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창수의 딴생각] “소설 쓰고 있네”라는 말이 옳지 않은 네 가지 이유와 세 가지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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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창수의 딴생각] “소설 쓰고 있네”라는 말이 옳지 않은 네 가지 이유와 세 가지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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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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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창수 소설가
하창수 소설가

우선 확신 세 가지부터 얘기하자.
 
(1) 어떤 발언이나 기사가 엉터리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비난하기 위해 “소설 쓰고 있네”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은 무지한, 적어도 문학에 관한 한 엄청나게 무지한 인간이다. 소설에는 ‘엉터리없는 내용’이 아니라 ‘진실보다 더 값진 내용’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엉터리없는 내용’을 강조하려면 “거짓말하지 말라”든가 “가짜뉴스를 퍼뜨려서 무슨 이득을 노리는 거냐”고 얼마든 준엄하게 꾸짖을 수 있다. ‘소설’은 문학을 모르는 무지한 인간이 함부로 들먹여도 될 만큼 하찮지 않다. 

(2) “소설 쓰고 있네”라고 지껄이는 인간에게는 사돈에 팔촌, 이웃집, 몇 다리 건너에도 소설가는 눈 씻고 봐도 없을 것이다. 있었다면 ‘여물통’이 날아갔을 것이다.
 
(3) 함부로 “소설 쓰고 있네”라고 지껄이는 인간은 고딩 때 ‘국포자’였을 게 뻔하다. 국어포기자. 이런 인간은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별할 줄 모르고, 사람이든 커피든 벌레든 가리지 않고 아무데나 존칭어를 쓰면 상대를 높여주는 건줄 안다. 띄어쓰기와 맞춤법은 젬병이라 워드프로그램에 빨간줄 그어주는 기능이 없었다면 문서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했을 것이고, 밤새 읽은 거라고는 무협지 밖에 없으면서 <전쟁과 평화>를 톨스토이가 쓰고 헤밍웨이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 정도 아는 걸로 문학박사급 위세를 떨어댄다. 주위의 인간들이라고 해봐야 거의 그 수준이니 살아가는 데는 지장이 없다.

이제 “소설 쓰고 있네”라는 말이 왜 옳지 않은지, 그 이유들을 살펴보자.

(1) 소설은 소설가가 지어낸 이야기지만 거짓말과 다르다. 거짓말하는 자는 거짓말을 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이 하는 얘기가 거짓말이란 것을 철저히 숨긴다. 그러나 소설가는 자신이 쓴 소설이 ‘사실’이라고 주장할 필요조차 없다. 처음부터 사실을 전제하고 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읽는 사람 또한 소설이 사실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신이 받는 감동에 손상을 입지 않는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픽션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을뿐더러, 숨기는 식의 제스처를 쓸 이유가 없다. 그러니 “소설 쓰고 있네”라는 표현은 상대의 거짓말을 문학적 수준으로 격상시키는 우매한 짓이다.

(2) 소설의 역사를 거슬러 오르면 존재의 의미를 파헤치는 철학적 변론들과 맞닿는다. 흑사병이라는 팬더믹을 피해 회당으로 숨어든 자들의 감추어지지 않는 욕망을 드러낸 <데카메론>이나, 살짝 정신줄을 놓친 사내가 벌이는 우스꽝스러우면서 진지한 해프닝을 그린 <돈키호테>를, 어찌 유치하고 저열한 농간으로 범벅이 된 ‘거짓말’과 견줄 수 있단 말인가. 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가면 소설은 인간의 탄생과 죽음을 주재하는 신화와 연결되는데, 천상과 지상의 천변만화하는 판타지가 어찌 ‘거짓말’이라는 부도덕한 단어로 수렴될 수 있는가. 제우스가 날린 번개에 맞아 죽어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일이다.

(3) 소설가는 소설을 써서 원고료라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받는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자는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숨김으로써 정당하지 못한 대가를 챙긴다. 원고료는 만천하에 공개되어 있고 매우 일정하지만, 거짓말로 챙기는 대가는 공개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액수를 가늠할 수도 없다. 또한 소설가가 정당하게 받은 원고료의 3.3%는 원천징수되어 국고에 쌓이지만, 거짓말로 벌어들인 돈은 국세청의 추적에 걸리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으며 결국 국고 탕진의 결과를 초래한다.

(4) 소설가는 소설을 통해 명성을 얻고, 거짓말쟁이는 거짓말을 통해 악명을 높인다. 이건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소설’이란 말을 함부로 잘못 쓰는 사람들 중에 유난히 국회의원들이 많은데, 국정감사장에 출석한 사람에게 “소설 쓰지 말아요!”라고 소리를 지를 때 제발 이 점을 좀 생각해주길 바란다. 자신은 호통을 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쟁이의 거짓말을 예술적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어이없고 볼썽사납고 우스꽝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제발 소설 좀 읽자! 이제껏 살아오면서 감동적인 소설이 한 편만 있었더라도 차마 할 수 없는 것이 “소설 쓰지 말아요”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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