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피플] “이웃은 사랑” 광명고물상 원현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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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피플] “이웃은 사랑” 광명고물상 원현숙씨

    소외된 이웃 위해 시작한 선행, 어느덧 수년째
    코로나19 확산 이후 컵라면·KF94 마스크 기부
    저마다의 사정으로 집 잃은 유기견 5마리 양육

    • 입력 2021.02.18 00:01
    • 수정 2023.09.07 12:44
    • 기자명 신초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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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라는 제목의 영화에 동네 아줌마나 탐낼 만 한 허접한 일들을 모두 도맡아 하고 다니는 홍반장이 있다면 소양로2가에는 소외된 이웃을 가족처럼 챙겨오고 있는 원반장이 있다. ‘광명고물상’ 이동진 대표의 아내이자 수년간 고물상을 함께 운영해오고 있는 원현숙씨가 그 주인공이다.

    두 사람을 알게 된 건 행정복지센터 등을 통해 저소득층, 독거노인 등 소외된 이웃을 위해 꾸준히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난 후부터다. 스스로 선행 목록을 알리고 다니진 않았지만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덕분에 두 사람의 인심은 동네에 자자하게 소문나 있다. 넉넉하지 않은 수입에도 불구하고 선행을 베풀어오고 있는 이들의 사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고물상을 찾았다.

     

    ‘광명고물상’ 이동진 대표의 아내 원현숙씨 (사진=신초롱 기자)
    ‘광명고물상’ 이동진 대표의 아내 원현숙씨 (사진=신초롱 기자)

    젊은 시절 한 미모했을 원씨가 남자들도 해내기 어려운 거친 일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그는 남편이 인테리어업에 종사하다 대금을 못받아내는 일이 많아 경제적으로 어려워졌을 무렵 이모님의 권유로 고물상을 맡아 운영하게 되면서 함께 돕던 게 오늘로 이어졌다고 했다.

    어떤 가게든지 권리금은 당연했기에 고물상을 공짜로 넘겨 받을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원씨는 갖고 있던 보험을 모두 해약해 마련한 수백만원을 남편에게 건넸다. 그러다 덜컥 암이 발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행히 극초기였던 탓에 수술 후 금방 기력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 당시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절망감에 빠졌다.

    한 고비를 넘기자 또다시 고비가 찾아왔다. 고물상의 전기가 나간 것이다. 전 주인이 납부하지 않았던 전기세가 밀려있었던 것이다. 100만원 가까이 되는 전기세를 해결할 형편이 안 됐지만 주변인들에게 손을 벌리기가 어려웠고 빌리자니 보증이 필요했다. 원씨는 “돈 100만원도 안 되는 금액이지만 보증을 서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어 난감하더라”며 “슬픔에 젖어 있는 것도 잠시 우여곡절 끝에 돈을 마련해 본격적으로 시작한 게 이만큼이 됐다”고 말했다.

    원씨는 고물상을 운영하며 폐지 줍는 노인 등 저소득층 이웃을 자주 만나게 되면서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했다. 길가에 버려진 고물이나 박스 등 재활용이 가능한 물품도 웬만해서는 주워오지 않는다. 어르신들이 주워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사진=신초롱 기자)
    소양로2가에 위치한 ‘광명고물상’ (사진=신초롱 기자)
    원현숙씨가 직원들과 폐지 분리 작업 중인 모습 (사진=신초롱 기자)
    원현숙씨가 직원들과 폐지 분리 작업 중인 모습 (사진=신초롱 기자)

    또한 어르신들을 위해 작게나마 시작한 기부도 수년째 이어오고 있다. 원씨는 “티를 내려고 했던 게 아니고 많은 양도 아니어서 알려지는 게 창피했다”면서도 “알아주니까 고마워 계속 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이어 “그저 ‘저 젊은 부부는 이렇게 사는구나’ 정도로만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부부의 고물상은 타 고물상과는 다른 점이 있다. 안주인이 출근할 때 후줄근하게 나오는 법이 없다는 점과 동네 사랑방처럼 이웃주민들이 항상 북적인다는 점이다. 원씨는 사정이 있어 꾸미지 못할 때를 제외하고 풀메이크업에 깔끔한 모습이다. 화려한 네일아트에 기자의 시선이 쏠리자 그는 “손톱이 부러져 빠지려고 해 가짜 손톱을 붙여놓은 것이다”고 설명했다. “손톱이 없으면 물건을 잡기가 힘들어져 어쩔 수 없이 붙였다”며 “참 고달프지 않냐”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실제 망치질을 하거나 거친 연장을 다뤄야 할 때가 많아 자주 다치는 편이다. 뾰족한 도구에 찔려 피가 멈추지 않아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을 정도라고. 그는 “위험직종이기도 하고 요즘 사람들은 힘든 일을 안 하려고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고물 수출길이 막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원씨는 지난해 어르신들을 위해 컵라면 130박스, KF94 마스크 2000장 등을 기부했다.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면 기부를 더 자주할 수 있겠지만 임대료, 생활비, 유기견 양육비 등 들어가야 하는 돈이 한두 푼이 아니다. 원씨는 “식구들과 함께 살아야 하니 생활비를 제외하고 남은 돈으로 쪼개서 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물상에 자주 오시던 어르신들 중에서도 돌아가신 분들이 많다”며 “어려운 이웃을 볼 때면 항상 슬프다. 그래서 자주 하는 말이 ‘나 부자될 때까지 돌아가시면 안 된다’고 한다”고 말했다.

     

    원현숙씨가 지난해 소양동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해 관내 저소득 가구에 컵라면 130박스를 기탁했다. (사진=춘천시)
    원현숙씨가 지난해 소양동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해 관내 저소득 가구에 컵라면 130박스를 기탁했다. (사진=춘천시)

    고물상 입구에는 순한 백구 두 마리가 사람을 반긴다. 모두 유기견이다. 한 마리는 교통사고 때 다리가 부러진 상태로 고물상에 맡겨졌다고 했다. 사람도 힘든 상황이지만 눈물을 흘리고 있는 강아지의 눈을 쳐다보니 내칠 수가 없어 수술을 시킨 후 쭉 키우고 있다고. 집에는 비슷한 처지로 맡겨진 유기견 세 마리가 더 있다. 모두 나이가 든 강아지들이라 돌보는 데도 꽤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간다. 늘 오전 9시가 되면 고물상으로 출근했던 원씨의 출근 시간은 아픈 강아지들을 돌보느라 늦춰진 상태다.

    원씨는 “강아지를 돌보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무시를 못하지만 강아지로 인해 설움도 많이 당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남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서 혹시라도 강아지가 짖을까 우려돼 퇴근할 때는 사무실 안에다 들여다놓고 간다”며 “사무실이 강아지 집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강아지가 지키고 있는 입구를 지나 들어간 사무실은 5~6평 남짓한 공간이 펼쳐진다. 끼니 때가 되면 동네 어르신들로 북적인다. 식사를 해결하기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식사까지 제공하는 동네 사랑방인 셈이다.

    고물상을 운영하며 서러움을 많이 겪었다는 원 대표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좋다고 했다. 인터뷰 도중에도 한 이웃은 음식을 잔뜩 싸들고 원씨에게 건네기도 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광경이 차가운 공기를 따뜻하게 감싸는 듯했다. 원씨는 “하나라도 더 나눠주려고 하는 어르신들이 많아 받으면서도 미안하다”며 웃었다.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원씨는 “언제까지 더 할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계속하고 싶다”며 “일이 힘들지만 재밌고 보람된다”고 말했다.

    [신초롱 기자 rong@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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