 “당시 한국의 모습이 중국풍이었다. 너희 음식문화는 다 우리 것”이라고 말한다.

    미디어 시대에 전파공정은 의외로 잘 먹힌다. 특히 생활사 고증이 잘못되면 금세 드러난다. 여기에 빌미를 제공해서는 안된다. 글로벌 시대, 우리가 무게 중심을 단단히 잡고 콘텐츠로 문화와 가치의 힘을 보여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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