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창수의 딴생각] 문학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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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창수의 딴생각] 문학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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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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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창수 소설가
하창수 소설가

한번 읽어서는 좀체 이해하기 힘든 난해한 철학적 문체로 정평이 난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미국소설가 윌리엄 포크너는 자신의 주요 작품들을 요크나파타우파 카운티(Yoknapatawpha County)라는 공간에서 펼쳐보였다. 치카소 인디언의 말로 ‘영혼의 섬’이라는 뜻을 가진 요크나파타우파는 미국 남부에 있는 것으로 작가가 설정한 마을이다. 이 조그만 가상의 마을은 한 여자의 기이한 일생을 짧지만 강렬하게 묘사했던 ‘에밀리에게 바치는 한 송이 장미’를 비롯한 빼어난 단편들과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음향과 분노’를 비롯해 ‘팔월의 빛’, ‘압살롬, 압살롬!’, ‘내가 죽어 누웠을 때’ 등 헤아릴 수 없는 명작들의 고향이다. 요크나파타우파 카운티를 빼고 포크너를 얘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그를 ‘지역작가’라는 뜻의 ‘로컬라이터(local-writer)’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포크너와 요크나파타우파의 관계야말로 “가장 ‘내셔널’한 것이 가장 ‘인터내셔널’한 것”이라는 금언의 진수에 해당한다.

세계적 작가인 포크너를 지칭하는 ‘로컬라이터’와는 달리 오늘 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에게 ‘지역작가’는 중앙/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를 총칭하는 용어로 굳어져 마치 ‘중앙작가’라는 말이 따로 있기라도 한듯 그와 구별하기 위한 ‘하류’적 의미로 비하되어 사용된다. 일본식 등단제도를 그대로 답습한 한국문단은 지방지와 중앙지의 신춘문예에 대한 차별을 당연시하고 지방지 신춘문예 당선자는 작가로 인정하지 않는 고약한 관행을 만들어냈다. 문예지까지 확대한다면 이런 차별이나 관행은 더 깊고 넓어질 텐데 이런 상황에서 포크너의 ‘로컬라이터’는 강 건너 불구경에 불과하다.

한국 문단의 ‘중앙집권적’ 성향은 작가들의 대부분이 서울(권역)에 거주하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으며 이러한 현상은 그들의 작품이 서울 편향적이 되도록 하는 건 물론 지방에 대한 인식의 부족을 야기할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한다. 결국 지방은 정치적 소외와 유사한 양상의 문학적 차별이나 소외의 대상이 되고, 안타깝지만 이것이 오늘의 엄연한 현실이다. 이걸 벗어나지 못한다면 한국의 문학 역시 정치만큼이나 구태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필자가 태어난 곳은 경북 포항이다. 고향을 무대로 한 소설들을 쓸 때 나는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제철공장으로 유명한 임해공업도시의 이미지에 빗대어 ‘쇠의 계곡’이라는 뜻의 ‘철곡(鐵谷)’으로 바꾸어 썼다. 조용한 바다마을에서 어느 날 갑자기 공업도시로 변해버린 고향에 대한 아쉬움을 환유한 것이다. 30여 년 전 서울의 직장을 정리하고 춘천으로 옮겨와 전업작가로 살면서는 이따금 춘천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쓰곤 했는데, 이때도 춘천이라는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물의 고향’이라는 뜻의 ‘수향(水鄕)’을 빌려와 썼다. 실제로 수향은 ‘봄내’만큼이나 살가운 춘천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작가가 실재하는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는 대부분 그대로 사용했을 때의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서다. 조금만 유추하면 금방 ‘그곳’임이 밝혀짐에도 불구하고 굳이 ‘저곳’이라는 이름을 지어 붙이는 것은 누가 봐도 특정인이라는 걸 뻔히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명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문학적 공간으로서의 ‘그곳’에는 작가의 애증과 호불호가 겹쳐 있는데, 작품을 쓰다보면 ‘애(愛)’와 ‘호(好)’만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름을 바꾸는 데서 생기는 조그마한 틈 혹은 여유는 ‘증(憎)’과 ‘불호(不好)’를 드러냈을 때 닥치게 될지 모르는 구설을 막아주는 일종의 액막이인 셈이다. ‘그곳’에는 여전히 작품 속의 인물에서 유추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살았거나 살고 있기 마련이고 그(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얘기를 쓸 때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예상가능한 일이다. 이런 우려가 작가로 하여금 ‘그곳’에서 ‘저곳’으로 슬쩍 비껴나게 만들고, 여기에 ‘로컬’의 흥미로움이 숨어 있다.

가상의 공간은 작가로 하여금 창작의 여유와 자유를 가져다준다. 사실이 가해오는 압박·부담·걸림·제약에서 벗어난 작가는 한껏 상상력을 발휘해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으로 가게하고 할 수 없는 일을 하게하며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게 해준다. 여기에 작동하는 절묘한 문학적 전술은 현실·실제·실재와의 절묘한 결합이다. 상상만이라면 결국 허무맹랑한 무협지에 불과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짐짓 딴전을 피우지만 작가가 겨냥하는 것은 결국 그의 두 발이 딛고 있는 ‘지금·이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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