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 소주‧맥주 마셨는데 술값 85만원? “내가 호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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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의 재구성] 소주‧맥주 마셨는데 술값 85만원? “내가 호구냐”

    • 입력 2021.03.01 00:01
    • 수정 2021.05.12 10:30
    • 기자명 배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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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연합뉴스)
    (그래픽=연합뉴스)

    2019년 12월 17일 늦은 밤 A(52)씨는 지인과 1‧2차 술자리를 마치고 춘천의 한 주점으로 이동했다. 소주와 맥주, 과일, 치킨을 시키고 도우미 2명을 불러 시간을 보낸 A씨는 계산서를 받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술값이 85만원이나 나왔기 때문이다.

    A씨는 “술값이 얼마인데 이렇게 비싸게 나왔냐, 낼 수 없다. 내가 호구도 아니고 마음대로 하라”면서 돈 내기를 거부했고, 주점 주인은 “술을 마시고 술값을 내지 않는다”며 112에 신고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은 A씨에게 술값을 내라고 권유했지만 A씨는 되려 경찰관에게 욕설을 퍼붓고 멱살을 잡았다. 또 맥주병을 들고 위협한 뒤 왼손으로 경찰관의 얼굴을 폭행하기도 했다.

    사기와 특수공무집행방해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1심 재판을 맡은 춘천지법 형사1단독 정문식 부장판사는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정 부장판사는 “A씨는 주점 주인에게 술값을 제대로 지급할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마치 술값을 낼 것처럼 행동했다. 결국 85만원 상당의 술과 안주를 먹고 돈을 내지 않았다”며 “경찰관을 상대로 특수공무집행방해 범행을 저질러 엄한 처벌을 피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피고인이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진지한 반성을 하는 점, 주점 주인과 합의한 점,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반전은 2심에서 나타났다. 주점 주인이 A씨에게 청구한 술값에 양주 3병 가격 60만원이 포함돼 있었다. A씨와 함께 술을 마신 지인은 법정에서 “사건 당시 맥주, 소주, 과일, 치킨 등을 시키고 도우미 2명을 불렀지만 양주를 마시지는 않았다”고 증언했다.

    또 주점 주인 역시 술값을 과다하게 받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사건 이후 A씨에게 받은 술값 85만원 가운데 일부를 돌려줬다는 점이 확인됐다. 

    2심을 맡은 춘천지법 제1형사부 김대성 부장판사는 “주점 주인이 사건 당시 피고인에게 청구한 술값은 양주 3병 가격 60만원을 포함한 85만원인데 피고인과 함께 술을 마신 지인은 맥주, 소주, 과일 등을 시키고 도우미 2명을 불렀을 뿐 양주를 마시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증언하고 있다”면서 “주점 주인 역시 술값을 과다하게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주점에 가기 전 1‧2차로 간 술집에서는 모두 정상적으로 술값을 냈고, 사건 이후 주점 주인에게 85만원을 지급한 점 등을 고려하면 돈을 낼 능력이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피고인은 술값이 너무 비싸게 나와서 지불을 거절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김대성 부장판사는 “원심판결 중 사기 부분은 파기돼야 한다”며 “경찰관을 상대로 위험한 물건을 들고 협박하고 손으로 뺨을 때린 점은 불리한 정상이지만 이 사건으로 구속돼 6개월의 수감생활을 통해 반성하는 시간을 가진 점 등은 유리한 정상”이라면서 사기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하고 벌금 1200만원을 명령했다.

    [배상철 기자 bsc@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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