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사용설명서] 기억력 떨어진다면 ‘멍 때리기’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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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몸 사용설명서] 기억력 떨어진다면 ‘멍 때리기’ 해보세요

    • 입력 2021.03.05 00:00
    • 수정 2021.03.06 06:06
    • 기자명 고종관 보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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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관 전 중앙일보의학전문기자·보건학박사
    고종관 전 중앙일보의학전문기자·보건학박사

    ‘멍 때리기 대회’를 기억하시는지요.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무산됐지만 2014년부터 매년 개최돼 참가자뿐 아니라 보는 이들에게도 웃음을 선사했지요.
      
    ‘아무 생각없이 멍하니 있는 멍 때리기’는 나름 ‘효과적인 휴식’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스트레스에 지친 뇌를 잠시 방전(?)시킴으로써 재충전의 기회를 준다는 것이죠.

    사실 기발한 아이디어는 골똘히 고민할 때보다 아무 생각없이 행동할 때 불현듯 떠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뇌는 참 알다가도 모를 신비한 영역인 게 맞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자꾸 떨어진다고 호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늘 쓰던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거나, 방금 내 손에 있던 물건을 어디 놓았는지 찾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매일 엄청난 양의 뇌신경세포(뉴런)가 파괴된다니 걱정도 됩니다. 하지만 뇌 전문가들은 1400~1600g 정도인 사람의 뇌에는 약 1000억개의 뇌신경세포가 존재하니 하루에 10만개 정도 사라진다고 해도 기억력에는 별반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고 해요.

    그런데 왜 우리는 기억을 반추하는 반응이 떨어졌다거나, 생각하는 힘이 예년만 못하다고 느낄까요.

    정보는 뇌의 해마라는 조직을 통해 들어와 대뇌피질에 보관됩니다. 해마가 키보드라면 대뇌피질은 하드디스크라고 할 수 있지요. 문제는 우리가 깨어있는 동안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접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해마에선 정보가치의 경중을 따져 버릴 것과 저장할 것을 가려냅니다. 중요하다고 판단되면 저장을, 그렇지 않으면 잠시 보관했다가 버리는 것이지요. 장기기억과 단기기억으로 말이지요.

    참고로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겼다’고 하는 것은 해마가 마취돼 아예 단기기억조차 하지 못한 상태를 말합니다. 또 치매 환자는 해마가 망가져 새로운 정보가 입력이 안 되고 이로 인해 방금 한 행동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정보는 저장하는 것보다 꺼내 쓰는 과정이 더 중요하겠지요. 필요할 때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양을 저장해 놓아도 무용지물일 테니까요.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선 뇌신경세포끼리 연결하는 ‘축삭돌기’라는 긴 가지가 필요합니다. 신경세포를 연결해 필요한 정보를 꺼내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마치 물류창고에서 물건을 찾아내 주인에게 배송해주는 시스템 같은 거죠. 그리고 이를 이어주는 열쇠가 바로 시냅스입니다. 뇌에는 이 시냅스가 무려 1000조나 있다고 하니 사실 뇌세포보다 시냅스의 역할에 따라 우리의 기억력이 좌우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신경가지와 시냅스는 노력하면 키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근육을 단련하면 볼륨이 커지듯 말입니다. 특정 분야 종사자의 뇌 부피가 줄지 않고 오히려 커진다는 사실은 이미 의학적으로 밝혀진 바입니다. 또 젊은 쥐의 집단에 방사한 늙은 쥐의 뇌 무게를 쟀더니 10%쯤 늘었다는 연구결과도 바로 이런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그렇다면 기억력을 유지 또는 증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뇌를 자극하는 것입니다. 나이 들어서도 정신활동을 계속하라는 것이지요. 외국어 학습이나 독서·글쓰기도 좋고 퍼즐게임, 음악·미술과 같은 취미생활도 마찬가지 효과를 나타냅니다. 

    둘째는 사물을 익힐 때 모든 감각을 동원해야 합니다. 사진을 보여주며 냄새로 후각을 자극했더니 대뇌피질이 활성화하고 기억도 더 잘되더라는 실험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요리를 배우면 후각과 미각, 시각, 촉각 모두를 자극할 수 있으니 꽤 괜찮은 기억력 증진방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남성들에게 권합니다.

    긍정적인 생각도 기억력 보존에 도움이 됩니다. 노화가 기억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라는 걸 믿는 것 자체가 뇌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군요. 자신감과 호기심, 그리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사람에게 기억력 감퇴는 남의 일입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집중하고 반복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큰 소리로 반복하거나 적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시냅스가 활성화돼 기억력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있습니다. 먼저 뇌의 과부하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아 뇌가 피곤하면 해마가 지쳐 새로운 정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니까요.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한다거나 쉴 틈 없이 일을 해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행동이 ‘멍 때리기’입니다. 이를 입증하는 좋은 연구가 있습니다. 이미 한 세기 전인 1900년 ‘방해받지 않는 휴식’의 놀라운 기억력 향상을 입증한 사람은 독일의 심리학자 게오르크 엘리아스 뮬러와 그의 제자였습니다.

    이들은 실험군을 두 그룹으로 나눠 무의미한 단어를 외우게 했습니다. 다만 한 그룹에겐 학습과정이 끝난 즉시 두 번째 과제를 수행토록 했고 다른 그룹엔 과제 사이에 6분간의 휴식시간을 주었습니다. 결과는 판이했습니다.

    단어 암기 성적이 첫 번째 그룹은 28%에 그친 반면 두 번째 그룹은 50%를 넘어선 겁니다. 이후 수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그룹(뇌졸중 환자 등)에서 비슷한 연구를 했는데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충분한 수면도 중요합니다. 깊은 잠에 빠졌을 때 비로소 뇌세포가 휴식을 취하고 뇌의 독소(유해산소)가 제거된다고 합니다. 7~9시간의 수면시간을 권장하는 이유입니다.

    기억력에 담배는 적신호를, 운동은 청신호를 줍니다. 전자는 뇌에 산소결핍을, 후자는 신선한 혈액을 통해 풍부한 산소를 공급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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