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빈센조의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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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빈센조의 블랙리스트

    • 입력 2021.04.01 00:00
    • 수정 2021.04.03 07:49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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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현순 시인
    최현순 시인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 ‘빈센조’에서 마피아 고문변호사로 분한 송중기의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초반부터 마피아 본고장인 이탈리아 현지 로케이션의 파격적인 액션장면은 압권이다. 우리 현실과 다소 거리가 있는 마피아식 응징에는 과장도 있지만 비록 환상이라도 요즘 같은 팬데믹의 욕구불만을 잠시나마 해소하는 데에는 그만이다. 근데 드라마에 몰입하다가 파트너 변호사인 전여빈의 대사 한마디가 기억에 남는 것은 왜일까? “정의 같은 건 몰라요, 나는 그냥 화가 나서 싸우는 것뿐이에요” 국내 대형로펌의 달콤한 열매에 취해있던 그녀가 악당과 맞서는 반전의 순간이다. 그렇다. 정의고 명분이고 지금 내가 그 무엇에 분노하고 참을 수 없는 무언가가 끓어오른다면 싸우는 것이다. 

    실체가 모호한 정의나 신념이란 명분으로 갈라서는 소모적 싸움이 그치질 않는다. 진정한 자유와 정의는 무엇이고 누구를 위하는 것일까? 그간 간과하기 쉬웠던 민주주의에서 절차가 왜 중요한가, 하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한 그 안에는 얼마나 많은 공정이란 절차를 무시한 독버섯이 우리의 기회를 박탈하는가? 대부분의 성숙한 국민들은 학습효과라는 것에 대하여 기대와 믿음이 있다. 선의로 표방한 열매를 내 닭 모이 주듯이 하다가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았다. 교훈이 그렇기에 살아있는 권력에서는 '설마 또?' 하는 의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과거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밝혀지기 전까지 순진한 문화예술인들은 대부분 각자의 창작에만 전념하고 있지 않았던가.   

    근래에 들어 문화예술인들을 불안케 하는 그림자가 기시감처럼 드리우고 있다. 우리가 경계하는 것은 어디서 본 듯한 가면들이 슬그머니 우리 곁에 와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한 정부의 공식적인 블랙리스트도 있다.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생존을 침해하는 범죄적 요주의 인물들에 대한 합법적 문서다. 하지만 인간의 가장 기본권인 자유와 표현을 일삼는 문화예술인들의 정당한 창작행위에 대한 정권 편향적 권리 침해는 있을 수 없다. 기존 정부와 차별화된 가치와 지향성을 실현하기 위한 권장으로는 긍정적 인센티브로 나가야 한다. 그간의 편중된 정책으로 가난하고 소외받은 문화예술인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한 맞춤형 복지와 창작지원 폭을 늘리면 된다. 가난한 예술인들에게는 복지정책을 문화예술 창작품은 귀족화를 추구해야 한다.  

    지금 과거와 같은 뻔히 밝혀질 문서화된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있다고는 않겠다. 외려 문화예술인들이 더욱 두려워하는 것은 몇몇 시대착오적 권력자들의 머릿속에 있는 교묘하게 진화된 그들만의 블랙리스트다. 그동안 소외받은 문화예술인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더욱 지원을 늘려주는 것은 옳다. 그러나 기존의 전통을 보존하며 순수 창작에 매진하는 자율적 문화예술인(단체)들을 부도덕하게 폄하하거나 매도하려는 의도가 있다면 역사에 역행하는 것이다. 최근 지역의 문화예술단체에 명확한 기준이나 예고도 없이 오랜 지원이 끊기어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이 생기고 있다. 과거 중국의 문화혁명에서의 잘못된 교훈을 기억하고 있듯이 혁명적 사고도 그 시대의 민의에 따라 순리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만약 시대를 거스르는 자기 편 챙기기와 길들이기 식의 문화 권력의 남용이 있다면 창조적인 문화예술의 창달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금도 당당하게 꿈을 펼치며 세계로 뻗어나가는 방탄소년단이나 K–드라마의 젊은이들을 보라. 빈센조의 블랙리스트에는 악을 악으로 응징할망정 선을 가장한 악은 없다. 무조건적 강자에 대한 분노표출이나 약자에 대한 보상심리로 무분별한 그들만의 편 가르기 정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정당당하게 눈앞에 닥친 악당과의 선명한 싸움과 끓어오르는 젊음의 열정만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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