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마음풍경] 이 봄날 권주가를 불러볼까요
  • 스크롤 이동 상태바

    [이순원의 마음풍경] 이 봄날 권주가를 불러볼까요

    • 입력 2021.04.04 00:00
    • 수정 2021.04.05 06:39
    • 기자명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엊그제 전통적인 방법으로 우리 술을 만드는 술 선생님이 제가 근무하는 김유정문학촌을 방문하였습니다. 잠시 들른 그분의 이력도 참 별나고 대단하군요. 법 공부를 하고, 사법시험을 보고, 합격해서 법조생활도 변호사 업무도 하다가 그야말로 유별난 결심 끝에 ‘술공장’을 하기로 마음먹고 그걸 이미 오래 실천하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다녀가신 다음 화창한 봄날 나의 스무 살 적 술 내력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보통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갈 무렵 우리가 술을 배우지요. 학문이거나 운동도 아닌데, 먹는 것을 배운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짜장면을 배운다, 갈비탕을 배운다, 이런 소리는 하지 않지요. 거기에 굳이 배운다고 쓴다면 짜장면이나 갈비탕을 먹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법을 배운다는 뜻이 되겠지요. 먹는 것을 배운다고 하는 것 중에는 술과 담배가 있습니다. 아마 윗사람으로부터 배우는 것이겠지요. 끼리끼리 모여 몰래 배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어디 이 화창한 봄날, 술 얘기를 한 번 해볼까요. 저는 저 혼자 컴퓨터 안에 메모처럼 쓰는 글에 술 얘기를 잘 합니다. 그 메모엔 나의 자잘한 일상 얘기도 하고, 읽은 책 얘기도 하고, 내가 살아온 얘기도 하고, 그러면서 마주친 풍경 얘기도 하고, 가족과 친구 얘기도 합니다. 그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게 술 얘기입니다.

    아주 자세하게는 하지 않지만, 어제는 누구와 마셨다, 또 내일엔 누구와 마신다, 이런 이야기도 하고, 그냥 술에 얽힌 얘기도 합니다. 술 얘기를 하다보면 예전에 가졌던 기분 좋은 술자리 얘기도 하게 되고, 또 오래 기억에 남는 술자리와 그 자리에 모인 사람 얘기도 기록에 남깁니다. 

    이것은 아주 오래된 버릇과도 같은 것인데, 이렇게 혼자 술 얘기를 내 개인 메모에 하다 보니 이따금 별다른 형식없이 ‘이달의 권주가’ 얘기도 합니다. 옛날 풍류객들처럼 직접 권주가를 짓는 실력은 못 되고, 술맛 나는 시 한 편을 그 계절과 연관해서 골라 읊는 정도입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권주가가 4월의 권주가입니다. 남들은 스무 살에 대학에 들어가는데, 그보다 늦게 스물한 살에 대학에 들어가 이제 막 술맛을 알게 되던 시절 이런 저런 신입생 환영회 같은 자리에서 소주 한 잔이거나 막걸리 한 잔과 함께 읊었던 시가 김소월의 <바람과 봄>이었습니다.

    봄에 부는 바람 바람 부는 봄/  작은 가지 흔들리는 부는 봄바람/ 내 가슴 흔들리는 바람 부는 봄/ 봄이라 바람이라 이 내 몸에는/ 꽃이라 술잔이라 하며 우노라. 

    전체를 읊어도 짧은 시인데 그 중에 앞에 세 줄은 빼고 뒤의 두 줄만 읊습니다. 그렇게 읊었던 것은 맨 뒤의 두 줄이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이 있어서입니다. 지금 다시 막걸리 한 잔과 함께 읊어보아도 그렇습니다.

    봄이라 바람이라 이 내 몸에는/ 꽃이라 술잔이라 하며 우노라.
     
    며칠 전 마침 술을 만드시는 분이 다녀가서이기도 하지만, 그분이 다녀가지 않더라도 스물한 살 때부터 지금까지 봄만 되면, 특히나 사월만 되면 술을 앞에 놓지 않고도 책상에 앉아 글을 쓰다가도 문득 옛 시절을 떠올리듯 이 구절만 읊습니다. 

    예전에는 혼자 마시는 술을 ‘독작’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혼자 마시는 술을 ‘혼술’이라고 하더군요. 혼자 마시는 술의 대가는 중국의 시선 이태백이지요. 오죽하면 달 아래 혼자 마시는 월하독작 시를 썼겠습니까? 그 경지까지는 아니지만 춘천 숙소에서 막걸리 한 병 잔에 따라 혼자 마시며 읊는 ‘봄이라 바람이라 이 내 몸에는/ 꽃이라 술잔이라 하며 우노라.’도 꽤 낭만이 있고 운치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천하의 주당 같고 술꾼 같은데 절대 그렇지는 않습니다. 누구나 새 봄이 되면 떠오르는 책이 있고, 시가 있고, 거기에 낭만을 더해 막걸리거나 소주 한 잔 겸해 읊을 시가 있다면 그 또한 아름다운 봄날이라는 거지요. 술잔 위에 벚꽃 한 잎 띄우고 말입니다. 제 말씀은 이토록 아름다운 봄날, 그냥 흘러 보내시지 마시고, 아름다운 추억 많이많이 만드시라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