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소설가의 강원도 마음어 사전] 겨울방학과 생활계획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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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연 소설가의 강원도 마음어 사전] 겨울방학과 생활계획표

    • 입력 2021.01.10 08:00
    • 기자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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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연 소설가
    김도연 소설가

    어린 시절 방학만큼 좋은 것은 달리 없었다. 방학 중에서도 겨울방학이 훨씬 좋았다. 여름방학은 농사철과 겹쳐 있어서 맘껏 놀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울방학은 그렇지 않았다. 대관령은 앞대와 달리 겨울이면 너무 춥고 눈이 많이 내려 이모작 등등의 농사를 시도할 엄두조차 못내는 곳이었다. 그러니 어린 우리들은 농사일에 불려가지 않고 겨울방학 내내 그동안 학교에 다니면서 하지 못한 온갖 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아무리 춥고 폭설이 쏟아져도 우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담임선생님은 그런 우리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터라 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각자의 생활계획표를 만들어 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종이 위에 동그란 시계를 그려놓고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시간을 나눠 작성하는 형식인데 선생님이 내준 숙제이다 보니 아무렇게나 짤 수 없었다. 나름 고심을 거듭한 끝에 내가 완성한 겨울방학 생활계획표를 본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셨다.

    “방학인데 이렇게 많이 공부할 수 있겠냐?”
    “할 수 있어요!”
    “이러다 작심삼일이 되면 어떻게 하려고?”

    선생님은 묘한 미소를 지었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전에 두 시간, 오후에 세 시간, 그리고 늦은 밤에 세 시간은 충분히 지킬 수가 있었다. 그러고도 놀 수 있는 시간은 많았다. 나의 치밀한 계획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러했다. 놀 땐 확실하게 놀고 공부할 땐 확실하게 공부하자.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생활계획표를 짰는지 모르지만 나는 내 계획표를 의심하지 않았다. 방학을 하자마자 책상 앞에 그것을 붙여놓고 실행에 들어갔다. 

    당시의 생활계획표 안에 들어 있는 항목을 대충 떠올리면 이렇다. 아침식사, 방과 마당청소, 공부(두 시간), 친구들과 놀기, 점심식사, 공부(한 시간), 친구들과 놀기, 공부(두 시간), 저녁식사, 가족과 대화 및 라디오 듣기(아직 우리 집엔 텔레비전이 없었다), 공부(세 시간), 취침. 나는 과연 초등학교 겨울방학 동안 내가 짠 생활계획표대로 하루를 잘 건너갔을까? 그리고 개학을 하여 나보다 공부를 잘했던 친구들을 따라잡았을까? 

    초등학교를 다니며 느꼈던 것 중 하나는 수업시간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정해져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월요일의 지루한 운동장 전체조회, 1교시는 국어, 2교시는 산수…… 수업시간은 45분, 쉬는 시간은 15분, 그리고 점심시간…… 그 과목들과 수업시간을 어길 수가 없었다. 내가 싫더라도 따라가야만 했다. 그래야만 단체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선생님들은 말하셨다. 맞는 말이었다. 국어 시간에 나만 도화지를 꺼내놓고 그림을 그릴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시간과 규칙이 어떨 때는 편했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한없이 불편했다. 그러니 방학이야말로 내가 내 의지대로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미 짐작했겠지만 당연히 나는 내가 짠 생활계획표를 지킬 수가 없었다. 농사일이 없는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유혹과 방해가 너무 많았고 내 의지마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박약했다. 처음 얼마간은 그나마 아슬아슬하게 지킬 수 있었지만 날이 거듭될수록 하나둘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잠들기 전, 내일부터는, 내일부터는 꼭 지켜야지 다짐하고 별렀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다른 항목은 어느 정도 지킬 수 있었는데 문제는 공부였다. 공부를 해야 될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다른 일들이 벌어졌다. 

    다행히 책상 앞에 앉긴 앉았지만 곧 엉덩이가 근질거리고 문밖의 일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친구 녀석들이 나만 빼놓고 모처럼 재밌는 놀이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아 견딜 수 없었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허다했기에 몸은 교과서를 펴놓고 앉아 있었지만 마음은 벌써 눈 덮인 콩밭으로 떠난 지 오래였다. 다행히 우리 집의 내 방은 나를 지켜보는 담임선생님이 없는 교실이었다. 선생님이 없으니 나는 언제라도 방에서 나갈 수 있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면 겨울 대관령은 온통 눈 천지였다. 눈이 풍족하면 남자아이들은 집에서 직접 만든 나무스키를 비알밭에서 탔고 여자아이들은 비료포대에 짚을 넣어 푹신푹신하게 만들어 집 근처에서 썰매놀이를 즐겼다. 눈이 내리지 않고 북서풍만 쌩쌩 부는 날이면 친구 집에 모여 만화책을 보느라 바빴다. 만화방에서 빌려온 만화책 중 당시 가장 인기가 좋았던 것은 특이하게 생긴 독일군들이 나오는 전쟁 만화였는데 그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들과 독일군들 사이의 이야기였는데…… 그러다 학년이 올라가면서부터 우리들은 만화를 보다가 좀 더 넓은 세계로 눈길을 돌렸다. 그것은 바로 큰형들이 보는 잡지인 ‘선데이 서울’이었다.

    그 잡지에서 수영복을 입은 여배우들을 처음 보았을 땐 가히 충격적이었다. 또 하나는 잡지 뒤쪽에 있는 펜팔코너였다. 친구들과 나는 그것을 찢어 그 주소로 편지를 써서 보냈다. 나이를 한참 올려놓고서. 물론 아무리 기다렸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당연히 생활계획표 어디에도 들어 있지 않는 일과였다. 할 수 없이 우리들은 평소 놀던 대로 양지 바른 담벼락 옆에서 곱은 손을 사타구니에 넣어 녹이며 구슬치기나 할 수밖에 없었다. 

    영원한 방학은 없었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추운 겨울도 지나가는데 방학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어느 날 문득 달력을 보니 어느덧 개학이 코앞이었고 당황한 나는 허둥거렸다. 책상 앞에 붙여놓은 생활계획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숨만 내뱉을 뿐이었다. 남은 시간으로 볼 때 방학숙제를 끝마치기에도 벅찼다. 담임선생님의 말이 떠올랐고 더불어 매 방학마다 똑같은 후회를 한다는 것도 알아차렸지만 달라질 것은 없었다. 다만…… 비로소 학교가 그리워졌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 마침내 졸업이었다. 중학생이 되니 방학이 돌아와도 더 이상 생활계획표를 만들지 않아도 되었다. 생활계획표를 숙제로 요구하는 선생님도 없었다. 속 시원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렇게 어린이에서 벗어나 청소년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때는 당연히 몰랐다. 비록 벽에는 붙어 있지 않았지만 더 빽빽한 인생의 생활계획표 속으로 조금씩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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