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소설가의 강원도 마음어 사전] 이를 잡는 겨울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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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소설가의 강원도 마음어 사전] 이를 잡는 겨울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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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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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소설가
김도연 소설가

어린 시절은 이와 동거를 한 것 같다. 교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앞에 앉은 여자아이의 머리카락을 타고 슬금슬금 기어가는 이를 발견하곤 짓궂게 놀렸던 기억도 있는데 지금 생각하니 미안하기 그지없다.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보다 상대적으로 머리카락이 길어서 벌어진 일일 뿐인데 나는 마치 그 아이의 머리카락이 온갖 이들의 소굴인 것처럼 떠들었으니 그 아이는 얼마나 창피했을까. 울면서 교실을 뛰쳐나갔던 그 아이는 다음날 결석까지 했으니 방정맞은 내 입이 그 아이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주 늦게나마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사실 그 당시 우리 반 아이들은 늘 이 몇 마리와 함께 살고 있었다는 게 맞을 것이다. 옷 속 깊은 곳에 숨은 이는 어린 우리들의 피를 빨아먹으며 기생을 했을 것이다. 위생상태가 열악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을 틈타 몸 밖에선 이가 기생했고 뱃속에선 또 다른 기생충이 활개를 치며 살았다. 머리카락과 옷에 살충제(DDT)를 뿌리고 대변검사를 한 뒤 구충약을 먹으면서 우리들은 비로소 그것들과 작별을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는 사람의 옷차림이 간편한 여름철보다는 겨울철에 더 번성했다. 머리와 등, 겨드랑이, 사타구니가 가려울 수밖에 없었고 그러니 깊고 깊은 겨울밤 우리 몸의 피를 빨아 먹는 이들의 등살에 몸을 긁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과 이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이를 잡지 않는 한 편안한 잠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회충이나 편충과 달리 이는 한 사람의 몸에서 다른 사람의 몸으로 이동이 가능하기에 같은 집에서 같은 방을 쓰고 같은 이불을 덮는 현실에선 누구 한 사람도 그 곤경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한 가족이 모두 합심하여 이를 잡아야만 했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대관령의 겨울밤 엄마는 군사작전을 수행하듯 가족들을 차례로 벅으로 내몬 뒤 입고 있는 옷을 모두 벗겨 뒷마당의 빨랫줄에 내걸었다. 가마솥에는 물이 펄펄 끓었고 벅 바닥에는 커다란 고무구박이 대기하고 있었다. 

  “엄마, 빨래도 안 한 옷을 왜 밖에다 거는 거야?”
  “얼려 죽이려고.”
  “이가 얼어 죽어?”
  “그럼!”

가장 막내인 나부터 고무구박에 들어가 목욕을 했고 누나들이 그 뒤를 이었다. 이를 퇴치하기 위한 엄마의 다음 무기는 알불이 가득한 화로와 참빗이었다. 널따란 달력을 방바닥에 깔은 뒤 엄마는 누나들의 머리를 참빗으로 꼼꼼하게 빗기 시작했다. 누나들이 아프다고 비명을 질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머리카락이 뽑혀 나올 정도로 참빗의 빗살은 촘촘했다.
 
  “가만히 있어. 이래야 서캐가 떨어져.”
  “엄마, 서캐가 뭐야?”
  “이가 낳은 알이야.”
  “이가 알을 낳아?”

엄마는 몇 번 빗질이 끝나면 참빗의 날을 악기를 연주하듯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펼쳐놓은 달력 위에는 밀가루 같은, 아주 작은 알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를 징그러운 이 몇 마리가 살금살금 기어갔다. 머리를 감았는데도 붙어 있던 이들이었다. 그러면 엄마는 달력을 키(곡식 따위를 까불러 쭉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도구)처럼 만들어 들고서는 옆에 놓인 화로 위에 내용물들을 솔솔 뿌렸다. 찰나, 화로에선 탁, 탁, 타닥, 타다닥거리는 소리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바로 이와 서캐가 타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마치 바싹 마른 자작나무가 타는 것처럼 경이로웠다.

하지만 집에서 아무리 소동을 떨어도 이는 쉽게 박멸되지 않았다. 문제는 바로 우리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였다. 자그마한 교실에 오륙십 명의 아이들이 붙어 앉아 서로 뒤엉켜 돌아가는 이상 이를 퇴치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계절은 다르지만 심지어 어떤 아이들은 이뿐만 아니라 집에서 기르는 누에까지 데려오곤 했으니까 말이다(집에서 기르는 누에가 옷에 붙어 학교까지 따라온 것이다). 이들은 마치 우리가 친한 친구 집에 놀러가듯 쏘다녔던 것이다. 우리들은 공부를 하다가도 옷 속에 손을 집어넣어 벅벅 긁어대느라 바빴다. 이 약(藥)이 대중화 될 때까지.

겨울밤 엄마는 옷 속이나 머리카락에 숨어 있는 이를 잡았을 때 옆에 화로가 없으면 엄지손톱 위에 이를 올려놓고 다른 엄지손톱으로 눌러서 잡았다. 그때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이가 터지는 소리가 톡, 톡 들렸는데 그 소리도 경쾌했다. 한 번은 방바닥에 엎드려 만화책을 보다가 우연찮게 이를 잡는 엄마의 엄지손톱을 보게 되었다. 맙소사! 엄마의 양쪽 엄지손톱은 얼마나 많이 이를 죽였는지 이에서 터져 나온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마치 봉숭아물처럼. 물론 그렇게 죽은 이가 불쌍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다만 그 붉은 피가 내 몸에서 흐르던 피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 서캐에선 피가 나오지 않았다. 손톱으로 서캐를 터트리면 하얀 진액이 손톱에서 말라갔다. 피건 진액이건 좀 더러워 보였지만 엄마는 이를 잡는 일을 모두 마칠 때까진 절대 손톱을 씻지 않았다. 그건 좀 신경이 쓰였다. 가끔 이를 잡다가 벅으로 나가 무슨 일인가를 하고 들어왔는데 그때도 엄지손톱의 색깔이 그대로였으니까.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이를 잡는 겨울밤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인간의 몸에서 마침내 이들이 떠나갔기 때문이다. 

폭설이 내리는 밤 고향집에 가면 화로는 아직 화목보일러의 알불을 담은 채 방을 덥히고 있지만 이들이 콩을 볶는 것처럼 타는 소리는 더 이상 찾을 수가 없다. 길고 깊은 겨울밤 화로 옆에 앉은 나는 돌배술에 취해가며 그런 오래된 기억들을 꺼내 손톱으로 톡톡 터트리고만 있을 뿐이다. 

그동안 <강원도 마음어 사전>을 읽어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글을 쓰면서 저 역시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사투리와 거기에 담겨 있는 일들을 떠올릴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지금까지 썼던 글을 모아 곧 책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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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 2021-01-24 02:45:23
항상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