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시인
  • 스크롤 이동 상태바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시인

    • 입력 2021.01.20 00:00
    • 기자명 시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인

                               

                                            박미산

    인천 창영국민학교 앞

    손을 꼭 잡은 남매

    여자 아이는 교문 안으로 들어가고

    오빠는 구두통을 메고 세상 안으로 돌아간다

    흙먼지 뒤집어 쓴 구두를

    지전으로 바꾸면서

    세상을 닦아냈다, 오빠는

    까맣게 터진 왼손으로 내 오른손을 뜨겁게 잡고

    말을 잊지 못해 

    시인이 되었다, 나는

    오늘도 오빠의 잃어버린 말을 찾아 세상 안으로

    돌아간다 

    *박미산:2008년「세계일보」신춘문예당선.*시집「루낭의 지도」「태양 혀」외.고려대외래교수역임.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목이 멘다. 이토록 가슴이 먹먹해 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어린 오누이의 애틋한 정과 사랑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어린 오빠의 애처롭도록 지극한 정성과 배려심 때문일 것이다. 열두 살쯤 되었을 그 오빠는 어린 동생과 가족들을 위해 “구두통을 메고 세상 안으로 돌아간다”는 그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아프고 애련하다.

    ‘구두통’이란 단어가 시어로 쓰인 것으로 보아 아마 1960년대로 짐작된다. 그리고 그 여동생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일곱, 여덟 살 되었을 것이다. 열 두어 살쯤 되는 오빠는 그 어린 여동생을 학교 밖 담 모퉁이 저 끝에서 교문 안으로 들여보내고는 자신은 세상 속으로 아니, 생활전선으로 뛰어 들었던가 보다.

    그리고 그 오빠는 매일 “흙먼지 뒤집어 쓴 구두를/지전으로 바꾸면서/세상을 닦아냈”듯이 삶을 견뎌냈을 것이다. “까맣게 터진 왼손으로 내 오른손을 뜨겁게 잡고/말을 잊지 못해”//라고 화자는 그 아픔의 순간을 행간 침묵으로 승화시킨다. 눈물과 한(恨)으로 승화된 아픔의 공간 확대다. 이 한의 공간을 채우기 위해 작자는 “시인이 되었다, 나는”으로 함축한다. 

    이 시의 긴 여운과 함께 정서적 승화의 절정이다. 시인이 되어 오빠의 그 가슴 아픈 사랑과 상처를 쓰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픈 사연은 단면적이 아니다. “오늘도 오빠의 잃어버린 말을 찾아 세상 안으로 돌아간다”는 화자의 굳은 결기이자 시인으로서 사명감의 분출이다.

    지금쯤 그 오빠는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해 본다. 흰 머리 성성한 일흔 살을 넘겼을 오빠로 변해 시인이 된 그 동생을 흐믓한 사랑으로 바라보고 계시겠지? 애잔하게 아프면서도 오누이의 사랑이 마치 한 편의 동화처럼 아름답다. 물질만능으로 부모형제간에도 반목되는 일들이 비일 비재하는 이 시대에, 이 시는 한 모금의 청량제로 다가온다.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