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소상공인] 막걸리 명인, '춘천양조장' 강왕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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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동네 소상공인] 막걸리 명인, '춘천양조장' 강왕기 대표

    • 입력 2021.03.13 00:00
    • 수정 2023.09.07 12:31
    • 기자명 배지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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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S투데이는 지역경제의 근간인 소상공인들을 응원하고 이들이 골목상권의 주인공으로 설 수 있도록 연중 캠페인 ‘우리동네 소상공인’을 기획, 보도합니다. <편집자>

    춘천은 타 도시와의 식품산업 경쟁에서 맑은 물과 깨끗한 자연환경, 수도권과의 인접성 등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중에서도 전통주 도시로의 도약을 꿈꾸며 지난해 ‘춘천술 심포지엄’, ‘대한민국 명주 대상’ 등을 개최해 해당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이와 함께 춘천의 막걸리명인으로서 전통주 산업에 기여하고 있는 이가 있어 눈길을 끈다.

    석사동의 도시적인 거리에서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예스럽고 고즈넉한 분위기의 양조장을 마주할 수 있다. 1968년 9개 주조장을 통합해 합동주조장으로 오픈한 춘천양조장은 아직까지도 전통방식을 고수한다. 이곳에서는 밀로 빚어 만든 ‘춘천생막걸리’, 쌀로 빚어 만든 ‘춘천왕수생막걸리’, 국내산 쌀로 빚어 만든 프리미엄 라인의 ‘춘천수제막걸리’ 세 가지의 술을 빚고 있다. 양조장 안으로 들어서자 강왕기 대표(62)와 그의 아내 권인숙 전무가 환한 표정으로 맞이했다. 자신만의 철학을 넣어 막걸리를 빚는 강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통막걸리명인으로 선정된 ‘춘천양조장’ 강왕기 대표. (사진=배지인 기자)
    전통막걸리명인으로 선정된 ‘춘천양조장’ 강왕기 대표. (사진=배지인 기자)

    과거, 서울에서 유통업을 하던 강 대표는 삶과 인생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 돈보다 중요한 건 무엇일까?’, ‘나이가 들어서도 사람과 함께 어울리며 살아갈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강 대표가 찾은 답은 막걸리였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쭉 함께해왔다는 스토리에 매료된 것이다.

    전국의 양조장을 찾아다니다 춘천으로 오게 됐을 때 처음 강 대표가 마주한 것은 무너져 가는 상태의 양조장이었다. 처음 상태를 나무에 빗대어 “몸통은 살아있지만, 잔뿌리가 죽어있는 나무 같았다”고 회상한 강 대표는 “작은 부분부터 차근차근 살리다 보면 언젠가 좋은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현재는 직원 세 명과 강왕기·권인숙 부부가 함께 ‘황금 열매’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술을 빚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강 대표는 마음이라고 답했다. “정석대로 만든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올바르지 않으면 술이 잘 안 된다”고 말한 그는, 추운 겨울 한 달간 발효실에서 자며 미생물들이 어떤 시간, 어떤 환경에서 활동하는지 관찰했다고 한다. 강 대표는 “미생물과 우리는 친구 관계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우리 전통 술을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되며, 친구와 대화를 한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강왕기 대표가 누룩을 만들기 위해 밥의 온도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배지인 기자)
    강왕기 대표가 누룩을 만들기 위해 밥의 온도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배지인 기자)
    강왕기 대표와 춘천양조장 직원이 쪄진 밀을 식히고 있다. (사진=배지인 기자)
    강왕기 대표와 춘천양조장 직원이 쪄진 밀을 식히고 있다. (사진=배지인 기자)

    강 대표의 정직하고 순수한 마음에는 어머니의 영향도 있었다. 강 대표가 어릴 적 어머니는 집에서 술을 빚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오전에 쌀을 씻고 해가 저물 때쯤 고두밥을 퍼 평상에 널어놨다가 밤 열한 시, 열두 시쯤 깨끗한 마음으로 막걸리를 담그셨다”며 “동네 주민들이 우리 집 술이 최고라며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양조장에서 막걸리와 함께하며 자신만의 철학을 배워나가던 강 대표는 지난해 한국무형문화유산 전통막걸리명인으로 선정됐다. 강 대표는 막걸리를 예술이라고 표현했다. 죽어있는 예술도 있는 반면, 술은 살아있는 예술이라는 의미다. 강 대표는 “일류 선생이 있어도 배운 것을 그대로 따라만 하면 작품이 안된다”며 “기초적인 걸 배운 후에는 자기의 혼이 들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직한 혼을 넣은 막걸리로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그의 신조는 명인으로 인정받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에게도 어려움이 닥쳤다. 소주, 맥주의 인기로 막걸리를 찾는 사람들이 줄어든데다 코로나19로 나들이객이 줄자 매출도 떨어진 것이다. 춘천 지역 브랜드로서의 애로점도 있다. “춘천에 놀러 온 다른 지역 시민들이 마트에서도 춘천 막걸리를 쉽게 구할 수 없다고 하더라”며 “지역 막걸리가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지역주민들도 많은 관심과 사랑을 가져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완성된 춘천생막걸리가 포장되고 있다. (사진=배지인 기자)
    완성된 춘천생막걸리가 포장되고 있다. (사진=배지인 기자)

    강 대표에게 향후 목표를 묻자 “춘천이라는 브랜드를 갖고 세상에 제일 좋은 제품을 알리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춘천이라는 지역과, 춘천 막걸리와, 내 이름 석 자를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서 전통 수제 막걸리 명인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강 대표는 처음 양조장을 인수했을 때 돈이 없어 하루 한 끼는 밥을, 두 끼는 건빵을 먹으며 1, 2년을 지냈다. 그럼에도 “돈보다 행복이 중요하고, 그래서 현재가 행복하다”는 강 대표. 그의 말에 옆에서 듣던 아내 권 전무는 “돈도 필요하다”고 웃으며 나무랐다. 그래도 권 전무는 여러 가지 철학을 가진 강 대표를 가리켜 ”사업을 할 때 철학이 있는 것이 참 중요하다”며 거들었다. 마음과 철학으로 술을 빚어나가는 그들에게서 참된 명인의 면모가 엿보였다.

    [배지인 기자 bji0172@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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