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뒤적뒤적] 내 입맛은 조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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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의 뒤적뒤적] 내 입맛은 조종되고 있다

    • 입력 2021.04.05 00:00
    • 수정 2021.05.14 09:25
    • 기자명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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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합격 사과’라고 들어봤는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의성, 군위 등 경북 지역의 사과가 ‘합격사과’라 해서 입시철 특수상품으로 판매된다는데 이게 일본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1991년 일본 아오모리현에는 초속 50미터가 넘는 태풍이 들이닥쳐 수확을 앞두고 있던 사과 재배 농가에 큰 타격을 주었답니다. 채 익지도 않은 사과 대부분이 땅바닥에 떨어졌고 그나마 나무에 간신히 걸려 있는 사과들도 맛이 형편없었기에 사과 농가들은 절망했답니다.

    이때 역발상의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강력한 바람에도 ‘떨어지지 않은’ 사과에 모진 입시경쟁에서 살아남으라는 염원이 담긴 것으로 의미를 부여한 거죠. 우리나라 못지않게 명문대 입학에 목을 맬 정도로 일본의 입시전쟁은 치열하기에 소비자들은 이 ‘합격 사과’를 최대 열 배 값으로 구매하기 시작했답니다. 덕분에 아오모리현 농가들은 태풍 피해를 극복하고 예년과 비슷한 수익을 올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사과는 엿이나 찹쌀떡 같은 종전의 ‘합격상품’과 달리 차지거나 끈기가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오모리현 농부들은 스토리텔링을 가미해 먹을거리로 실패한 사과를 합격상품으로 변신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건 『푸드 초이스』(최홍규 지음, 지식의 날개)란 책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우리말로는 ‘먹거리 선택’-책 제목을 왜 영어를 썼는지 궁금하긴 합니다-이라 할 책의 부제는 ‘이 음식, 정말 내가 고른 걸까’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음식문화에 관한 책이 아닙니다. 음식을 소재로 했지만 식도락이나 맛집 소개, 요리법 등이 아니라 우리가 먹는 음식이 ‘입맛대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결정’에 따른 것이란 사실을 보여주는 ‘커뮤니케이션’ 책입니다.

    미디어학 박사인 지은이는 우리의 ‘입맛’이 유명인, 스토리텔링, 캐릭터의 포장지, 신화, 시간·장소·상황, 빅데이터 등 6가지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흥미로운 사례들을 곁들여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2007년 10대 히트상품’에 선정되어 지금도 잘 나가는 옥수수수염차는 유명인의 영향력을 입증하는 예입니다. 2006년 선보인 옥수수수염차는 가수 보아, 배우 김태희와 현빈 등 유명 연예인이 등장해 ‘부기 없는 얼굴, V라인 얼굴을 위해서’란 카피를 읊어 선풍적 인기를 모았습니다. 웰빙 바람에 힘입어 ‘V라인 음료’란 이미지를 굳힌 옥수수수염차는 2007년 전체 차 음료 시장의 37%나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답니다. 옥수수를 먹기 위해 뜯어내야 했던 옥수수수염을 주원료로 한 옥수수수염차의 화려한 변신이었죠. 

    이것이 유명인의 파워를 보여주는 일화라면 마케팅의 작품도 나옵니다. 1920년대 코카콜라는 청량음료인 탓에 겨울철이면 판매량이 떨어져 고민이었답니다. 게다가 어린 소비자들도 큰 호응을 보이지 않았고요. 그런데 1931년 헤이든 선드블롬이란 아티스트가 이런 판세를 단번에 바꿉니다. 겨울철과 어린이를 관통하는 산타클로스를 이용해서요. 선물을 전달하러 온 산타클로스가 벽난로 위에 놓인 코카콜라와 감사 편지를 발견하고 흐뭇한 웃음을 짓는 장면을 연출했던 거죠. 하얀 눈밭에서 돋보이는 붉은색 코트를 입은 산타는 그 후 코카콜라사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답니다. 

    이런 사례들은 누군가의 의도적 ‘작품’이지만 그렇지 않고도 우리 입맛이 춤추는 상황은 수두룩합니다. 1990년 미국의 한 대형마트는 기저귀가 많이 팔리면 맥주도 덩달아 많이 팔리는 현상을 발견했답니다. 주말에 육아 부담을 안게 된 아빠들이 기저귀를 사러 와서는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맥주를 샀던 거죠. 미국에서는 마트가 멀어 한꺼번에 많은 물품을 사므로 주로 남성이 마트에 가기에 이런 현상이 벌어진 건데 그 마트는 기저귀 매대 가까이에 맥주 진열대를 설치해 꽤 재미를 보았답니다.

    이 책이 말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먹고 싶은 것을, 혹은 먹어야 할 것을 먹지 못할 수 있다는 거죠. 사람은 살기 위해 꾸준히 음식을 섭취해야 하는데 이때 자기 의지대로 선택한다고 믿는 것은 착각에 가깝답니다.

    그러니 ‘입맛대로’란 말을 쓸 때 조심해야 할 듯합니다. ‘내키는 대로’ 혹은 순수한 자유를 뜻하는 게 아니라 ‘조종받은 대로’란 뜻이 섞여들었으니 말입니다. 더불어 입에 음식을 넣기 전에 과연 이게 내 선택인지 신중히 생각해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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